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금팔찌 / 김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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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20.

눈시울이 뜨거워진 어머니를 보며 밥만 꾸역꾸역 삼킨다. 돈을 벌어도 내 손목만 치장했지 고생한 당신의 손은 대접할 줄 몰랐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손가락에 금빛이 반짝일 때 어머니 손에는 생선 비늘이 너덜거렸다. 본때 없어진 손이 뜻밖에도 응접을 받았다. 밥상 너머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에 대한 불만을 애써 쓴웃음으로 윤색한다.

가난으로 다져진 불퉁한 손 모양은 고단한 생의 아픈 표현이었다. 금팔찌 하나가 지난한 세월을 달래 줄 수는 없지만 얼굴은 웃음 빛이다. 분결 같은 손가락에 진주나 비취반지를 낀 여인을 보면 품격이 느껴졌다. 험상궂은 손가락에 금반지 두어 개 끼워진 여인에게선 자식들의 사랑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나는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큰아들이 해준 그것에 혈맥을 느끼며 단 한 번도 팔찌를 풀지 않았다. 잠잘 때도 손목에 감은 채 코를 골았다. 얼마나 찼으면 살갗에 팔찌 문양이 다 생겼을까. 아마 당신이 걸어온 인생의 무늬도 저처럼 올록볼록하게 인각된 세월이었을 것이다.

기세등등하던 목소리가 풀이 죽었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장식품 같은 에어컨이 생각났다. 전기료가 겁이 나 부채로 여름을 나는 분이었다. 노모가 더위를 먹은 건 아닌지 꼬치꼬치 물었다. “그게 아니고, 이 일을 우짜면 좋노. 치매가 왔는 갑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당신의 어깨를 추어올렸던 팔찌가 되레 가슴을 옥죄어 놓았다.

얼마 전, 여름휴가를 고향 집에서 보냈다. 어머니는 배고픈 시절에 먹었던 음식을 별미로 해주려고 바다로 나갔다.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다니며 조개를 땄다. 허리까지 오는 깊이는 잠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껏 거두어 온 해산물을 매만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팔찌가 보이지 않았다. 그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부서지는 파도만이 어머니 가슴을 시퍼렇게 물어뜯었다.

아들이 생일 선물로 해준 순금 두 냥을 물속에 빠뜨렸으니 온전할 리 없었다. 물결을 타고 나오지 않을까, 누가 주워 가지는 않을까, 꼭두새벽부터 그 자리를 맴돌았다. 바다가 허연 거품을 문 채 속을 뒤집어 보였다. 새벽 달빛이 밑바닥까지 들추어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몇 날이나 바위처럼 눌러앉아 지켜보았다. 어쩌면 당신은 오래도록 소금절이 된 갯바위 하나 가슴에 올려놓고, 그 무게만큼이나 자신을 스스로 다그치며 자책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얻어낸 해산물을 나는 그날 냉방기 아래서 맛있게 먹었다.

그로부터 끙끙 앓았는지 어머니의 목에서 피가 나왔다. 의사는 신경성에서 오는 일시적인 증상일 뿐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가진 것 없으면서 딸자식까지 거둔다고 업신여기던 친지의 모욕도 받아냈다. 세상이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면 자식들 앞에 서서 자신의 가슴을 내밀던 강한 분이었다. 가난에서 오는 그 어떤 분노와 슬픔마저도 감내하던 어머니가 그깟 금 두 냥에 무너졌다. 다행히도 증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불덩이를 끌어안은 기분이었다.

홀로 애간장이 탔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통장을 꺼냈다. 두툼한 금팔찌를 사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어머니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다. 더도 덜도 말고 잃어버린 두 냥을 주문했다. 얼마 후 팔찌를 찾아 시골집으로 갔다. 오늘은 내가 해준 금팔찌를 끼고 생일상을 받았다. 국물까지 비운 표정이 금빛보다 환하다. 잠시 밖에 다녀오더니 “오늘만 끼고 니 큰 오라비한테 맡겨 둘란다.”라고 말하면서 누런 팔찌를 어루만졌다. 쇠붙이의 기운이 핏줄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졌을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도 어머니에게 팔찌는 단순히 장식품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녹여 만든 자식과 이어주는 고리 같은 것이었다.

어느새 아흔을 앞두고 계신다. 하루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야야, 니 준다는 걸 깜빡하고 어미 떠나면 손자들 나눠주라고 큰 오라비한테 얘기했는데, 이 일을 우야꼬.”라고 울상을 지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끔벅거렸다. “그때 금팔찌 해준 거, 니 줘야 되는데….” 비로소 이해되었다. “너그들이 준 용돈으로 부은 적금이 내년 초에 만기다. 그거 타면 니 주께. 큰 언니가 얘기 안 해줬으면 또 큰일 날 뻔 했데이.”라고 덧붙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머니 것인데, 무어가 그리도 마음에 걸렸을까.

그 바닷가로 나왔다. 당신의 음성 같은 파도 소리가 자꾸만 목젖에서 찰랑거린다. 눈앞이 뿌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