그리운 것들 쪽으로 /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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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2020. 10. 21.

술을 억수로 마신 다음 날 아침에 누는 똥은 불우하다. 똥이 항문을 가득히 밀고 내려가지 못하고,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나온다. 똥이 똥다운 활력을 잃고 기신거리면서 툭툭 끊긴다. 이것은 똥도 아니다. 삶의 비애는 창자 속에 있었다. 이런 똥은 단말마적인 악취를 풍긴다. 똥의 그 풍요한 넉넉함이 없이, 이 덜 썩은 똥냄새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주인을 찌른다.

간밤의 그 미칠 듯한 슬픔과 미움과 무질서와 악다구니 속에서, 그래도 배가 고파서 집어먹은 두부김치며 낙지국수며 곱창구이가 똥의 원만한 조화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반쯤 삭아서 가늘게 새어나오고 있다. 이런 똥의 냄새는 통합성이 없다. 덜 삭은 온갖 재료들이 저마다 제각기 덜 삭은 비명을 질러댄다. 그래서 이런 똥의 냄새는 계통이 없는 아우성이다. 육신을 통과하면서 먹여주고 쓰다듬어주며 나온 똥아 아니라. 육신과 싸우고 나온 똥이다. 삶은 영위되지 않고, 삶은 살아지지 않는다. 이 악취는 영위되지 않는 삶의 비애의 냄새인 것이다. 이것은 날똥이다. 날똥을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이 눈물은 미칠 듯한 비애의 눈물이다. 날똥 새어나오는 아침의 화장실에서 나는 때때로 처자식 몰래 울었다.

날똥이여,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월이여 청춘이여 조국이여, 모든 것은 결국 날똥이 되어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나가는 것인가. 50살 넘어서 누는 날똥은 눈물보다 서럽다.

선암사 화장실은 배설의 낙원이다. 전남 승주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선암사 화장실은 300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아마도 이 화장실은 인류가 똥오줌을 처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금자탑일 것이다. 화장실 안은 사방에서 바람이 통해서 서늘하고 햇빛이 들어와서 양명陽明하다. 남자 칸과 여자 칸은, 서양 수세식 변소처럼 철벽으로 가로막힌 것이 아니라, 같은 건물 안에서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화장실의 남녀 칸을 철벽으로 막아놓은 것이 문명이 아니다. 화장실 남녀 칸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선암사 화장실에 정답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선암사 화장실은 변소의 칸막이 담이 높지 않다. 쭈그리고 앉는 사람의 머리통이 밖에서 보인다. 똥을 누는 일은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변소처럼 감옥 같은 공간에 갇혀서 해야 할 일도 아닐 성싶다.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 한다. 선암사 화장실은 이 자유의 낙원인 것이다. 이 화장실에 앉으면 창살 사이로 꽃 핀 매화나무며 눈 덮인 겨울 숲이 보인다. 화장실 위치는 높아서 변소에 앉은 사람은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똥을 안 눌 때 똥누는 사람을 보는 일은 혐오스럽기만, 똥을 누면서 창살 밖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계면쩍고도 즐겁다. 이 즐거움 속에서 배설행위는 겸손해진다. 햇빛은 창살을 통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빛은 굴절되어서, 화장실 안에는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고 늘 어둑어둑하면서도 그늘이 없다. 바람이 엉덩이 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엉덩이가 허공에 뜬 것처럼 상쾌하다. 똥을 누기가 미안할 정도로 행복한 공간이다.

이 화장실에서도, 심하지는 않지만 냄새가 조금 나기는 난다. 이 냄새는 역겹지 않다. 이 냄새에는 잘 처리된 배설물의 은은함이 있다. 건강한 몸이 음식물을 아름답게 처리해내듯이 이 놀라운 화장실은 인간의 몸 밖을 나온 똥을 다시 아름답게 처리해낸다. 그것은 수세식 변소처럼 물로 씻어서 강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똥으로 하여금 스스로 삭게 해서 똥의 운명을 완성시켜준다. 화장실 밑에는 나무탄 재와 짚을 늘 넉넉히 넣어두어서, 배설물들은 이 두엄더미 속에서 삭으면서 오래된 것들의 오래된 냄새를 풍긴다. 이 냄새는 풍요하고, 이 냄새는 사람을 찌르지 않는다. 똥누는 모습과 똥을 처리하는 방식과 똥의 냄새는 마땅히 저러해야 하리라.

선암사 화장실에서 나는 잃어버린 삶의 경건성과 삶의 자유로움과 삶의 서늘함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눈물겨웠다. 아, 그리운 것들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그러니 그리운 것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운 것들을 향해서 가자. 가자. 가자. 무릎걸음으로 기어서라도 기어이 가자. 그것들이 살아 있는 한, 내 마침내 그곳에 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내 사랑은 불우하지 않으리.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