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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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2021. 7. 1.

길은 희망의 끈이다. 무한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앞길 저만치에는 신비의 요체가 기다릴 것만 같다. 그래서 가다가 멈추어서면 그 다음 길에 대한 궁금증에 몸살을 앓기도 한다.

대로에서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쩌다 소로(小路)에 들어서면 그 길의 방향이 어디로 났는지, 혹은 어느 마을과 이어지는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인다. 그럴 때면 되돌아올까 하다가도 유혹을 떨치지 못해 더 나아갈 때가 있다. 그렇게 가닿은 곳이 매우 신선하여 희열에 차기도 하지만, 어느 시골집 마당이거나 도시의 철제대문이거나 할 때의 막막했던 기억도 몇 번 있다.

딛고 다니는 길에도 인연이 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갈 때가 있는데, 태백산기행이 이번으로 다섯 번째다. 오래 전 처음 찾아간 곳은 경북 봉화군에 속해있는 한 사찰이었고, 그 나머지는 눈 축제로 알려진 ‘당골’이다. 당골의 경우는 오가는 길의 정경이 좋아서 나서곤 하는데, 먼 길을 내달린 뒤 맛보는 고요가 그리워 늘 가슴 속에 담고 사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길엔 공교롭게도 비를 만난다. 봉화에서는 밤샘기도 중에 보슬비가 내려 그대로 가부좌를 튼 채 새벽까지 몸을 적셨는데, 당골을 향할 때에도 번번이 비가 내렸다. 그래도 그곳에 가면 눈을 만날 거라며 겨울에 대한 미련을 털지 못했다.

예상대로 강원도에 접어들자 산이 희끗희끗하다. 동강을 지나면서부터는 준령을 휘감는 운무가 넋을 잃게 한다. 그러다가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엔 역시 함박눈이다.

태백산, 무엇엔가 이끌리어 자주 찾는 곳. 허나 그때마다 하필 겨울이어서 산행은 한 번도 이뤄지질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아예 작정을 했다. 허벅지가 빠지는 길을 네 발로 걸었다. 왼편엔 석탄박물관이 있고, 오른쪽 아치형의 다리 건너에는 단군신전이 있다. 추녀에 매달린 고드름이 햇살을 받아 더욱 투명하다. 나는 실내에 들르지 않고 밖에서만 놀기로 한다. 곧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길을 오른다. 잘못 가면 허방이다. 비틀비틀 걷지 말고 바로 걸어야 한다. 까마귀들이 여느 곳의 까치 때처럼이나 몰려와 노는 마을이다. 이 나무 저 나무 가지 위에서 까악 가아악대며 나그네의 발걸음에 반주를 넣는다. 저 날짐승들하고도 어느새 정이 들어버렸다.

얼마쯤 올랐을까. 등산로로 이어지는 계곡에 목조다리가 놓여있다. 그리고 다리난간에 ‘사랑의 눈 길 걷기 종착점’이란 현수막이 핑크빛을 걸려 나부낀다. 아, 그럼 이 길이 ‘사랑의 눌 길’이란 말인가.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온다. 누가 지었는지 적확하다. 이 호젓한 길을 걸으며 온전할 사람 어디 있겠는가.

되돌아 내려오는 길. 왠 나무 한 그루가 허연 눈을 덮어쓰고 봉황인 척하고 있다. 잔가지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가슴속은 온통 훈기뿐이다. 이번엔, 막다른 길목까지 다녀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