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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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1.

번역문과 원문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學問之道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 可也.
학문지도무타, 유불식, 집도지인이문지, 가야.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권7 별집 「북학의서(北學議序)」

박지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2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17권 6책.

 

해 설


1781년(정조5)에 연암 박지원은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에 서문을 써 주면서 그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박제가는 1778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북학의』는 그 견문의 기록이다. 박제가의 중국 전략보고서인 셈이다. 박지원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780년에 중국을 다녀왔다. 그의 『열하일기』는 이후 대표적인 연행록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두 사람은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의기투합했다. 눈오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에도, 술을 먹는 날에도, 등잔불이 다할 때까지도 그칠 줄 모르고 토론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연행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발전된 중국의 문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비록 이민족의 왕조인 청이라고 하더라도 배울만한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치했던 두 사람의 생각은 이 첫마디에 집약되었다.

박지원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종에게도 배워야 하며 글자 하나라도 더 안다면 그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다. 자기가 남만 못하다고 해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평생 고루한 채로 어쩔 줄 모른 채 스스로의 지평에 갇혀 지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원은 그런 상황을 두고 “우물안 개구리, 밭 두더지” 마냥 자기가 사는 곳을 제일이라고 여긴다고 하며, 객관적인 세계인식이 미흡하여 누추한 것을 두고 검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탄했다. 박지원의 생각에 그것은 이용후생의 기획이 빈약하고 배우고 물을 줄을 몰라 생긴 폐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순임금은 시골 농부였다가 효제의 실천을 통해 요임금의 발탁을 받아 일약 황제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맹자는 순이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일을 하면서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에게서 잘 배운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가 다양한 직무에 다재다능함을 찬탄했다. 공자는 자신이 젊은 시절 가난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잘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박지원은 공자의 막일도 아마 순임금이 했던 그런 일일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순임금이나 공자같이 성스럽고 재능있는 분들도 사물의 기술을 익히고 필요한 도구를 만들자면 시간도 부족하고 지혜도 막힐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분들이 성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지원은 남들에게 잘 물어서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법이 훌륭하고 제도가 아름답다면 오랑캐에게라도 나아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지원의 눈에 청나라는 단순한 오랑캐의 나라가 아니었다. 땅은 삼대 이래 한, 당, 송, 명의 땅이며, 백성은 그런 시대의 유민이었다. 여전히 삼대 이래의 광대한 규모, 정미한 심법, 상당한 수준의 과학기술과 찬란한 문장을 지닌 옛 법을 보존한 나라였다.

여느 조선의 지식인처럼 ‘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라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 그들의 외피를 본 것이 아니라 여전히 ‘중화의 문명’을 간직하고 있는 그 속살을 관찰한 것이다. 그러므로 박지원은 기꺼이 중국의 발전상을 배우자는 박제가의 주장에 공감하며 지금 우리는 북학(北學)을 해야 하며 청나라에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142년,
병자호란 이후 북벌하자는 주장에서
북학의를 집필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중국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는데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글쓴이 : 함영대(경상대학교 한문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