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적인 엄마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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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2021. 5. 4.

일주일에 한 번 엄마가 오시는 날이다. 처음엔 한 달에 두 번만 오겠다 하셨지만 요즘은 수요 장날에 맞춰 꼬박꼬박 다녀가신다. 시장 구경도 하시고, 반찬거리도 장만하시고, 딸내미한테 글 쓰는 것도 배우고, 엄마 말씀대로 안 올 이유가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지난 4월 처음 오셨을 때를 돌아보면, 우선 문 열고 들어오시며 '숙아' 하고 부르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다고 선생님이라 불러주시지도 않는다. 또 의자 안쪽까지 등허리를 깊게 묻을 만치 자리도 편하게 잡으셨다. 하지만 쪽파며, 연근이 당신 공부할 동안 골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만은 여전하시다. 잠시라도 냉장고에 넣어두자하면 꼭 이러신다. '이게 뭐라고 전기 써가며 공을 들이냐'고. 당신 발아래다 모셔놓고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것이 최고임을 안 뒤로, 더는 권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엄마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가르치는 내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지 싶어서이다.

머리를 한 방향으로 틀어놓고 엄마가 벌써 뭔가를 적기 시작하셨다. 오늘따라 엄마 얼굴이 더 부은 것 같아 사정을 물으니, 손도 좀 다르다며 손등을 내미셨다. 부어 있었다. 점시 먹고 우선 집 앞 내과라도 가보자 해놓고, 엄마와 나는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얼굴 많이 부었어, 아침 약 드셨지?" 옆에서 들여다보니 눈이 평소보다 표시 나게 부어 있었다. 연필 쥔 손가락도 통통했다. 손을 뻗어 엄마 이마를 짚으려는데, 귀찮다는 듯 내 손을 쳐내면서 "내가 언제 열 있다 카더나." 역정을 내셨다. 어디가 많이 안 좋으신 게 분명했다. 무작정 화부터 내실 분은 아닌데 걱정이 되었다.

"당뇨병이 뭐냐. 가을 병이 뭐냐, 숙아' 공책 맨 첫줄에 적어놓은 엄마의 오늘 시詩 제목이다.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당신 지병을 글감으로 턱 걸어놓고 연필을 만지작만지작 하고 계셨다.

당뇨가 뭔지, 가을이 뭔지, 두 가지 다 나는 이렇다하고 설명해드리지 못했다. 당뇨는 이런 겁니다, 하면서 남의 말 하듯 이야기 할 자신도 없었고, 가을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뇨가 뭔지 물어놓고 곧바로 던진 '가을은 뭐냐'는 질문에다 대고 내가 어떤 답을 드려야 하나. 나는 아무 말도 해 드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물음 뒤에 저렇게 이름을 불러버리면 나는 길게 말을 잇지 못한다. 엄마가 그러실 때마다 나는 '숙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 내가 뭘 틀린 모양이네."

아차차 뭔가를 잘못 짚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필 끝으로 당신 이마를 콕콕 찧으셨다. "시詩란 하고 싶은 말을 자근자근 씹는 말로 쓰는 거제. 시란 죽어도 안 울 것처럼 꾹 참고 아끼며 쓰는 거제. 시란 한꺼번에 다 보여주면 절대 안 되는 거제." 엄마가 방금 써놓은 첫 문장을 지우면서, 습관인 양 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외셨다. 그리고 우리 엄마 이어지는 말씀이 "내가 시적으로다 다시 한 번 써보도록 하지." '시적으로다' 결의에 찬 그 말은 무릎을 탁 칠만한 시를 써보겠다는 엄마의 주문 같은 다짐이다.

또다시 머리를 한 쪽으로 기울인 채 엄마가 고심을 하셨다. 나를 힐끔 보는가 싶더니 뭔가에 계속 골몰하셨다. 내 머릿속은 온통 부은 엄마 얼굴과 손뿐인데, 그래서 속이 상해 죽을 지경인데, 엄마는 요것만, 요것만 하시며 아까부터 자꾸 시간을 축내셨다. 책상 밑에 쪽파 든 비닐봉지를 발끝으로 살살 모으는 것으로 보니 초조하신 모양이다. 그것은 뜻대로 안 된다는 몸짓이다. 일어나 자리를 피해 드렸다.

문을 밀고 나오니 세상이 온통 시였다. 지천이 엄마가 좋아하는 시로 그득한데 우리 엄마는 왜 아직도 가난하실까. 저 하늘에 구름도 걷어 오시고, 요구르트 아줌마의 달달한 저 웃음도 걷어 오시지. 예전처럼 경로당에 나가셔서 고스톱도 치고 돈도 따오시지. 엄마가 연필 끝으로 이미를 찧던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머리를 흔들어도 없어지지 않고 자꾸 되살아났다.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죄송했다.

너 잘 하고 있는 것 맞니? 맞아? 바람이 내 귀에 와서 다그치듯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글방 안이 매운 냄새로 가득했다. 세상에, 엄마가 바닥에 앉아 쪽파를 다듬고 계셨다. 하이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우리 엄마다. "쪽파 다듬는 게 백배 천배 낫지, 흙 하나 안 묻은 허연 종이를, 씻지도 못하는 그깟 종이 쪼가리를, 뭐 다듬을 거나 있어야 말을 하지." 멀뚱하게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민망하셨는지 혼잣말이 쏟아졌다.

"그래서요." "뭐를 그래서라, 그냥 깨 털 때처럼 싹 다 털었뿟지." "털긴 뭘 털어요." 퉁명하게 받아쳤지만 내심은 좋았다. 엄마가 약 올라 하시는 게 재미가 있어 엄마 말끝에 하나하나 토를 달았다. "이 아가 밖에 나가서 귀를 묵고 왔나, 눈을 묵고 왔나, 뭐긴 뭐라 내 병 말이지. 당뇨병 말이다. 가을 병 말이다." 주거니 받거니 엄마와 나는 예전처럼 '시 타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 시는 이래야 제맛이다.

책상 위에 놓인 공책이 말갰다. 내 기분도 같이 맑아졌다. 당뇨를 무슨 수로 다듬을 수 있단 말인가. 가을 병을 무슨 수로 다듬을 수 있단 말인가. 쪽파라면 몰라도 말이다. 내가 밖으로 나간 뒤 엄마는 아픈 당신 심정을 '시적으로다'가 다듬어 볼 요량이셨다. 지우고 쓰고, 또 지우고 썼건만 당.뇨.병 이 세 글자가 공책에 흉터로 남아 엄마를 언짢게 만든 모양이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병. 다듬어도 가지런해지지 않는 병, 엄마는 차라리 당신 시를 통째 찢어버리셨다. 깨 털듯 털어버리셨던 거다.

공책이 찢겨나간 자리에 요철만 남아있었다. 단번에 찢지 못했는지 당뇨병과 가을 병이 찢겨나간 자리가 울퉁불퉁했다. 어떻게 매끈할 수 있겠는가. 엄마의 삶도, 나의 삶도 종이요철마냥 크고 작은 물결이 질 것인데. 높고 낮은 인생물결, 그 위에 시 한 수 띄워놓고 엄마와 남실남실 건너가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손바닥만 한 공책보다야 출렁대는 풍랑이 시 타기엔 훨씬 재밌을 테니 말이다. 오늘은 엄마가 쪽파 가지런히 붙여놓고 파전을 구우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