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 / 최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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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3.

‘酒전자’. 붉은 글씨가 내 눈을 낚아챘다. 술 酒, 삼수변만 보아도 컬컬한 목이 확 트일 것 같다. 주점이 연상되는 기발한 간판의 글씨에 벌써 불콰한 기운이 가슴 저 안쪽에서 올라오듯, 금방이라도 막걸리가 양은 대접으로 콸콸 쏟아질 것만 같다.

한 잔 걸치고 싶은 최근 무렵, 저 간판이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군상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듯 간판 옆으로 집어등集魚燈처럼 매달린 주전자들은 하나같이 찌그러져 있다. 하기야 점잖은 얼굴로 나올 수 없는 곳이 주점이다. 화풀이라도 할 냥이면 냅다 무언가를 발로 차야할 것, 그러니 주전자가 온전할 리가 없다. 저 양은 주전자가 매끈하다면 대폿집은 서민과 거리가 멀다. 만만한 발길들이 지나갔듯, 화풀이로 내던졌듯, 누런 몰골이 철지난 사연들을 매달고 있다.

주전자는 모양부터 순박하다. 넉넉해 믿음직스러운 몸통, 주구의 높이에 맞춰 나란히 솟은 날렵한 주둥이, 이동이 편리한 안정된 손잡이, 끓는 열기의 퇴로를 만들어준 구멍 뚫린 뚜껑이 전부다. 미적 가치보다 실용성에 바탕을 둔 그릇이다.

그릇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격이 달라진다. 먼 시절, 교실의 물주전자도 누런 양은이었지만 그 색깔, 그 재료의 주전자에는 막걸리가 담겨야 제격이다. 사람의 뱃속에 매일 술을 채워 넣는다면 벌써 탈이 났을 테지만, 주전자는 술술 받아들이고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찌그러진 주전자와 막걸리, 둘은 천생연분이다. 불룩한 몸통만큼이나 푸짐하게 담긴 막걸리가 애환을 흘리고, 젓가락 장단으로 숙성시킨 육두문자가 대접으로 쏟아져 나와야 제 맛이 난다. 서민적인 그것에 텁텁한 인정을 담아 마시고 흥에 취하면 맺혔던 응어리가 풀린다. 하지만 주전자만큼 험난한 삶도 없을 것이다.

변변한 간판 하나 없는 주막의 주모는 초로의 과부였다. 장애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무일푼으로 내쫒긴 그녀가 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은 없었다. 군부대에서 나오는 잔반을 얻어다 돼지를 키웠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궁여지책으로 잔반을 깨끗하게 씻어 발효시킨 막걸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머니 가벼운 걸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싼값에 취해 주전자까지 싸게 보았다가 낭패를 보곤 했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져 끝내 얄팍한 지갑이 다 털리기 때문이었다. 나도 큼큼하게 익은 술을 마시기 위해 그 실팍한 주둥이를 빨곤 했다. 동료들과 돌려 마시던 ‘공동운명주’는 주전자째 들이켜야 제 맛이 돌았다. 주머니 사정이 좀 나을 때면 부침개나 두부와 도토리묵이었고 보통은 김치가 안주의 전부였지만, 서로의 속내를 꺼내 주고받던 가슴 홧홧한 시절이었다.

오래된 기억 속 또 하나의 주전자가 있다. 여드름이 막 잦아들던 시절, 그는 주전자를 화풀이용으로 사용하곤 했다. 시골에 살았지만 직장생활을 하던 터라 논밭으로 막걸리를 나르거나 물을 담아내는 일은 드물었다. 간간히 넥타이가 풀린 날이면 취기어린 말을 입이 걸은 주전자처럼 되풀이해 쏟아냈다. 점점 더 화가 복받치면 죄 없는 주전자를 냅다 걷어차거나 던지기 일쑤였다. 그는 밖에서 미처 소화시키지 못하고 담아온 부글거리는 화를 토하듯 쏟아내는 것이었다. 빈 주전자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그의 분풀이 도구, 엄포의 표적은 그의 아내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쏘아댄 포탄은 벽이나 땅바닥에서 터져버리기 일쑤여서 늘 그녀를 비껴가는 것이었다. 의심스러운 그의 헛손질에 나는 안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심하고 딱해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에 그에 대한 연민을 담아두고 있었다. 발길이나 손에 휘둘린 주전자는 바로 그의 모습이었다. 밖에서 채이고 내동댕이쳐진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묵묵히 화를 받아내고 삭이는 그의 아내. 안으로만 찌그러드는 주전자를 닮아서인지 속을 끓이는 것도, 푸념과 투정도 고작 그 안에서만 끓다 잦아들었다. 절대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가끔 주전자가 주둥이를 통해 찔끔거리듯 말을 흘려도 입안에서만 맴돌다 삼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은 손은 야무졌다. 쭈그러진 주전자를 그냥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 방망이를 넣어 살살 두드려 폈다. 마치 허물어진 성곽을 보수하는 석공처럼, 쭈그러든 가정의 울타리를 고치는 것도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다. 주전자 손잡이가 휘어졌다는 것은 온 가족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가장이 다쳤다는 것, 그녀는 질긴 노끈으로 촘촘히 감아주었다. 주전자가 비명을 지를 때 놀라 달아난 뚜껑 꼭지를 찾을 때면 지붕 뚫린 집 마냥 비가 샐까, 천으로 감싸 제자리에 틀어박아 주기도 했다. 그녀는 묵묵히 제 믿음을 지킨 주전자였다. 하기야 점점 황폐해지는 가장과 어린 자녀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전자는 채운 만큼 베풀 줄 아는 인심을 지녔다. 비정한 것을 멀리하고 삶이 고달픈 사람은 다독인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쓰린 제 속을 달래고 참아주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내동댕이쳐져도 덜거덕거리며 안으로만 우그러들 뿐 절대 밖으로 돌출시키지 않는다. 걷어차여도 절대 깨지지 않는 근성으로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선다.

우그러진 주전자를 바라본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슬픔보다는 외로움이 절절하던 시절이 울컥, 앞을 막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