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고 있는 나무 / 한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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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16.

가슴 속에 감춰둔 나만의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보고 싶었다. 로키산맥 수목 한계선에 산다는 나무. ‘로키’라는 지명의 어감은 적당한 고독을 품은 씩씩한 사나이 같다. 그곳, 해발 삼천 미터 높이에서 산다는 나무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다고 한다.

무릎 한 번 쭉 펴지 못하고 구부린 채 살아내는 나무의 다리를, 존경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싶었다. 그 옆에서 오랫동안 앉아 깊은 기도를 엿듣고 싶었다. 구부러진 나뭇결 켜켜이 눈물과 고통 끝에 맺힌 진주를 찾고 싶었다.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을 그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나무가 그대로 살다 죽었다면 나무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픔이 절묘한 선율을 만들어 누군가의 영혼을 일깨우고 고단함을 어루만지기에 나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와 다른 빛깔을 가진 그의 아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꽃이 피고 지는 산과 들을 어떻게 뛰어다녔는지 푸른 청년 시절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다. 사랑 때문에 웃고 울었던 날들과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된 날도 묻지 않았다. 구부린 다리가 아프지 않았는지, 키를 낮춘 그에게 분 바람은 얼마나 매서웠는지 물어본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미 잔잔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눈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뛰거나 빨리 걸을 수 없는 걸음으로 작은 것들을 챙겨 보며 사랑할 줄 안다. 가슴 속에 맑은 옹달샘 하나를 숨기고 산다. 강물 같은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며 넉넉한 가슴으로 사람을 보듬어낸다. 그에게는 멀고 험한 길을 돌아서 온 끝에 가질 수 있는 해학이 있다. 무릎을 꿇고 자신을 성찰하는 진지함이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픔이 있고, 아주 버릴 수 없는 삶의 열정이 있다. 드물고 굳고 정하다는 갈매나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무릎 꿇은 나무는 헌칠하고 멋진 외양을 지니지 못했다. 키를 낮춰야 그 굳고 정한 마음이 보이는 것이다.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나무를 꺼내어 그에게 보낸다. 그는 로키산맥 수목 한계선에서 사는 무릎을 꿇고 있는 나무이다. 거친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내는 꿋꿋한 사람이다.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운 영혼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영혼의 울림으로 삶의 기막힌 선율을 만들어 세상에 전해주는 따뜻한 나무이다.


한경선 수필가 : 200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3년 《수필과비평》 등단. 행촌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