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 60인분 / 주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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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5.

일전에 한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인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음식이 차려졌다. 떡과 과일 그리고 술 외에 된장국으로 차린 밥상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음식은 남았다.

그 중에서도 된장국과 술이 너무 많이 남아서 연유를 물어보았다. 된장국은 60인분이라서 남았고 술은 먹는 이가 거의 없어서 남았다는 것이다. 술을 준비한 분은 평소 애주가였고 된장국을 준비한 분은 한 끼 더 먹을 것을 미리 계산하여 두 배로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행사가 끝나고 며칠 뒤 들리는 몇 마디 말은 필자에게 커다란 화두가 되었다.

그날 술을 한 박스 준비해 온 사람과 60인분 된장국을 준비해 온 사람의 이야기인데 두 사람의 재산 차이는 백배에 가까웠다. 두 사람은 사람들을 위해 술과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해 왔다.

그런데 두 사람에 대한 견해가 욕심 많은 사람과 꿈이 많은 사람으로 정확하게 갈라졌다. 두 사람 모두 타인을 위해 베풀었는데 사람들의 시각은 왜 욕심과 꿈으로 갈라져 보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욕심과 꿈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낱말이다. 평소 친분이 있는 스님께 욕심과 꿈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그는 내게 이야기의 말머리를 이렇게 던졌다.

“하늘에 달이 몇으로 보이오?”

“하나입니다”

“연못에 달이 몇으로 보이오?”

“하나입니다”

“바람이 불면 연못에 달은 몇으로 보이오?”

“물이 흔들거려서 여러 개로 보입니다.”

“전자는 꿈이고 후자는 욕심인 게지요.”

달이 하나라는 것은 진리다. 그런데 바람이 지나가면 달이 여럿으로 보이니 진리가 수도 없이 많아진 셈이다. 이렇듯 하나의 진리는 꿈이고 여럿의 진리는 욕심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부를 이루었을 때,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의 진리는 사회적 환원이고 여럿의 진리는 자랑과 과시 그리고 체면과 형식, 즉 바람 같은 것들이었다.

욕심의 다른 말은 꿈이다. 욕심이나 꿈이나 모두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욕심은 소유의 개념이 강하고 꿈은 성취의 개념이 더 강하다. 욕심은 물질적 애착이 크고 꿈은 정신적 애착이 크다.

욕심은 보따리를 필요로 하고 꿈은 돗자리를 필요로 한다. 얻은 다음, 얻은 것을 즐길 줄 알아야 꿈을 이루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욕심 많은 사람’이라 하면 듣기가 싫지만 ‘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돈을 번 것은 타인의 공이 8할이다. 그래서 먹고 살만큼 형편이 된 지금부터 나는 그 8할을 돌려주는 일을 하겠다. 그것이 내가 돈을 번 보람이다.”

베푼다는 기준이 ‘나’ 중심인지 ‘남’ 중심인지에 따라 사람의 평도 달라지며 욕심이냐 꿈이냐로 나누어진다. 꿈에도 욕심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꿈을 욕심처럼 해석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이룬 다음에 풀어내는 방법이 욕심보다 한층 우위이기 때문이다.

꿈이든 욕심이든 무언가를 바라고 노력한다는 것,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주먹을 펴는 사람 주변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장강대하를 이루는 반면 주먹을 움켜쥐는 사람 주변에는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신세가 엿보이더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떤 말을 들으며 살아야 되는지 깨우치게 된다.

말은 쉽지만 행동이 쉽지 않은 것이 어디 한 사람만을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욕심을 꿈으로 풀어내기 위해 연못에 이는 바람을 잠재우는 일은 우리가 끊임없이 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