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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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2021. 8. 27.

휴전선(休戰線) / 박봉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天動)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을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은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靜脈)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時方)의 자리에서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둠 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나비와 철조망 / 박봉우
지금 저기 보이는 시푸른 강과 또 산을 넘어야 진종일을 별일 없이 보낸 것이 된다.서녘 하늘은 장밋빛 무늬로 타는 큰 눈의 창을 열어...../ 지친 날개를 바라보며 서로 가슴 타는 그러한 거리에 숨이 흐르고.// 모진 바람이 분다./ 그런 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나비 한 마리의 생채기.첫 고향의 꽃밭에 마지막까지 의지하려는 강렬한 바라움의 향기였다.// 앞으로도 저 강을 건너 산을 넘으려면 몇 '마일' 은 더 날아야 한다.이미 날개는 피에 젖을 대로 젖고 시린 바람이 자꾸 불어간다 목이 바싹 말라버리고 숨결이 가쁜 여기는 아직도 싸늘한 적지.// 벽, 벽..... 처음으로 나비는 벽이 무엇인가를 알며 피로 적신 날개를 가지고도 날아야만 했다.바람은 다시 분다 얼마쯤 날면 아방의 따쓰하고 슬픈 철조망 속에 안길.// 이런 마지막'꽃밭'을 그리며 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설픈 표시의 벽.기旗여......//

서울 하야식(下野式) / 박봉우
긴 겨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모두 발버둥치는 벌판에/ 풀잎은 돋아나고/ 오직 자유만을 그리워했다/ 꽃을 꺾으며/ 꽃송이를 꺾으며 덤벼드는/ 난군 앞에/ 이빨을 악물며 견디었다/ 나는 떠나련다/ 서울을 떠나련다/ 고향을 가려고/ 농토를 찾으려고 가는 것은/ 아니겠지/ 이 못된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옥토를 지키는 것/ 봄은 오는데/ 긴 겨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랜 역사의 악몽 속에서/ 어서 깨어나 어서 깨어나/ 보리밭에 녹두밭에/ 석유냄새 토하며 쓰러질/ 서울 하야식/ 외진 남산 기슭의 진달래야/ 찬 북녘 바람은 알겠지/ 소금장사/ 쌀장사/ 갈 곳도 없는/ 고향도 없는/ 어서 서울을 떠나야지/ 서울을 떠나야지//

뿌리치고 온 서울 / 박봉우
모두들 가거라/ 詩人은 빚뿐이다/ 미친 놈의 세상/ 나는 정신병원에나 가 있겠다/ 모든 것/ 물리치고 싶은 서울/ 누가 찾아오는가/ 담배가 아쉬운 밤에/ 먹고 빈 약종이에/ 울긋불긋한 詩를 쓰면 된다/ 모두들 가거라/ 지금의 서울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

전주에 와서 / 박봉우
고독할 뿐이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고독할 뿐이다/ 오늘은/ 완산칠봉/ 내일은 풍남문 근처에서/ 아직/ 전주를 알기는 이르다/ 당분간/ 시가 되지 않은/ 이 밤/ 울고만/ 울고만 싶어라.//

내 딸의 손을 잡고 / 박봉우
내 생활은/ 이제/ 내 딸의 손을 잡고.// 풀잎들이 이슬 맺은/ 장이 흐르는 언덕길을/ 내 달의 말을 배우며/ 내 생활은.// 혁명도 자유도 독립도/ 사랑이거나 눈물도/ 내 딸의/ 손목잡고/ 잠시 잊는 시간.// 내 생활은/ 이제/ 내 딸의 손을 잡고.//

끝나는 시간 / 박봉우
내 스스로의 징역도/ 이내 끝나는 시간.// 자유의 공기란/ 하루 양식보다도/ 더 중한 것.// 오늘 아니 잊고/ 내일 다시 잊으리……// 끝나는 시간이/ 바다와 같이 밀려온다.// 나는/ 영원토록 싸우고/ 고독해야 할 이름.// 내 스스로의 징역도/ 이내 끝나는 시간.//

겨울 포장집의 아내 / 박봉우
괴로운 나날이었다/ 아내 손은/ 우리 역사와 같이 망가지고/ 입술을 다물었다/ 찾아오는 손님/ 가는 나그네/ 뜨거운 소주를 마시고/ 눈물을 글썽이며 가버렸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사람/ 한 잔의 술도 나누지 못하고/ 가버린 그 사람/ 그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며/ 나는 술을 들었다/ 고통은 커다란 기쁨/ 언제고 간에 만나야 할 사람/ 겨울이면 나는 울었다/ 쫓겨가며/ 간절한 사연도 토하지 못하고/ 간 그 사람을……//

