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지고 / 석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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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2021. 7. 29.

가끔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들을 만나면 “요즈음 어떻게 지내? 뭘 하면서 소일 하는가?” 라고 묻는다. 퇴직 후에 뚜렷한 직장에 재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서너 군데에서 손짓도 했지만 탐탁스럽게 여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어서 몸이 묶일 정도의 소속은 두지 않고 지낸다.

“대학 강의 나가고, 글 쓰고, 운동도 하면서 지냅니다. 백수가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됐어, 하여간 바쁘면 좋아.”

대다수 사람들이 바쁜 건 좋다고 말한다. 날마다 하는 일이 특별히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정말로 하루가 짧다. 어찌나 시간이 잘 가는지 번쩍하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 번개다. 일상을 벗어나 교외로 나가는 일도 어렵다. 공직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그 때는 출장이랍시고 시외를 벗어나서 계절 바뀌는 정도는 알고 지냈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는 시(市 )로부터 ‘아름다운 건축 상’을 받은 아파트다. 동과 동의 배치를 지그재그로 해서 공간마다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갖가지 꽃과 나무로 조경을 해서 경관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아파트다.

아파트 모퉁이를 막 돌아서면 매화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다. 나는 이 매화를 무척 좋아한다. 실제 매화의 탄생은 그 이전이겠지만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지가 7년째이니까 매화도 그 쯤 되었다. 몇 년생 묘목을 심었는지 모르지만 처음 2~3년 동안은 꽃을 못 본 것 같다. 그 때는 나무의 크기도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꽃도 피지 않으니까 그냥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몇 년 전 공직시절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다 만발한 매화를 보고 경탄한 나머지 발을 멈췄다. 매화가 너무 아름다웠다. 일찍이 꽃을 보고 그렇게 감동한 적이 없었다. 살면서 수많은 꽃들을 보아왔지만 유달리 그날은 그랬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꽃을 보아온 것일까?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있던 차에 매화를 본 것일까? 그도 아니면 활짝 핀 매화가 너무도 아름다워서였는지 아직도 그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보다 후각이 둔감한 나는 꽃향기를 잘 맡지 못한다. 더군다나 귀로 듣는 향기라고 할 정도로 고요해야 만이 맡을 수 있다는 매화 향기는 여간해서 맡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매향에 취해 매화를 노래하고 시를 짓는데 나는 그 향기를 쉽게 감지하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코끝을 꽃잎에 바짝 갖다 대어야 냄새를 안다. 단아하고 고결한 꽃의 자태에 감동하여 예부터 많은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온 매화, 해마다 매화로 인하여 봄임을 안다. 매화보다 먼저 피는 동백이나 산수유도 있지만 이들은 겨울의 끝자락에 피는 꽃들이다. 겨우내 모진 강추위 속에서도 어김없이 준비하여 봄의 시작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다. 매화는 겨우내 언 땅이 아직 다 녹지도 않았는데 고운 꽃을 피워내고 매향을 뿜어낸다. 눈(雪)과 달빛으로 핀다는 꽃이다. 봄이 와서 매화가 피는 것이 아니라. 매화가 피어서 봄이라고 할 만큼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이다. 이른 봄에 다른 꽃들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고 해서 화계(花界)의 영수(領袖), 화형(花兄), 화중왕(花中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청우(淸友), 청객(淸客)이라고도 하는데, 모두다 매화의 청초하고 고결한 품성을 기려서 하는 말이다. 흔히들 매화를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혹심한 추위와 눈 속에서도 강인함으로 흐트러짐 없이 견디고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절개와 지조의 표상이어서 그럴 것이다. 또한 작지만 야무지고 미소를 머금은 듯 청아하고 정신까지 깨끗하게 해주는 꽃과 향기 때문일 것이다. 매화 향기는 아몬드, 자스민 등과 같은 향기의 성분 중 일부가 조합되었다고 한다. 매화가 청초하고 고결하다고 한다면 매향은 가슴 속 깊이 파고들어 영혼까지 맑게 하는 청향(淸香)이다. 유월 우기에 열매를 맺는 매실 또한 한방에서 사용하는 청량제로 중요한 약물이 아니던가. 이렇듯 매화는 꽃과 향기 열매 모두 다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자연의 질서는 무서우리만큼 정확하다. 세상이 요동치고 요지경 속이라도 자연은 의연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사에 아무리 바쁘고 급하다고 해도 자연은 서두르거나 앞지르지 않는다. 어김없이 질서를 지킨다. 깜빡 잊거나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내도 자연은 때를 용케도 안다. 자연의 질서로 인하여 사람들은 계절을 의식하고 느낀다.

유난히도 올해는 3월에 눈도 오고 비도 많이 내렸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렇지만 매화는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의 시작을 알려왔다. 아직도 겨울인가 했다가 매화의 수줍은 미소를 보고 봄이 온 것을 알았다.

봄은 1년을 시작하는 첫 계절이다. 봄은 또한 만물을 소생케 하는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해마다 봄은 오지만 그 봄이 싫증나지 않고 기다려진다. 봄 안에 신비가 있고, 새 생명이 있으며 희망이 있고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얼어붙어 단단한 흙을 비집고 땅 위로 올라오는 새싹들의 용틀임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가냘프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연록의 새싹들을 보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새싹은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손만 대면 부러지고 뽑힐 것 같지만 강인한 힘이 있다. 새싹은 생명이고 생명의 힘은 위대하다. 새싹에서 삶의 희망과 용기를 배운다. 새싹처럼 삶의 무게를 들어 올리며 살 수 있어야 한다. 봄은 생명의 보고이면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비밀이다. 우리는 봄 안에 숨어 있는 비밀을 모른다. 나는 봄의 비밀을 알려하지도 않는다. 그냥 봄은 봄이어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한동안 지나치면서 매화와 더불어 행복했는데 어느새 매화가 지고 있다. 매화만이 독차지하라는 봄이 아님을 매화는 알고 있다. 매화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잇따라 피어나는 봄꽃들에게 꽃의 자리를 내어줄 줄 안다. 매화는 꽃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지지만 매실을 맺어 또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 비록 매화는 지지만 나는 서러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으련다. 1년 뒤에 다시 오겠다는 매화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매화 꽃향기에 취해 시작한 봄, 봄 내내 수많은 꽃향기에 도취되어 작취미성이었으면 좋겠다. 백목련 자목련 속에 묻히고 싶고 샛노란 개나리꽃에 노란 물을 들이고 싶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의 꽃비와 꽃눈을 실컷 맞아보고 싶다. 온갖 꽃으로 꽃 벼락이나 몽땅 맞았으면 좋겠다. 꽃 속에 묻혀 꽃 때문에 꽃 멀미나 오랫동안 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