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을 찾는 길에 / 이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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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16.

백제 왕릉을 보고 얼마쯤 가면 신작로가 나선다. 이 신작로는 공주서 부여로 오는 길이다. 이 길로 들어가노라면, 조그마한 산 하나가 가로놓여 있고, 그 산 밑으로는 초가, 혹은 기와집들이 연해 있고, 집과 집 사이나 그 부근에는 나무들이 수두룩이 서 있어 바야흐로 우거진 녹음이 새롭게도 보인다. 여기를 처음 오는 사람으로도 '저기가 부여 읍내다.' 하는 생각을 얼른 나게 한다.

사람을 볼 때에는 첫눈에 드는 얼굴이 있다. 첫눈에 드는 얼굴은 그 눈이나 코나 입이나 귀를 다 똑똑히 본 것이 아니고,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아닌 그러한 얼굴이다. 이와 같이 나의 첫눈에 드는 부여는 저 산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다만 그러한 부여만이다. 그리하여, 나는 부여를 처음 볼 때부터 사랑한다.

부여에 드는 길로 백제탑도 보고 고적 진열관도 보고는, 그 뒤 부소산으로 오른다. 부소산은 멀리서 바라보기엔 조그마하고 단조한 산인 듯하더니, 이제 올라와 보니 퍽이나 복잡하고 아늑한 산이다. 더구나 소나무와 잡목들이 빽빽하게 깃어 있어, 보면 보일 만한 곳이라도 어디가 어떻게 된지를 사뭇 모르겠다. 산새들은 예서 제서 운다. 산채를 캐는 아낙네의 소곤대는 소리도 난다. 나는 이 숲 속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며, 부소산의 한적하고 유아한 맛을 아니 느낄 수 없다.

반월성지를 지나고 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났으니, 하나는 열월대, 하나는 송월대로 가는 길이다. 나는 먼저 영월대로 하여 유인원비며, 식고적을 보고, 다시 가던 길로 도로 와 송월대에 이르러 사비루에 올랐다.

송월대는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제일 좋은 전망대다. 이곳에 서서 사면의 원·근경을 다 바라볼 수 있다. 파란 비단폭을 굽이굽이 펼쳐 두른 듯한 백마 장강이며, 천 송이 만 송이 꽃밭 속 같은 주위에 있는 여러 산과 산들은 오로지 부소산 하나만을 위하여 생긴 듯하다. 그러나 경주와 같이 주위에 있는 장산들에게 조금도 위압을 받는 일도 없고, 한양과 같이 에워싼 산협도 아니고, 평양과 같이 헤벌어진 데도 없이 아주 구격이 맞게 되었다. 그리고, 구석구석 묘하게 아름답게스리 되었다.

부여를 찾아오는 이는 부여의 고적만 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저 고적은 그만두고라도 부여의 유다른 천연한 승상을 보아야 한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산과 들이 아울러 좋게된 이 부여야말로 다른 곳에서는 쉽사리 얻어 볼 수 없는 곳이다. 옛날 전하는 "강산여차호 무죄의자왕"이란 시구도 그럴듯하지 않은가? 북으로 천장대, 서로 대재각·자은대·수북정·구룡포·남으로 금성산·대왕포, 동으로 청도성을 바라보며, 훌륭하던 백제의 영화도 저러하거니 하고 한 번 웃을 뿐이다.

송월대를 버리고 다시 서쪽으로 이 산 일맥을 타고 내려오다 보니, 길은 뚝 끓어지고 수십 길 되는 절벽이 있고 절벽 밑에는 시퍼런 강이 흐른다. 이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옛날 나·당의 연합군이 백제의 궁성을 함락할 때, 비빈·궁녀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여기서 몸을 던져 죽었다는 곳이다. 이 바위에 나는 홀로 서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때의 광경이나 다시 그려 본다―꽃 같은 미인들은 수없이 떨어진다. 자개잠·금비녀는 내려지고, 머리채는 흐트러지고, 치맛자락은 소리치며 펄렁거린다. 그리고, 옥패는 마주쳐 땡그랑거리고 풍덩실풍덩실 물소리는 난다. 만일, 그때 의자왕도 이리 몰려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어찌나 되었을까? 그 어느 치맛자락을 잡고 같이 몸을 던져 죽어 버렸을는지도 모를 것이다. 과연 그랬더라면, 김유신·소정방 앞에서 행주의 치욕도 아니 받았을 것이다. 더욱이 의자왕의 일이 가엾게 생각된다. 차라리 몸을 백마강에 던져 어복리에 장할망정, 저 국수에게는 더럽히지 않겠다는 백제의 혼, 백제의 꽃은 영원히 이 인간에 살아있을 것이다. 나는 이 백제의 꽃을 보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하는 부여에서도 가장 이 낙화암을 사랑한다.

지금에 백마강은 고요히 흐른다. 이따금 고기들이 뛰노는 소리만 텀부덩 난다. 한 평 언덕에는 빈 배가 매여 있고, 그 옆에는 한 늙은이가 낚싯대를 들고 앉아 있다. 그리고 두어 채 범선은 느릿느릿 부산 모퉁이를 지나간다.

나는 이윽고 서 있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홍춘경의 "국파산하이석시 독류강월기영휴 낙화암반화유재 풍우당년부진취."라는 시구를 외어 읊으며, 벼랑길로 들어 요리조리 내려가 고란사를 찾았다.

고란사는 산 쪽을 일부러 헐어 내고 집을 지어논 것 같이 보인다. 뒤는 절벽, 앞에는 청류다. 수백 년 묵은 담쟁이덩굴은 용틀임을 하여 절벽으로 오르고, 절벽에는 틈틈이 고란이 파랗게 나고 그 밑에서는 맑은 샘이 흐른다.

나는 이 샘물이나 마시고 이 절에 있어, 한여름을 났으면 좋겠다. 좌우에 녹음 속에서 굴러오는 새 소리, 벌레 소리도 듣고, 앞 강을 스쳐 오는 바람도 맞고, 심심하면 조룡대·낙화암도 올라보고, 신팔경·구팔경도 낱낱이 찾아보고, 달밤에는 배를 잡아타고 백마강을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였으면 좋겠다.

아아,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