해 저무는 벌판에서 / 박봉우
나는/ 갈 길을/ 잊었다/ 양 한 마리 없는/ 밤길을 걸었다/ 어데선가/ 총 한 방울/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기/ 별꽃 같은 것이/ 날아가고 있었다/ 저/ 총소리는/ 누구 것인가/ 나는 고개를 숙이며/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황지에 꽃핀 / 박봉우
남과/ 북으로 나누어 산 지도/ 오래 되었다// 녹슨 철로 위에/ 진달래만/ 서글프다.// 어떤 이는 절실히/ 통일을 부르짖고 갔지만/ 역사는 잔잔하다.// 언제 서로 만나고/ 살 것인가/ 조국은 아프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것은,// 고향과 자유와 평화를/ 목마르게 부르짖는/ 절규다 진통이다.// 나는 남/ 너는 북/ 양단된 가슴팍에/ 서로의 비극은 뼈아프다./ 나비들은 나비들은/ 철조망을 오고 가고 하는데/ 답답한 벽은/ 언제 무너질 것인가/ 누구의 힘으로 무너질 것인가.// 한 핏줄/ 한 겨레가/ 온통 합창하는 날/ 남북이 서로 마음 터놓고 만나는 날......// 녹슨 철로 위에/ 진달래는 훤히 피어 웃으리라./ 그때 내 조국 무덤 곁에/ 역사는 아지랑이 같이 다시 피어나고/ 우리는 가난하게 산 것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젊은 화산 / 박봉우
四月은 피로 덮힌/ 그만 잔인한 달인가.// 폭탄처럼 터진/ 민주와 자유와 정의를/ 지키려다 눈감은/ 어린 순정의 넋들을/ 너는 보았는가.// 명예도 권력도 아닌/ 멍든 민주주의의 내일을 위해/ <부다페스트>의 少女의 죽음처럼/ 너희들이 굳게 외치고 부른 노래는/ <코리아>의 민주주의였다.// 병원마다 내 아들 내 딸이 아니어도/ <모두 내 대신 죽은 사람 내 대신 다친 사람>/ 눈물 흘리며 밀려 오는 온정의/ 손길들은/ 너희와 함께 우리들의 옳은/ 민주주의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름도 없이 피지 못한 채/ <코리아>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려다/ 푸른 꽃잎처럼 져 버린/ 청춘의 영혼들에게/ 우리는, 너희는, 詩人들은 그저/ 무엇을 말할 것인가.// 잔학한 일제의 무리에서/ 빼앗긴 봄을 찾은/ 우리들의 서러움이 다시/ 四月의 江이 되어 흐르는가.// 四月의 그 날./ 몸부림치며 떨며 눈감은/ 조국의 어린, 순정의 젊은 별들에게/ 우리는 올바른 政治와 민주주의로 보답하는/ 그 길만이 아닌가.// 말없이 보지 못한 채 가 버린/ 영원히 역사에 빛나고 살/ 귀중한 너. 젊은 넋 앞에....// 우리 눈물이 말랐는가/ 하늘도 땅도 서울도 온 세계도/ 통곡하는 것을 보았는가.// 우리와 같이 <코리아>의 내 하늘을/ 지키다 간 젊은 친구여/ 四月은 무정하게 꽃도 피는데/ 서러움만 뿌리고/ 너만 먼저 갔구나.// <코리아의 영원한 민주주의여>/ 젊은 원한들은 이렇게 울부짖고/ 꽃잎처럼 툭툭 떨어져 갔구나/ 한많은 애국의 목소리를 남기고/ 젊은 피 흘리며 흘리며/ 어머니의 품안을 떠나 가고 말았구나.//

