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 / 손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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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2021. 6. 21.

도라지꽃은 깔끔한 꽃이다. 도라지꽃은 달리아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칸나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다 피어도 되바라진 데가 없는, 단아하고 오긋한 꽃이다. 서양 꽃이라기보다 동양 꽃이요, 동양의 꽃 가운데서도 가장 한국적인 꽃이다. 예쁘면 향기는 그만 못한 법이지만 도라지꽃은 그렇지 아니하다. 그 보라색만큼이나 은은하다. 차분한 숨결이요 은근한 속삭임이다. 도라지꽃은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핀다. 가을꽃이라기 보다 여름꽃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패랭이꽃과 함께 가을꽃으로 친다. 그 보라색 때문일까. 아니면 길숨하게 솟은 꽃대궁이 주는 애잔한 느낌 때문일까. 도라지꽃에서는 언제나 초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도라지꽃은 언제나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들국화나 코스모스처럼 무리를 지어 피는 법이 없다. 양지바른 언덕에 홀로 서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늘하늘 몸을 흔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여간 안쓰럽지 않다. 꼭 보듬어 주고 싶은 그런 안타까운 꽃이다. 더구나 이름 없는 외로운 무덤가 잔디밭에 홀로 피어 있을 때, 그리고 철늦은 흰나비라도 한 마리 앉아 있을 때, 도라지꽃은 더없이 슬퍼 보인다. 슬프다 못해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 버리고 말 그런 표정을 하고 있다. 이런 때의 도라지꽃은 아무래도 이 지상의 꽃이 아닌 듯싶다.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고, 저승하고도 한참 저편이지 싶을 만한, 영혼의 세계에서 잠시 얼굴을 내민 그런 꽃이다. 나는 도라지꽃에서 어렸을 때의 우리 담임선생님을 본다.

어느 초가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책을 읽게 하신 후 창가에 서 계셨다. 여러 개로 나뉜 네모난 유리창에는 초가을 하늘이 조각조각 가득히 들어와 있었다. 우리의 책 읽기는 몇 번이나 되풀이되다가 나중에는 제풀에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음 지시가 없으셨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텅 비어버린 표정으로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서 먼 하늘만 보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 있다가는 금세 하늘로 빨려 들어갈 것같이 위태로웠다. 점점 멀어져 가는 선생님을 어떻게든 우리에게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가을이 다 가기도 전에 선생님은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마치 파란 하늘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때 선생님은 흰 옥양목 적삼에 도라지꽃 색 치마를 받쳐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