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절터, 장연사지 / 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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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7.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물길이 비단결같이 곱다는 청도 금천(錦川)의 장연사지를 걷는다. 온화한 부처의 미소가 그리웠을까. 개망초 무리들의 탑돌이가 한창인 절터에는 살색 감꽃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넉넉했던 절터는 감밭으로 내주고 한 뼘 땅에 몸을 부비고 있는 쌍탑의 처지가 딱했다. 금당을 지켜내지 못한 회한 때문일까. 두 탑은 멀리 흘러가는 동창천만 무심히 바라볼 뿐 말이 없다. 태고를 향해 눈물짓는 망부석 같기도 하여 탑돌이 하는 내 마음이 짠해진다.

육화산의 끝자락,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 장연사지는 모든 게 수수께끼다. 빈대가 많아 불태웠다는 구전 외에는 절의 규모도, 창건과 폐망도, 심지어 절의 이름까지 어느 문헌에도 언급이 없다. 쌀뜨물이 십 리나 흘렀다는 전설과 쌍탑의 구조를 읽어 통일 신라 시대의 대가람으로 추정할 뿐이다. 절 이름 역시 장연리라는 동네 이름을 따서 장연사지라 불린다. 절집은 역사 속으로 소멸되고 탑 뒤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돌조각들만 널브러져 있다. 이곳의 백미는 당연 쌍탑이다.

보물 제677호로 지정된 두 개의 탑 중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 동탑이다. 높이 4.6ⅿ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기단부와 탑신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여 살짝 치켜올린 멋이 단출한 느낌을 준다. 근년에 해체하여 보수하는 과정에서 1층 몸돌 윗면에서 목제금칠사리함이 발견되었으나 지금은 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서탑 역시 동탑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키가 4.84m로 조금 크다. 일찍이 허물어져 개천가에 버려져 있던 것을 1980년에 수습하여 복원했다. 몸돌과 지붕돌에 크고 작은 상처가 있고, 하층 기단은 대부분이 보충 석재로 이루어진 게 아쉽다. 균열이 간 석탑 곳곳에는 지난날의 아픔을 말해주듯 주름진 인생의 무늬가 그려져 있다.

담장 미인으로 비유되는 이 두 탑은 신라의 자부심인 불국사의 석가탑을 빼닮았다. 단순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한 균형미는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맛을 준다. 화려한 돌탑의 대명사로 통하는 다보탑에 비해 석가탑을 빚는 것이 훨씬 더 고난도의 기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이곳 쌍탑의 가치를 다시 읽는다. 절터는 눈이 아닌 가슴으로 읽는다고 하지만 무성한 과목 때문에 금당 터조차 가늠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머뭇머뭇 감밭을 빠져나오는데 언덕배기 과수원에서 노부부가 매실을 수확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넸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천둥 같았다.

“불탄 절을 찾아오셨군요. 탑만 보고 가는 건 절반만 보고 가는 것이외다. 절터에서 나온 석물이 온 골짝에 흩어져 있어서…. 말하자면 이곳은 지붕 없는 박물관인 셈이죠.”

그랬다. 골짝은 한마디로 노천 박물관이었다. 영감님이 일러준 대로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첫 조우는 개울 건너 감밭 가운데에 몸을 숨긴 당간지주다. 반신을 잃고 돌무지로 변해가는 모습이 처연했다. 한때는 절의 상징으로 깃발을 높이 내걸고 구름 같은 신도를 맞기도 했으리라. 이젠 농사꾼의 애물이 되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 그래도 가람배치를 가늠케 하는 소중한 역사의 흔적이 아닌가. 비록 돌이지만 세월의 파장이 찌르르 가슴으로 전해진다.

동네 앞으로 몇 발짝 옮기자 어느 문중 제실이 대문을 활딱 열고 있다. 마당 한켠에는 돌기둥이 장승처럼 서 있다. 눈에 익어 살피니 잘린 당간지주의 반신이 아닌가. 대문간에는 커다란 석조가 물을 담뿍 담고 있고, 건물 기단 위에도 석등을 잃은 팔각 받침대가 입을 벌리고 있다. 계단식 댓돌 또한 폐사지 냄새가 난다. 불교의 통 큰 자비일까. 유교와의 공존이 이색적이다. 한때 유학자들이 거품을 물고 비판해온 것이 불교가 아닌가. 어쩌면 패망한 이 절 역시 억불 숭유를 외치던 인간 빈대가 불태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했다.

어느 민가의 정원에 모셔진 불두를 잃은 석불, 멀리 강 건너 폐교에 유기된 상반신만 남은 미륵불과 장대석, 인근 마을 초입에 비석으로 서 있는 배례석도 있다. 한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지만 안상과 연화무늬가 뚜렷한 이 배례석은 불과 10여 년 전 홍수 때 개울에서 건져 올렸다고 한다. 풍요의 상징, 은행나무랑 어우러져 민초들과 고락을 함께하고 있으니 본디 품었던 불심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부글거리는 내 심기를 다독여 본다.

다시 절터로 돌아와 마음 자락 풀어놓고 탑 곁에 앉는다. 제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진 신라의 흔적들을 곱씹어본다. 어쩌면 그토록 쓰라리고 아픈 우리네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지. 가슴이 먹먹했다.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은 것이 절터다. 부서져 형체를 어림할 수 없는 돌조각, 기와조각 하나에도 그 나름의 시간이 새겨져 있고 많은 얘기를 품고 있다. 그것이 문화재를 함부로 옮기거나 훼손해서 안 되는 이유가 아닐까.

절터는 말이 없다. 북풍처럼 쓸쓸해도, 제 모양을 잃고 온전한 것 하나 없어도 나는 굳이 절터를 찾는다. 대웅전이 있고, 부처가 있고, 스님이 있어야 절이랴. 폐사지가 남긴 흔적을 쫓아 마음속에 부처님을 새기고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불심이요 깨달음이 아니겠는가.

폐사지란 복원보다는 보존이 더욱 역사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전설 속 빈대 절터, 하루 빨리 흩어진 역사의 흔적들을 한곳에 모아 만인의 사적지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천년을 외롭게 버텨온 석탑에 대한 위무가 아닐까.

산그늘이 탑정에 걸린다. 두 탑을 뒤로하고 느릿느릿 언덕을 내려온다. 산발치를 벗어나 뒤돌아보니, 저기 절 한 채 우뚝하다.


수 상 소 감

지루한 가을장마 끝에 모처럼 얼굴을 드러낸 햇살이 오랜 친구처럼 반갑다. 독서의 계절,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다. 책속에 아니, 꿈속에 푹 빠져 있을 때다. 뜬금없이 당선 소식이 날아들었다. 분명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아직은 늦깎이로 배운 글이라 서툰 문장이 곱지 못하다. 어설픈 단어들의 담금질만 계속하는 내가 긴 여정의 끝에는 어제와 다른 나를 꿈꾼다면 욕심일까. 더욱 분발하라는 격려로 알고 교언영색이 아닌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해 정진할 것이다. 경북 관광산업의 진흥을 위해 등불이 되고 있는 대구일보와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인다.
△2020 공직문학상 수필부문 금상. △2020 달구벌문학상 가작. △2018 인권에세이 공모전 대상. △2017 국군 감동스토리 공모전 대상. △2016 우리숲 수필 공모전 대상. △영남대학교 문학과정 제7기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