황지의 풀잎 / 박봉우
언젠가는 터져야 할/ 나의 혁명 앞에서/ 나는 귀여운 잠꼬대를 한다/ 하나하나 저금통에 넣은/ 여러 모의 얼굴들이/ 자기와 자유를 찾을 때/ 장엄한 깃발은 휘날리고/ 엄청난 행진곡은 시작되는 것/ 누구를 위해서 죽을 순 없다/ 나를 위해서도 죽을 순 없다/ 녹슨 철로 위에/ 무성한 잡풀들의 철로 위에/ 나의 사랑은 빗발쳐야 하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을/ 용서 받을 순 없다/ 사형대 위에 사라지는 목숨일지라도/ 나는 어머니와 조국과/ 사랑의 손이 있는 걸/ 언젠가는 터져야 할/ 나의 묵중한 혁명 앞에서/ 목이 마른 황지의 풀잎/ 목이 마른 황지의 태양/ 내가 사는 땅이 있는 한/ 험악한 길과 가시길이라도/ 더욱 굳건한 의지와 신앙으로/ 나는/ 나의 황지에/ 조그마한 풀잎의 욕심으로/ 혁명을 모독하고/ 더욱 사랑하련다/ 혁명의 아침을......//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 박봉우
4월의 피바람도 지나간/ 수난의 도심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구나.//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갈라진 가슴팍엔/ 살고 싶은 무기도 빼앗겨버렸구나.// 아아 저녁이 되면/ 자살을 못하기 때문에/ 술집이 가득 넘치는 도심.// 약보다도/ 이 고달픈 이야기들을 들으라/ 멍들어가는 얼굴들을 보라.// 어린 4월의 피바람에/ 모두들 위대한/ 훈장을 달고/ 혁명을 모독하는구나.// 이젠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가야 할 곳은/ 여기도,/ 저기도, 병실.// 모든 자살의 집단 멍든 기를 올려라/ 나의 병든 <데모>는 이렇게도/ 슬프구나//

소묘 1 / 박봉우
사월의 피 흘린/ 여러 흙을 밟아보면/ 더러는 의미를 아는/ 심연의 나무가 서서/ 잠시 무지개빛의 중량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되는데……/ 공간은 말없이/ 황홀하지도 못한 카나리아의/ 징역 시간을 위해/ 바람이 되어,/ 천동이 되어,/ 아아 소나기가 되어,/ 온 육체에 깊이 멍든 것이/ `토할 듯, 토할 듯, 토할 듯'/ 몸부림치는 울타리 안의/ 밀려가는 한숨들이/ 비가, 소나기가 되어/ 눈보라가 천동이 되어/ 꿈 깬 듯한,/ 사월이 잠든/ 꽃밭의 의미와/ 창의 머언 나무와 목소리.//

소묘 23 / 박봉우
노래하자, 노래하자/ 니빨을, 황토니빨을 갈고/ <참으로 오랜만에> 본/ 시인과 태양 앞에/ 행렬을 짓고, 행렬을 짓고/ 오랜만에/ 목이 터지는 바다의 목청으로/ 노래하자, 노래하자/ 참으로 오랜만에/ 니빨을, 황토니빨을 갈고//

소묘 33 / 박봉우
쓰러지는 푸른 시체 위에서/ 별들이 울었던 날// 詩人도 미치고/ 민중도 미치고/ 푸른 전차도 미치고/ 학생도 미치고//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의 얼굴과/ 눈물을 찾았던 날//

잡초나 뽑고 / 박봉우
오늘밤 머언 별들을 보면서/ 나의 직업은/ 조국.// 연탄 냄새 그득 풍기는/ 우리의 사회에/ 선량한 나의 가정은/ 가을/ 빈 주먹.// 갈라진 가슴팍에/ 우거진 잡초들과/ 사상.// 그 속에 우리집이 있다/ 그림 역사가 있다.// 오늘의 나의 손은/ 현실을 뽑으며/ 진저리 나는 나의 행동에/ 추파를 던지는 속셈이다.//

창백한 병원 / 박봉우
꿈과 동경에 그득 젖은/ 내 육신의 이파리들도/ 이젠,/ 가을의 병원을 찾는 시간.// 가난한 가로수가 대열을 지은/ 밤이면 몹시도 그 가로수들이나마/ 사랑하는 이처럼 따뜻한 대화를 주는/ 이 길을 얼마쯤 가다 보면,// 나는 양림교(楊林橋)에서 무엇을 잊은 듯이/ 서 있는 생각하는 낙엽.// 여기 슬픔과 외로움이 있는 것/ 참으로 울고 싶은 가난한 마음아/ 둘이서 가는 것도 더 외롭지만/ 혼자서 가는 것도 외로운 길.// 어디쯤이나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기다리고 있을까/ 바람에 이파리들이 무수히 날을 때/ 나는 나의 병원을 뚜벅 뚜벅……/ 걸어가야 하는 걸.// 텅 빈 가슴에/ 진주알 같은 별들을 심어준/ 밤이 그리워// 시월이 다가오는/ 귀뚜라미는/ 그렇게도 울어보았다.// 가을을 위하여……//

