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막골 / 정서윤

댓글 2

수필 읽기

2021. 9. 22.

골 초입에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나무들이 잎을 버린 산등성이는 마치 용이 꿈틀대듯 골짜기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를 앞서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았다. 계곡의 야윈 물소리는 얼음 속으로 가늘게 속삭이며 골짜기 밖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골 안쪽으로 올라갔다.

능선이 구불구불 걸어가다 멈춘 것 같아 잡고 가던 길을 잠시 놓고 고개를 들었다. 골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언제부터 전해 왔는지 알 수 없으나, 그곳은 소리막골이라고 앞서가는 이가 말했다. 제법 널찍한 터를 잡고 나직하게 엎드려 있는 초가집 한 채가 외로워 보인다. 마당에는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충직하게 버티고 선 채 나그네를 맞았다. 누군가가 거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집은 비어있었다. 소리꾼 한 사람이 살고 있다고 일행이 귀띔을 한다. 예부터 소리가 머물던 곳이었을까? 소리막골에 소리꾼이 살고 있다는 것은 필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신비한 전설 한 토막이 상상의 나래를 편다. 꼭 한번 찾아오리라 마음을 다지며 재촉하는 일행을 따라 수레 길을 찾아 나섰다.

신라의 신문왕이 월성에서 문무대왕의 혼을 모셔놓은 감은사까지 수레를 타고 갔다 전해지는 길. 옛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따라 답사 차 가는 길이었다. 겹겹의 세월은 길을 지우며 흘러갔던 걸까. 수레 길이 거기 어디쯤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지만, 일천오백여 년의 세월이 길을 지켜내지 못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만 분분할 뿐 왕의 옛길은 어디에도 남아있질 않았다. 세월이 지켜내지 못한 것이 어디 길뿐이랴. 천년의 왕조가 펼친 그 찬란했던 영화도 간데없어,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길 없는 길이 무언으로 전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앞서가는 산길 중간에는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길을 막는다. 빈 가지에 걸려있던 엷은 햇살이 우수수 떨어지니, 뒤질세라 또 한 무리의 바람 소리는 나무 사이로 달려 나가 다시 길을 묻고 있었다.

소리막골과의 해후는 며칠이 지난 저녁 무렵에 이루어졌다. 그곳에 도착하자 산골의 겨울 해는 급히 산을 넘었고, 노을도 바쁜 듯이 따라가 버렸다. 그새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오더니 산을 감싸 안고 봉우리들을 표 나지 않게 삼켰다.

나는 어둠과 어울려 휘적휘적 초가집 마당으로 들었다. 방안은 촛불이나 호롱불인지 희미한 불빛이 창호지를 바른 문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림자 두엇이 문에 어른거린다. “계십니까?” 하려는 순간, 방에서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기척을 내려던 내 소리는 싱거운 듯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예고 없이 찾아간 객이 방해가 될까봐 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맘을 정했다. 본의 아니게 남의 소리를 몰래 듣게 된 것이 꺼림칙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기에 울도 담도 없는 뒷마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지폈는지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솔 내가 스며있다. 마침 굴뚝을 감싸고 있는 펑퍼짐한 밑자리가 훈훈했다. 그 곁에 앉아 소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깊어가는 밤의 정적 때문일까. 방안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층 더 신비스런 감성으로 전해온다. 폭포에 물이 떨어져 흘러넘치듯, 소리는 방안을 휘젓고는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자의 소리는 먼 산의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같다가 다시 한차례 설움에 차 애절했다. 이어 남자의 소리.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터지는 비음의 날카로움이다. 깊은 강 두꺼운 얼음이 봄바람에 쩌 정 쩡! 갈라지는 소리가 아마도 저러하지 싶었다. 쉰 소리를 맑게 걸러 낸다고 할까. 득음은 맑은 소리를 맑게 내는 것이 아니라 쉰 소리를 맑게 내는 것이라 들었다. 득음의 경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오르막이 득음이라 하였던가. 이 밤중에 누군가를 사로잡는 소리가 바로 득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감동은 그런 것이 아닐까. 기쁨이나 슬픔도 아니면서 가슴을 흥건히 적셔내고, 막혔던 무언가를 확 뚫어내는 유장한 소리 말이다.

우리 땅에 뿌리내려 자생하고 있는 질경이나 제비꽃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져 온 우리 소리 민요와 농요. 한 많은 무녀들이 울음을 음악으로 만들었다면, 그는 민초들이 살아온 고달픈 삶을 구슬프게 소리로 풀어내고 있었다. 불빛 희미한 문을 통해 흘러나온 소리는 허공으로 퍼져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으로 들어와서 파장을 일으켰다. 나를 세상에 데려오기 전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던 소리는 아니었을까. 근원을 만난 것처럼 익숙한 곡조에 젖어들었다.

두레로 한 달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무논에 엎드려 모를 심던 사람들이 노동의 고달픔을 달래던 모심기소리, 시끌벅적한 시골 장날 구름떼처럼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던 각설이 타령, 동지섣달 긴긴밤 할머니가 무릎이 닳도록 삼을 삼으며 부르던 백발가, 이승을 하직한 할머니를 실은 꽃상여가 골목을 지나 앞산으로 갈 때, 상두꾼들 앞에 선 냉천 어른이 요령을 흔들어 대며 구슬피 토해내던 상엿소리. 세상을 떠나는 영혼마저 소리로 한을 풀어서 보냈던 상엿소리는 온 동네를 울리고 산천을 울렸다.

입으로 전해져 온 우리 민요는 민초들의 가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잔치판에서 한바탕 신명나게 불렀던 것이 아니라 초근목피로 배고픔을 대신하고 산골을 누비며 산나물을 뜯을 때 지친 시름을 달래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우리 강산의 바람에 실려, 다닥다닥 붙은 다랑논두렁을 걸어, 황토언덕 사래 긴 보리밭을 더듬어, 생솔가지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 장단으로 풀어지는 그 소리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서 내 속의 한을 풀어냈을 것이다.

대대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선조들의 삶 속에서 절로 배어 나온 농요 또한 천지와 소통하는 통로가 아니었을까. 어릴 적 고향마을에서는 한 해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 정월 대보름이면 지신밟기를 했다. 동네 어른들이 대밭 모퉁이에 모여 사물을 두드리고 상모를 돌리며 집집마다 지신을 밟았다. 소리로 하늘을 달래고 춤으로 땅을 얼러 재앙을 막고 풍년을 비는 기원이었으리라.

소리막골에는 역사 속에 사라져간 왕의 옛 길처럼,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 가락의 명맥을 잇고, 그 원형을 보존하려 혼신을 기울이는 우직한 소리꾼이 살고 있다. 그는 서민의 아픔 속에 숨겨진 희망과 기쁨의 외침을 알고 있는 듯, 민족의 애환과 혼이 담긴 소리를 질박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긴 강물처럼 곡절을 겪으면서 흘러온 우리 소리. 소리막골에는 걸쭉하게 잘 익은 농주 맛 같은 우리 민요와 농요가 한창 농익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