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척산 쑥부쟁이 / 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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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2.

산에 오르다

입동 立冬이 눈앞이다. 한더위가 엊그제 같은데 찬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점심 후 간편한 등산복을 입고 두척산으로 향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매일같이 보는 산인데도 정상 등산은 1년에 고작 서너 번 한다.

서원골 입구에 주차를 했다. 건너편 노랗게 단풍 든 은행나무가 장엄하게 서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이 심었다고 전하는 수령 500여 년이 된 나무다. 이곳은 정구 선생과 그의 제자 미수 허목을 배향한 회원서원 터로 지금은 부속건물이었던 관해정만 오도카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차장 앞에 마산씨름체육관이 보인다. 1970•80년대 한국 씨름을 주름잡았던 김성률, 이승삼, 이만기, 강호동 장사 등이 활약한 기념으로 건립한 씨름장으로 알려져 있다. 잘 정돈된 진입로를 따라가면 등산로 입구다. 평일 오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붐빈다. 산에 오르는 사람보다 무리 지어 내려오는 사람이 많다. 집 주변에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게 축복이다.

산에 들어서자 다소 쌀쌀하지만 등산하기에 좋은 날씨다. 곱게 단풍 든 사람주나무가 산행객을 유혹하니 발길이 절로 가볍다. 제일 먼저 용담이 보라색 미소를 띠며 다소곳이 인사한다. 그 옆에 나도 질세라 고들빼기가 노란 꽃을 피우며 자태를 뽐낸다. 다투듯 시선을 끌어당기는 야생화를 보며 완만한 길을 40여 분 오르자 가파른 언덕 너덜겅이다. 널브러진 돌무더기 주위에 정성으로 쌓은 돌탑이 줄지어 있다. 턱에 닿을 듯한 언덕길에서 뒤돌아보니 졸참나무와 생강나무가 역광의 실루엣으로 아름답다. 전과 다르게 숨이 차다. 한달음에 오르던 걱정바위 전망대를 몇 번 거푸 쉬면서 올라온 것이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마음이 청량해진다. 탁 트인 전망을 보자 가슴도 후련하다.

전망대 쉼터에서 숨을 고른다. 두척산은 예술품의 보고다. 푸른 소나무와 기암괴석의 절묘한 조화, 오색단풍과 파란 하늘이 흰 구름이 절경이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래쪽 서원골은 천연색 융단을 펼친 듯하고, 그 앞의 아파트 단지는 가을 햇살에 백색 공룡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잠시 풍경에 도취하는 사이 땀이 식자 냉기가 몰려온다. 서둘러 800m 남아 있는 정상을 향한다.

지금부터는 숲속이 아닌 산등성이 구간이다. 시내 쪽을 조망하면서 급경사진 곳을 오르니 막막한 계단이 보인다. 안내판에 ‘365 사랑계단’이라고 써 놓았다. 첫 계단인 1월 1일부터 시작하여 1년의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기념일 등 중요한 날들을 생각하면서 찬찬히 올랐다. 어느새 12월 31일이다. 몇 시간 만에 365계단을 오르듯 한 해도 쏜살같이 지나간다. 여기에 서고 보니 하루가 한순간임을 깨닫는다. 눈앞에 억새꽃이 만발한 넓은 평원이 보인다. 평원의 넓이가 서 마지기가 된다고 서마지기 평원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500m만 가면 정성이다. 이번에는 ‘365 건강계단’이다. 사랑 다음에는 건강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보다. 새로이 한 해가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두척산은 2년이 걸려야 오를 수 있는 산인 셈이다. 이번에는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10월 18일 계단에 도착했다. 건강 계단 291개를 쉬지 않고 올라오고 보니 내 생일날이다. 기념으로 인증 샷을 찍고 곧 12월 31일 계단에 당도했다. 별 무리 없이 건강을 지키고 살아온 1년이 감사하다. 50여 미터 앞 정상에는 자축이라도 하라는 듯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바람이 세차다. ‘무학산舞鶴山 761.4m’ 표지석을 본다. 뒷면에는 ‘삼월 정신의 발원지’라고 새겨져 있다. 백두대간 낙남정맥의 마지막 봉우리가 여기에 있다. 무학산은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사용한 이름이다. 지명 유래도 명확하지 않은 ‘학이 춤추는 모습’과 같다고 안내하고 있다. 무학산의 옛 이름은 두척산斗尺山이다. 마산 馬山 지명도 옛날 조창 漕倉과 관련한 두척斗尺[말,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비슷한 지명으로 마재고개, 두척마을이 있다. 나는 무학산보다는 왠지 모르게 옛 이름인 두척산에 애착이 가 즐겨 쓰고 있다.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사통팔달이다. 동으로는 천주산과 옛 창원 시가지가 보이고 진해 천자봉과 시루봉이 저 멀리서 아른거린다. 돝섬과 마창대교, 거가대교와 거제, 통영의 미륵산도 가까이에 있다. 뒤돌아보면 서쪽이다. 광려산과 자굴산, 황매산과 지리산이 아슴하게 보인다. 올 때마다 보는 풍경이지만 그 느낌은 항상 다르다. 오늘따라 맑은 공기며 파란 하늘이 마음에 색을 덧입히는 것 같다. 발걸음마다 빛과 향기와 소리가 스며드니 아마도 두척산의 정기가 그런 듯하다.