창이 없는 집 / 박봉우
어쩌자는 건가/ 괴로운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어둠이 깔리는/ 대지에 서서/ 별들에게/ 고향(故鄕)을 심는 것인가/ 어쩌자는 건가/ 어둠이 쌓이는/ 무덤가에 서서/ 시인은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구름이 흘러가는 심중(心中)에/ 그래도 저항할 것인가/ 자유지대에서/ 괴로우며/ 시인의 혁명은/ 싹트는 건가/ 창이 없는 하늘에/ 남겨둔 꽃씨를 뿌리는 건가.//

표정 / 박봉우
원숙한 것들 앞에서/ 원숙한 것들 앞에서/ 내 눈은/ 피로한 오후가 된다.// 바람은,/ 나의 내실(內室)을/ 흔들고 가는 쓸쓸한 음악.//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이/ 억지로 사는 도시엔,// 화려한 외로움이/ 저녁 노을처럼/ 빗발치는 공휴일.// 슬프고 아름다운, 행렬/ 행렬……속에서/ 시달린 이웃과, 얼굴들에서/ 나는/ 행복과 산다는 의미를/ 버린 오후가 된다.//

조선의 창호지 / 박봉우
조선의 창호지에/ 눈물을 그릴 수 있다면.// 하늘만큼 한 사연을...// 눈물 흘리지 말고/ 웃으며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하늘만큼 한 밤을...// 조선의 창호지에/ 눈물을 그릴 수 있다면.//

설렁탕들 / 박봉우
이조 오백년 당쟁싸움의 나머지를/ 이 땅에선 잔인하게 뿌리뽑아버리자/ 어진 일군들 도매금으로/ 유배 보내거나 죽이고/ 또 이조 오백년의 나머지 피가/ 설렁탕이 되는가/ 정신 좀 차려요/ 이조 오백년의 나머지들/ 남한산성 북한산성 돌담을 쌓고/ 한 그릇 설렁탕에 원망했단다/ 한 사발 막걸리에 원을 달랬단다/ 정신 좀 차려요/ 정신 좀 차려요/ 새 백과사전 한 권 들고/ 새 역사책 한 권 들고/ 새 국어책 한 권 들고/ 한 사람 살지 않는 섬에서/ 한 여자 얻어서/ 이젠 내 공화국의/ 일학년을 만들고 싶다/ 알에서 태어나서 알로 돌아가는/ 나의 눈물/ 말 많은 놈들 속에서/ 말 많은 내가 슬프다/ 어린 아이와 장난삼아/ 동양사나 서양사를/ 하나하나 뒤적이며/ 내 스스로 유배를 당해야겠다/ 이조 오백년의 뒤처리들이/ 지금도 여기저기 남아 양반행세 한다/ 이젠 내 식모로 모시고/ 잘 섬기겠다/ 설렁탕 한 그릇에 싸구려/ 어서 자시고 떠나시오/ 나는 설렁탕장수에 술장수/ 이조 오백년의 한을 씻어드리리/ 멋대가리 없는 놈들 속에서/ 내가 시인이라고 바보야 바보야/ 정신나간 바보야/ 나는 왕이나 되어 보련다/ 이조 오백년의 찌꺼기들/ 칼을 뽑기 전에 정신차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허허 오늘은 웃어버리자//

오월의 미소 / 박봉우
가로의 鳥籠과 창에는 봄이 온다/ 사랑을 잊어버릴 무렵쯤..... 신록도 눈을 뜨면/ 빙하와 같이 언 가슴에/ 옛날의 愛人의 숨결과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화사한 빛으로 부활해오는/ 음악실 풍경.// 상처입은 나목에게도/ 잔인한 사랑을 병들게 하면서 걸어오는/ 수평선 너머의 신화.// 오늘쯤은/ 수많은 새들의 자유의 갈망을, 마음껏/ 기도해주고 싶은데/ 지폐가 없어 차라리 울고 싶은 가슴.// 어느 선량한 시민은/ 슬픈 鳥籠의 새들을 기르는 주인을 위해서,/ 멋진 자살을 생각해보는/ 신록의 오월.// 이젠, 우리의 쌀쌀한 대륙에도, 폐허에도/ 또 철조망가에도...../ 사랑의 비가 나리는 것은/ 미소의 풍경. 다사로운 애인의 눈이어.....// 오월아, 너는 하늘을 온통 빼앗긴/ 鳥籠의 새를 위해서,/ <자유와 사랑의 합창>을 위해서,/ 심장에 마음껏 태워보고 싶은/ 별들보다도 귀중한 계절이 아닌가.//

