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를 보면서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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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8.

나무토막을 들여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나이테가 없다. 닳고 닳아 찍히지 않는 지문이 있다면 그런 것일까 싶었는데 한옆으로 옹이가 툭 불거져 있다. 여남은 개 바퀴 모양의 자취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지만 나이테가 다 지워진 토막에 옹이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이테는 이미 지워졌어도 그 연륜에 옹이의 뚝심이 들어갔을 테니 얼마나 단단할지 상상이 간다.

우리 집 주방에도 옹이가 빠져나간 자리가 있다. 나무로서는 오래된 상처가 빠져나갔으니 시원할 것 같은데도 뻥 뚫린 자리는 당혹스럽다. 처음 지을 때부터 툭 불거진 게 유난히 눈에 띄기는 했으나, 우리도 옹이가 있다면 그런 식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살 동안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도 빠져나가면 시원하겠지만 주방의 벽처럼 허전할 수 있다. 필요해서 남은 것일 수 있다. 나만 힘들다고 할 것도 아닌 게 내 안의 옹이는 나만 알 수 있듯이 상대방의 옹이 또한 나는 모른다.

옹이가 잘 생기는 건 소나무다. 애당초 가지가 약해서 잘 꺾이고 그럴 때 옹이가 생기면서 강한 나무로 자란다. 장작을 팰 때도 유독 잘 튀어나가는 걸 보면 바람에 꺾인 자리가 아물면서 생긴 자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여타 자리보다 울퉁불퉁해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옹이가 생기는 건 대부분 가지가 약해져 있을 때라 그마저 없으면 강한 것 같으면서도 꺾이는 참나무처럼 곤경을 치를 수 있다.

내 왼손 장지 첫째 마디에도 배추를 썰다가 벤 자리가 있다. 감각도 없는 살피듬과 꽉 막힌 실핏줄 때문에 늘 보면 돌멩이마냥 차갑다. 불붙기만 하면 춤추듯 타오르는 옹이의 화력도 그렇게 자랐을 것이다. 오래된 목조 가옥에 쐐기를 박는 것처럼 불이 붙어도 화력이 센 그 자리가 버팀이 되는 건 당연했다. 생짜로 불을 붙여도 와짝 타오르는 관솔마냥 옹이에서 치받는 힘은 필사적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뿌리만 갖고는 역부족이라 움켜쥘 세력이 필요해서 특별한 과정으로 생겼을 옹이.

우선은 볼썽사납게 보이지만 내가 본 것처럼 나무는 부서지고 연륜마저 지워질 그 때 비로소 제 2의 생명으로 살아난 거다. 버팀목 아니면 돌파구로 남아야 하기 때문에 나이테보다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이테가 원을 그리면서 둥글어질 때 비바람에 시달린 옹이는 단단한 재목의 기틀을 만든다. 겉으로는 물론 속으로까지 아픔을 새기듯 우리도 안팎으로 고통을 삭이며 자란다. 환경이나 여건에 적응하면서 의지를 키우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연륜에 해당될 나이테를 새긴다.

어쩌다 보면 옹이가 생기지 않는 나무가 있다. 다름 아닌 대나무로 옹이가 없는 반면 마디가 있는데 바람이 생채기를 내면 폭풍이 그 속에서 잠을 청한다. 멧새만 날아가도 쓰러질 것 같은 나무가 조목조목 잎을 새기고 그늘을 재우면서 칸칸 마디를 채운다. 마디가 있어야 대나무라고 하듯 자랄 때는 까치발 뛰는 모습이 그려진다. 성장 속도가 빨라서 잘 휘는 반면 마디로 고를 내어 받치게 되고 관절이 운다. 옹이가 없을 때는 마디라도 있어야 되는 속속 깊은 나무들 세계다.

옹이와 마디가 나무의 종류별로 생기듯, 우리도 소나무처럼 약해서 생기는 옹이가 있고 대나무처럼 빨리 자라기 때문에 생기는 마디가 있다. 소나무든 대나무든 그것이 생길 때는 당연히 남모를 고통이 따르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필수적 과정인 게 그 생길 때마다 바람을 이기고 폭풍에 견디는 힘이 생긴다. 나무로서는 바람을 맞고 태풍을 견디면서 자란다지만 그것은 또 극복하고 견디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옹이와 마디는 결국 나무의 아픔이기 전에 성장의 밑거름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소나무에 마디가 생길 수 없다는 점 또한 특이하다. 대나무 역시 앞서 본 것처럼 마디는 있으나 옹이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악조건은 거의 하나만 주어진다. 우리 삶에서는 옹이에 마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따금 최악의 상황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견딜만하다는 게 더 정석이다. 한 그루 나무조차도 옹이가 없으면 대나무처럼 마디가 생기기도 하면서 성장의 기틀로 삼는다. 우리 치르는 수많은 역경 또한 윤택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