마산의 영고성쇠榮枯盛衰

정상에서 마산의 거리를 가만히 살펴본다. 산호동에서 출발하여 애국지사 명도석 선생의 호를 딴 허당로를 지나면 불종 거리에서 오동동과 창동을 만나다. 오동동의 아구찜 골목 옆에는 3•15의거 발원지가 있다. 이웃 동네가 창동이다. 마산 중심으로 조선시대 세곡을 보관했던 조창이 있었던 곳이기에 창동으로 부른다.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하여 창동예술촌으로 탈바꿈하여 부활의 몸짓을 하고 있다.

창동에서 3•15대로를 건너면 바다 쪽에 싱싱한 생선이 거래되는 어시장이 있다. 조창이 생기면서 제일 먼저 형성된 곳이 어시장이다. 마산이 1970, 80년대 전국 7대 도시로 명성을 날릴 때는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한가한 시골장 같다는 푸념들이다. 어시장이 번창할 때는 선창의 객주들이 어선의 무사 항해와 시민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로 ‘마산성시대제’를 개최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상권이 쇠락하면서 제의祭儀행사만 하였으나 보존회가 구성되어 대제행사를 발굴, 재현하였다. ‘마산성신대제보존회’에서 재현한 ‘마산성신대제馬山星神大祭’가 무형문화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매년 선창 걸립패를 앞세워 풍악을 울리면서 전통행사로 어시장 부흥을 위한 일에 동참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고정과 3•15의거 기념탑이 그 주변에 있다. 몽고정은 고려시대 일본 정벌을 위한 여원연합군이 주둔하여 식수로 사용했다는 우물이다. 인접한 폐선 철로 옆에 시민과 학생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상징한 3•15의거 기념탑이 있다.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결연한 의지로 맞선 3•15의거는 시민 정신의 표상이며, 마산을 민주화의 성지로 부르는 원인이기도 하다. 무학산 정상 표지석 뒤의 ‘삼월정신’은 3•15의거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마산의 중심 간선도로는 3•15대로다. 기념탑에서 통영 가는 길로 나아가면 대로변에 월영대月影臺가 나온다. 신라말 대 문장가인 고운 최치운 선생이 소요하던 곳으로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고려,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이 방문하여 많은 시문을 남긴 곳이다. 예전에는 월영대 앞까지 바닷물이 출렁이고 돝섬과 달빛을 보면서 마산[합포]만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풍광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마산에는 재미있게도 월영동, 완월동, 반월동 등 ‘월月’자가 들어 있는 동이 6개나 되면서 동명의 유래를 월영대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월영대를 돌아나오면 경남대학교가 있다. 학교 내에는 최치원 선생을 배향한 서원 토도 있지만 특히 민주화를 앞당긴 부마민주항쟁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교정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학생들의 민주화 열망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앞당긴 것이다.

정상에서 한참 동안 마산 거리의 역사를 되새기는 순간, 서쪽 하늘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다. 하산할 시간이다. 한두걸음 내딛자 바위틈에 살며시 고개를 내민 쑥부쟁이가 저녁놀을 받아 사랑스럽다. 소슬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연약한 허리를 곧추세운다. 황량한 터에 연보랏빛으로 무리 지어 피어있어 의연한 모습이다. 쑥부쟁이는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내년을 기약하고 사라지겠지. 쑥부쟁이는 ‘쑥을 캐는 불쟁이[대장장이]의 딸’로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전설을 갖고 있다. 여러해살이풀로 사모했던 사람을 기다리는 전설처럼 생명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면 두척산에서 피고 지며 마산의 역사를 제 안으로 품고 있을 터이다. 영고성쇠榮枯盛衰했던 도시의 흐름과 민주화의 함성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등산객들도 하산을 서두른다. 시간이 있으면 대곡산을 거쳐 만날고개로 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부족하다. 만날고개는 슬픈 전설이 있다. 마산포 양반 이씨 가문의 딸이 생활고로 부자인 감천골 윤 진사의 장애아들에게 시집가면서 슬픔은 시작된다. 온갖 고초를 당하다가 친정이 그리워 추석 다음 날 만날고개를 찾았던 딸과, 딸을 그리워하던 친정어머니가 우연히 만날고개에서 만난 애틋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매년 ‘만날제’ 민속 축제를 하는 곳이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자 우뚝한 봉우리, 학봉이 발길을 잡는다. 그곳은 최치원 선생이 마산만을 보면서 시상을 떠올린 고운대이다. 곳곳이 유적이고 전설이 깃든 산, 두척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다.

집으로 오면서 두척산을 바라보았다. 마산의 빛과 그늘을 장엄하게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정상에서 만났던 쑥부쟁이는 지금쯤 바위틈에서 찬바람을 견디고 있겠지. 그리곤 곧 새날을 꿈꾸겠지.

마산의 역사가 올바르고 정의롭게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만의 염원일까. 마산의 지킴이인 듯 두척산 쑥부쟁이도 나와 같은 소망으로 피고 지고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