아리랑고개의 할미꽃 / 박봉우
우선 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루 담배 서너 갑은 피울 줄 알아야 한다/ 蘭 앞에서 書藝도/ 한 줄 쓸 줄 알아야 이야기가 된다/ 비워 놓은 집에/ 도둑이 기웃거려도/ 원만할 줄 알아야 한다/ 바둑 한 수에도 잠 못이루는/ 그러한 위인이어야 한다/ 겨울 밤에 봉창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여유만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친구가 찾으면/ 우선 술잔을 차릴 줄 아는/ 그런 그런 사람이어야 하고/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그러한 사람이어야 한다/ 비를, 비를 맞으며/ 선창가에서 들려오는/ 막소주집 유행가에는/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흰 고무신보다/ 검은 고무신을 신고/ 朝鮮 조끼 옷을 입을 줄 아는/ 그런 이여야 한다/ 木花 따는 여인 앞에/ 이글이글거리는 햇빛 속에/ 지글지글 끓는/ 된장국의 맛을 아는/ 아리랑고개의 할미꽃이어야 한다/ 黃土흙에 뱀이 혀를 널름거리는/ 숨막힘 속에/ 바위보다 더한 意志가 넘치는/ 그런 꽃이어야 한다/ 장작개비를 지게에 짊어지고/ 황소 같은 땀을 흘려야 하는/ 그런 이여야 한다/ 서럽고 서러운 가슴통에/ 불길이 타오르는/ 오직 불길이 타오르는/ 수없는 밤을/ 쑥잎 같은 향내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해바라기보다 짙은 머리여야 한다//

가로(街路)의 체온 / 박봉우
눈물겹도록 슬픈 일이 있다면/ 그건/ 아름답다.// 돈암동 종점행 합승을 타면/ 창경원 앞에서 시작하는/ 플라타너스 그늘에/ 누군가의/ 따순 손이 그립다.// 여기는/ 피곤한 하루라도/ 걸어가고 싶은 길.// 나 혼자만이라도/ 흘러가고 싶은/ 길이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을/ 고향에 두고/ 빈 가슴으로/ 빈 가슴으로 걸어가면,// 이 머언 길 위에도/ 비로소/ 시인을 알아주는/ 애인의 맑은/ 눈이 있다.// 플라타너스는 길 위에/ 버림받은/ 나는, 어쩌면/ 순진한 부랑아.// 눈물겹도록 외로운 일이 있다면/ 통행금지 몇 분을 두고도/ 이 길을 걸어가는/ 밤은/ 아름답다.//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 / 박봉우
눈이 소리없이 쌓이는/ 긴 밤에는/ 너와 나와의 실내에/ 화롯불이 익어가는 계절.// 끝없는 여백 같은 광야에/ 눈보라와/ 비정(非情)의 바람이 치는 밤/ 창백한 병실의 미학자는/ 금속선을 울리고 간 내재율의 음악을/ 사랑한다.// 눈이 내린다./ 잠자는 고아원의 빈 뜰에도/ 녹슬은 철조망가에도, 눈이 쌓이는 밤에는/ 살벌한 가슴에 바다 같은 가슴에도/ 꽃이 핀다./ 화롯불이 익어가는/ 따수운 꽃이 피는 계절.// 모두 잊어버렸던 지난 날의 사랑과 회상/ 고독이거나 눈물과 미소가/ 꽃을 피우는 나무./ 사랑의 원색은/ 이런 추운 날에도/ 꽃의 이름으로 서 있는/ 외로운 입상(立像).// 나는 쓸쓸한/ 사랑의 주변에서/ 해와 같은 심장을/ 불태우고 있는/ 음악을 사랑한다.// 모두 추워서 돌아가면/ 혼자라도 긴 밤을 남아/ 모진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뜨거운 뜨거운 화롯불을 피우리.// 겨울의 나무도/ 이젠 사랑을 아는 사람/ 꽃을 피우는 사람/ 금속선을 울리고 간 내재율의 음악을/ 사랑한다.//

