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고달프겠다 / 최민자

댓글 1

수필 읽기

2021. 6. 28.

친구 집에 갔다가 플라스틱 함지에 심은 상추 모종을 받아왔다.

무엇이든 손에 들려 보내려고 두리번거리던 친구가 베란다에 놓인 두 개의 함지박 중 하나를 덥석 들고 나온 것이다. 쉼표만한 씨앗을 싹 틔워 이만큼 자라게 하기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세수 대야만한 고무함지가 텃밭 한 뙈기보다 더 커 보였다.

“조금 지나면 포기가 벌 테니 실한 놈 몇 포기만 남기고 다 솎아주어야 해.”

서툰 대리모에게 입양 보내는 어린것들이 맘에 걸리는지 문밖까지 따라 나온 친구가 말했다. 천 원어치만 사도 차고 넘칠 상추보다는 생명을 가꾸는 기쁨을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좁은 베란다 한줌 햇살만으로 상추는 우북수북 잘 자랐다. 청치마 홍치마를 나붓이 펼치고 앉은 매무시가 제법 과년한 처녀티를 냈다. 햇살 좋은 날에는 서로 치마폭을 넓게 펼치려 자리다툼을 하는 것도 같았다. 솎아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어느 것을 뽑고 어느 것을 남길까. 명월이 채봉이 향단이 탄금이… 기생점고에 나선 변학도가 되어 눈으로 찬찬히 더듬어보았다. 연두빛과 자주빛 치맛자락이 내 눈에는 하나같이 춘향이로 보였다.

큰이파리 사이에 숨어있는 여린 모종에 손을 대려다, 덩치 큰 친구 곁에 서있던 딸 아이 생각이 났다. 못 큰 것도 억울한데 퇴출을 시키다니. 개체의 특성과 환경의 우열에 따른 다양성이 심판의 준거가 되어야한다는 말인가.

나는 가만히 칼자루를 놓았다. 상추포기 솎는 일도 이토록 어려운데 악인과 선인을 판가름하여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어 보내야 하는 신은 얼마나 골치가 아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