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할매의 미소 / 백현숙

댓글 2

수필 읽기

2021. 10. 26.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산지사방 가을빛이다.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좁고 긴 골짜기를 지나니 누런 들판이 낮은 산을 등에 업고 낮잠을 자는 듯 평온한 동네가 눈에 잡힌다.

간절함을 안고 돌할매를 찾아 나선 길이다. 영천시 북안면 관리에 있는 돌할매 공원. 낯선 시골길에 안내판이 반갑다. 돌할매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지극정성 기도를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적혀있다. 수백 년 전부터 주민들이 당산 신으로 모시면서 마을의 대소사나 가정의 길흉화복을 빌고 각자의 소원을 다져보는 신비의 돌 할머니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니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한 표정이다. 하여 햇살마저 골짜기 사이로 안개처럼 내려앉았고 나무들은 졸고 있는 듯 적막하다. 줄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그림자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 너, 나 없이 팍팍한 세상살이에 마음 기댈 곳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가 싶다. 긴 줄 끝에 서 있는 나 또한 마음이 버겁다.

내 차례가 되었다. 둥글둥글한 돌을 마주했다. 타조알만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둥글지는 않았을 터. 억겁의 시간을 견디며 닳고 닳았을 세월의 결이 느껴진다. 조심스레 돌을 들었다. 두 팔이 잠시 허공에서 헛돈다. 생각보다 가볍다. 다시 돌을 제 자리에 놓고 어미의 간절한 마음을 내비쳤다. 시험 발표가 있던 날, 떨어져서 너무 속상한데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프더라며 내 앞에서 큰 덩치를 웅크리고 흐느끼던 아들의 모습이 어린다. 가슴 속에 찌르르 전기가 흐른다. 속절없이 눈꺼풀이 젖어 드는데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우리 집 연못에 있던 돌이 나를 불러 살포시 안아준다.

한참 클 때까지 시장 근처에서 살았다. 가게에 딸린 안채에서 여덟 식구가 부대끼며 살기에는 한계에 다다를 때쯤 아버지는 큰 집을 지었다. 각자의 방이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조그만 연못도 있었다. 물이 가득 찬 그곳에는 연보랏빛 부레옥잠 사이로 크고 작은 금붕어들이 노닐었다. 연못 둘레에는 목련, 모과나무가 있었고 돌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영산홍과 회양목이 풍경을 보탰다.

믿기 어렵지만, 아버지가 태어나자 할머니는 귀하게 얻은 아들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향 동네의 냇가에 있는 돌에 아버지를 팔았다. 새집의 연못에 그 돌을 갖다 놓았다. 섣달그믐날이면 어머니는 연못에 있는 돌 옆에 밤새 촛불을 켜놓으셨다. 아버지의 무병장수와 우리 집안의 복됨을 바라셨으리라.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그 연못에 있는 돌이 보살펴주셨음인가. 우리는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고 엇나감 없이 곱게 자랐다.

오 남매 모두 짝을 만나 각자 가정을 이루었다. 부모님은 그 집에서 연못에 금붕어를 키우고 화초를 가꾸면서 노후를 보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집 바로 앞 동네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그 여파로 우리 집 연못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물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고 새버렸다. 그렇게 연못이 제구실을 못 할 즈음 아버지가 자리에 누우셨다. 이 년간의 투병 후 아버지는 천년집으로 이사 가시고, 집을 처분하면서 그 돌도 없어졌다. 집을 팔 즈음에 어머니가 정신을 놓으셔서 자신의 손으로 집 정리를 못 하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신경 써서 그 돌을 챙겼으면 좋았을 걸 싶다.

젊었을 때는 살다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어머니한테 이야기하면 마법을 건 것처럼 다 잘 풀렸다. 어떨 땐 복받치는 서러움에 소리소리 질렀고,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라도 네 마음이 풀린다면 다 들어 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내게는 어머니가 그 연못의 돌이었다.

기도를 하고 다시 두 손으로 돌을 들었을 때 처음보다 무겁게 느껴지거나, 들리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돌을 들었다. 묵직하다. 아까 분명히 가볍게 들렸던 돌이 신기하게도 밑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꼼짝 않는다. 소원이 이루어지려나. 아들이 시험에 합격이라도 한 듯 환희심을 느끼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린다. 다시 합장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나는 돌 하나에 온 마음을 바쳤던 우리 어머니만큼 순수함을 지니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 내 아이를 위해 연못에 있는 돌이 되고 싶다. 제 팔자 제가 갖고 태어난다지만, 사회에 첫발 내딛기가 어려운 아이를 바라보면 가슴에 바람이 분다. 몇 번의 헛발질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안다. 다시 우뚝 일어서리라는 것을.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나. 어머니께서 우리를 위해 염원하셨던 것처럼 나 또한 돌을 품고 기도한다. 세상을 향해 다시 용기를 내 볼 수 있도록.

홀가분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비녀 머리 곱게 빗으시고 단정하게 앉아있는 돌할매상(像)을 바라본다. 내 어릴 적 우리 할머니처럼 살포시 미소 짓는 모습을 보니 그 품에 꼭 안기고 싶다. 내 새끼 울지 마라.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삶에 아픔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인생은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돌할매의 말씀이 바람결에 실려 와 가슴을 채운다. 더디 데워지고 또 천천히 식는 돌에게서 배운다. 욕심 부리지 말고 재촉하지 말아야겠다. 시간에 길을 맡기고 또 한 번 마음 추스른다. 다시 희망을 가지는 것,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예의다.

수 상 소 감

엄마를 만났습니다. 추석을 맞아 철옹성 같던 요양원 빗장이 잠시 풀렸거든요. 백신접종완료증명서라는 열쇠를 들고 처음으로 대면면회라는 것을 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엄마가 딸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합니다.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눈이 동그래지더니, 그제야 마스크 위의 눈만 보고도 딸을 알아본 듯 했습니다. 자꾸 내 온몸을 쓰다듬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이대로 같이 집에 가자고 말하고 싶은데, 그냥 목구멍으로 꿀떡 넘기고 돌아섰습니다. 가끔, 사는 것이 시틋해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살이에 마음이 고단할 때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꽤 나이가 들 때까지 엄마 가슴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오롯이 내 편이 돼 준 엄마가 하나, 둘 기억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돌이 돼 주어야 합니다. 막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아들.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고 제자리에 우뚝 서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겠지요. 나도 내 엄마처럼, 아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돌이 돼 주고자 합니다. 글 쓴다고 유세를 떠는 아내를 위해 텔레비전 볼륨을 낮춰주는 남편, 뒤로 물러나고 싶을 때마다 다시 등 떠밀어준 아들. 두 남자가 있어 저의 글쓰기는 행복합니다.
△2019 대구수필문예대학 수료, △2020 수필과비평작가회의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