고궁풍경에서 / 박봉우
항시 구경을 다아 했다고 생각해도/ 그 경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더 오래도록/ 포옹하고 깊이 파묻힌 옥돌 같은/ 얼굴을 찾아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이조 백자기 같은 화문의 마음을/ 굽이돌아가면 그 뒤안길에는/ 어떤 이끼 푸른 고궁이 있을까.// 꽃밭에는 선녀가 서서/ 얼굴엔 잔잔한 무늬의 그림자를/ 수놓고, 산너머 구름 같은 천 년을/ 먼동과 함께 불러보는/ 멀고 먼 목소리가 아닐까.// 나는 몰라/ 나는 몰라라/ 그저 화사한 아양도 좋지만/ 살벌한 경치가 모든 주위의 병풍을/ 그릴 때, 끝없이 외로운 것은/ 누구였을까.// 너는 이미 저물어가는/ 고궁의 뜨락인데/ 여기에 피어나는 꽃 한 송이는/ 너를 알고 간 무덤보다도/ 새 천년의 흰구름이 포도처럼 열려가는/ 문이 아닐까.// 고궁은/ 짙어가는 고궁의/ 눈과/ 손은// 너를 끝없이 울리고 가는/ 저어 하늘가의 보석별들보다도/ 머나먼 길 위에 핀 한 송이/ 겨울의 꽃나무.//

광화문에서 / 박봉우
고장난 목소리가/ 광화문을 지나는 어느 날/ 울고 싶었다.// 많은 훈장을 단/ 고장난 목소리는/ 모든 것 눈을 감고/ 광화문을 지나가버렸다.// 광화문은/ 허술한 빈 껍질만/ 바람에 소요하고 있었다.// 울고 싶었다/ 고장난 목소리는 지나가고/ 광화문은 하늘에/ 꽃버선을 신고 있었다.// 광화문/ 우리의 서러운 사연// 고장난 목소리가/ 오늘도 어제도 이 앞으로/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늘에서 / 박봉우
갈색 내 가슴을 불태우고 싶다./ 영영 불태우고 싶다.// 어두운 밤이 빛나도록/ 갈색 내 가슴을 불태우고 싶다.// 내가 눈물로 걸어온 길은/ 아무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혹시 나에게 있다면/ 내가 눈물로 걸어온 길을/ 그이도 모른다.// 몇 번이고 자살하고 싶은/ 나를 모른다.// 갈색 내 가슴을/ 영영 불태우고 싶은 밤……// 끝내 어두운 밤과/ 질서 없는 뒷골목을 빛내주는 것.// `코리아'의 비내리는 창을,/ 비 내리는 창을/ 끝없이 지켜주고 싶은// 피투성이 날개가 되기에는/ 아직은/ 머언 밤이다.//

눈보라 속에서 / 박봉우
모두들 돌아가라,/ 이렇게 눈이 오는 밤에는/ 모두들 돌아가/ 나 혼자 남게 하여라.// 이런 밤의 실내에는/ 비창한 음악만 곁에 있으면/ 고독은/ 더욱 아름다운/ 나의 생명/ 나의 위안.// 모두들 돌아가라,/ 비좁은 서울의 하늘에서/ 우정도 메마른 이웃에서/ 나 혼자만의 상념은/ 눈보라 속을 어서 가게 하라.// 지나가버린 서글픈 이름들이여,/ 정신병원의 아름다웠던/ 징역 시간이여,/ 모두들 나를 멀리할지라도/ 이 눈보라 속을/ 피 흘리며, 어서 가게 하라.// 사랑은 넘쳐 흐르는 강/ 눈보라 속의 뜨거운 나의 기(旗)를 위해/ 모두들 떠나, 어서 가게 하라,/ 어서 가게 하라.//

능금나무 / 박봉우
강물빛으로 배경한 어느 한가을의 짙은 하늘에/ 능금나무가 한 주 서서 홍옥(紅玉)의/ 능금들을 가지고 익어가는 사상을 담고 있었을 때,// 능금 한 개를 따서 풀밭에 던진다./ 아예 말이 없다 어떤 불안도 없다/ 은근한 여운이 풀잎들을 흔든다 한 개 능금이여.// 사상을 담은 저 창을 열어라/ 음악이 음악이……들리고 바람이 이는 조그만한 분위기./ 거기에는 태풍의 자세가 밀려오고 넘쳐오고,//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 당신./ 열리지 않는 저 창 안에는 사월과 오월이,/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이 잠들고,/ 사랑의 연연한 손짓이 아지랑이같이 피어나는 ……/ 어느 봄의 언저리.// 하늘을 가득 배경으로 한 한 주 능금나무./ 저 많은 열매들의 의미는 전쟁에 이긴 눈물 같은 것,/ 서로 익어가는 사상 밑에서,/ 무성한 나무 그늘을 이루는 세계. 세계여……/ 나의 갈망인 완숙. 완숙이여//

수난민(受難民) / 박봉우
상처입어 탄약의 흔적에 피가 넘치는/ 팔도 다리도 달아나고 눈알도 파편처럼/ 발화되어 달아난 이 어두움 속에/ 차라리 비가 나려 진창인 이 진흙길을// 아늑한 봄의/ 따사한 붕대를 감아주려고/ 부드러움이 그지없이 상냥한 표정을 가지고/ 이렇게 소식없이 왔는가, 비둘기의 젖가슴인/ 사(四)월같이 왔는가.// 우리의 조용한 마음 속의 도시와 세계는/ 모두 다 회색빛 폐가가 되어버리고/ 3등병실마저 아쉬운/ 끝없이 먼 벌판 같은 황량한 목숨은/ 그래고 꼭 한 번 사랑의 꽃씨를 뿌리며/ 살아보겠다는, 보다 눈물겨운 핏빛 호소.// 전쟁에 울고 이그러진 가슴에……/ 붕대를 감아주려고 온 다사로운 너의 숨결// 그것은, 겨울을 풀어헤치는 긴 강./ 목을 베어버릴 만한 손도 마지막 빼앗긴/ 영토에게. 심연한 포옹과 사랑을 끝없이/ 노래부르려는,// 아직도 울어서는 안 될 금빛 아침의 목숨./ 무던히도 메마른 우리의 땅에/ 살고 싶은, 살고 싶은/ 비가 온다. 강이 언제나 푸르게 흐를 날은// 상처 입은 가슴에 푸른 나무가 무성히 자랄 날이……// 창같이 열려올 간절한 아침은 언제인가/ 시들어버린 폐가에 누구를 응시하는/ 당신의 눈. 당신의 눈은……//

신세대 / 박봉우
헐어진 도시 또 헐어진 벽 틈에 한 줄기 하늘을 향하여 피어난 풀잎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봄, 봄, 봄인가 그렇지 않으면 가을을 말하는 것인가. 모질게 부비고 부비며 혼 있는 자세여./ 강물도 흐르고 바람도 스쳐가며 나무들이 손짓하는 그리고 해와 별들도……이 영토 위에 조용히 오는 풍경. 살고 싶은 것이나 새롭고 싶은 것인가./ 살벌한 틈사구니에서 모질게 부비고 부비고 피어나는 내 가슴의 휴전지대에서 너를, 너를 울리는 나. 나는 무엇인가./ 바다. 너는 그 섬에서 노래를 들으리라 무엇을 의미하는 풀잎의 소리를. 한 포기 꽃이 제대로 피어나는 통일을 영토를 세계를……/ 헐어진 도시에 아직은 창. 창은 있는가 병들고 시들은 봄이나 가을이란 그런 계절이 우리는 없어도 고목 속에 이젠 피어야 할 너를, 너를 울리고 창을 향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구려인 / 박봉우
내 애비와 어미는/ 고구려인/ 만주부터/ 조선 북방에까지/ 힘과 부가 넘쳐났다/ 높은 미적 감각 속에/ 꽃핀/ 압록도/ 백두도/ 평양도/ 대륙을 넘나들었다/ 신라와/ 백제는/ 우리들의 한 핏줄/ 광개토대왕비 곁에서/ 언제나 상냥스러웠다/ 병든 병들어가는/ 조국 앞에서/ 고구려인은 울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고향을 찾아/ 녹슨 철로 위를/ 모든 형제들과 같이 달리고만 싶었다/ 고구려인의 한은/ 지금 끝이 없다//

반 조각의 달 / 박봉우
내 얼굴은/ 상처뿐인 조국/ 지도를 그린다.// 보름달도 되지 못한/ 항상 반 조각의/ 달.// 언젠가 한 번쯤……// 우리들의 보름달을 위해/ 모든 옷/ 옷들, 훨훨 벗고// 나비/ 춤추며 모이는/ 그런 날,// 내 얼굴은/ 상처뿐인 조국/ 지도를 그린다.//

분단(分斷)아! / 박봉우
너무나 오래 지쳤다/ 두 동강이 난 허리/ 오로지 조국은 하나여야 하는데/ 가슴 잘린 쓰라림/ 백두에도/ 한라에도/ 태극기 펄럭여야 하는데/ 그날은/ 언제인가/ 우리가 서로 뭉친/ 하나 될 때/ 세계는 놀래리라/ 이 진통 이 아픔/ 눈물로 달래지는 않으리라/ 피어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5천 년을 살아온/ 백의(白衣)였다//

백두산 / 박봉우
높고 넓은/ 또 슬기로운/ 백두산에 우리를 올라가게 하라./ 무궁화도/ 진달래도/ 백의에 물들게 하라./ 서럽고 서러운/ 분단의 역사/ 우리 모두를 백두산에 올라가게 하라./ 오로지 한줄기 빛/ 우리의 백두산이여/ 사랑이 넘쳐라./ 온 산천에 해가 솟는다./ 우리만의 해가 솟는다./ 우리가 가는/ 백두산 가는 길은/ 험난한 길/ 쑥잎을 쑥잎을 먹으며/ 한 마리 곰으로 태어난/ 우리 겨레여.//

언제나 우리 땅 / 박봉우
사랑을 기다렸다/ 너 하나만을 기다렸다/ 북풍이 부는 날/ 새벽/ 눈부신 햇살 앞에/ 너의 모습을 그렸다/ 고향 없는 사람아/ 사랑이 불꽃처럼 불탄다/ 북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녹슨 철로를 밟아본다/ 언제나 우리 땅/ 말이 없다/ 피흘린, 피흘린 자국이여//

사랑의 말 / 박봉우
너를 향해 서면/ 무엇인가 온화로운 이야기를/ 보석같이 주고 싶다.// 거울 속에서 내 얼굴을 한참 보듯이/ 그렇게 말없이 주고 싶다.// 사랑은 네가,/ 나를 영 비워 놓고/ 떠나버리는 허전함에서// 비롯하는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의 공간./ 아지랑이와도 같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아침 안개 속의 귀로.// 사랑도 살며시 창을 열 때……/ 일요일의 우리 공원은/ 낙일(落日) 같은 가난이 따른다.// 우리 서로 만나도/ 사랑은 아예 말하지 않는 언약―/ 은하수와 같은/ 골목길에서 오히려 울고만 싶은 저녁.// 나의 사랑, 나의 사랑의 말은/ 나만이 기억할 수 있는/ 호수와 같은/ 내 엷은 가슴에 전해오는// 가을의 과수원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독한 편지나,/ 멀리 흘러가버린/ 어느 양지 같은 소녀의 꿈을 담은/ 헬만 헷세의 구름……// 울고만/ 울고만 싶은 들녘의 기도.// 그것은 나의 사랑의 말이다./ 사랑의 풍경이다.//

악의 봄 / 박봉우
내 영혼이 시달리는/ 시가지에도/ 내 고독이 회색되어 가는/ 자유항에도 눈물 같은/ 봄은 내린다.// 산과 공원과 포도 위의 가로수는/ 청색을 머금는데……/ 내 나무는 귀로에 서서/ 더욱 심야를 부른다.// 울어도 끝없이 울어도/ 우리 가난한 시민을 위해/ 그 누가 보듬어줄 것인지……// 내 영혼은/ 지치고 시달린 시가지에서/ 빛나는 아침 해를/ 안아보고 싶은데/ 자꾸만 의미를 잃은 계절이/ 나의 주변 가까이 와서/ 악의 꽃씨를 뿌리게 한다.// 모든……/ 사랑한 체하는/ 입상(立像)들에게서 떠나고 싶은,// 영원히 부드러운 무덤의/ 육체여, 음악이여, 바람이여,/ 나의 고요한 나무여……//

 



박봉우(朴鳳宇, 1934년~1990년) 시인
호는 추풍령(秋風嶺)이며, 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 금성리에서 태어났다. 폭음과 방랑과 가난으로 점철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 김관식, 천상병과 더불어 한국 시단의 3대 기인으로 불렸다.

1956년 전남대 2학년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휴전선〉이 당선, 등단하였다. 전라남도문화상·현대문학 신인상(1962)을 수상하였다. 그의 시는 분단 조국의 현실을 날카로이 응시하고 고발하는 시 <휴전선>으로부터 시작된다. 4·19 혁명 뒤에는 타락한 현실에 대한 허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나비와 철조망>·<젊은 화산(火山)> 등을 통해서 분단의 현실을 노래하기도 했고, <서울 하야식(下野式)>에서는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집으로 《휴전선(休戰線)》《겨울에도 피는 꽃나무》《4월(四月)의 화요일(火曜日)》《황지(荒地)의 풀잎》《서울 하야식》《딸의 손을 잡고》《시인의 사랑》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