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응원하다 / 박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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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6.

2월의 어둑새벽, 하늘에 별들이 바들바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때마침 뒷마당에 수탉이 홰를 치며 별을 향해 어서 하늘에서 사라지라며 재촉했다. 멀리서 장단을 맞춘 화답이 하늘에 메아리쳤다. 별은 태양 빛을 빌어 시나브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부스스한 새벽어둠을 뚫고 나선 길, 어머니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 자전거에 발을 맞춰 걸었다. 온전히 잠을 떨치지 못한 모자母子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목에 감긴 목도리를 풀어서 내게 감싸주려 했다. 나는 머리를 살짝 틀어 피했다. 겨울만 되면 손가락 끝이 갈라져 연고를 바르는 어머니, 그 모습을 보면 늘 가슴 아팠다.

어머니는 읍내 상설시장 난전에서 채소 벌이를 했다. 시골 장날을 찾아 채소 장사를 떠나던 그 날도 어머니 손끝은 성한 곳이 없었다. 나는 전날 미리 싸놓은 보따리를 풀고 어머니 요구대로 채소가 다치지 않게 차곡차곡 더 담았다. 이마에 새벽바람을 이겨낸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왔다. 보따리를 자전거 뒤에 싣고 단단히 묶었다. 굵고 둥근 쇠막대를 앞 동태와 손잡이에 덧댄 짐바리 자전거마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로 넘어갈 기세였다.

털털거리는 시골행 버스에 보따리를 실어놓고 돌아오는 길. 신문이 없는 월요일이라 몸도 마음도 새털처럼 가벼웠다. 자전거도 신이 난 듯, 내가 아니라 자전거가 달렸다. 한천 다리를 건너 남산 밑을 지나고, 냉기 감도는 저수지를 지났다. 아버지 심부름 다녀올 때 보던, 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오층석탑을 뒤로한 후 철길 옆으로 난 작은 둑을 따라 달렸다. 그때였다. 석탄을 실은 열차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검은 무쇠 덩어리는 빚쟁이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는 듯했다. 도망치듯 달렸다. 자전거가 빠를 수는 없었다. 내 옆으로 지나칠 땐 “꽤~~액!” 하고 더 길게 굉음을 울렸다. 오늘은 봐준다는 소리로 들렸다. 오기가 생겼다. 열차를 따라잡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철교 난간에 막혀 버렸다. 약 올리며 사라지는 열차 꽁무니만 바라보다 가물가물해질 즈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방금 본 잔상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호기롭게 두 손도 놓아버렸다. 순간 몸뚱이가 허공을 날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새벽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고, 산비탈에 하얀 건물의 내가 다니는 학교가 보였다. 살얼음 낀 실개천에 자전거와 함께 처박았다. 이상했다. 참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감았다. 바짓가랑이가 축축이 젖어 들었다. 무르팍이 까졌나 보다. 오른쪽 눈가에 끈끈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문질러보았다. 피였다! 눈 옆 깊게 팬 상처에서 아침 태양 빛이 스며든 붉은 피가 퐁퐁 솟아났다. 내의를 찢어 상처 부위에 눌렀다. 긴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며 옆으로 지나갔다. 벼가 뎅강 잘려 나간 논바닥에선 파릇한 새순이 돋고 있었다.

자전거를 찾았다. 자전거 앞 발통의 굵고 둥근 무쇠가 굽어 있다. 절룩거리며 한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 눈자위를 누른 채 걸었다. 타원으로 꾸불꾸불 굴러가는 자전거 앞바퀴를 보자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자전거가 날 놀리는 것 같았다. 신작로가 가까워졌다. 버스 한 대가 탈탈거리며 앞쪽으로 다가왔다. 젠장! P면으로 가는 버스였다. 버스가 옆을 지날 때 보았다. 두 손을 창에 댄 채 금방이라도 차에서 뛰어 내릴 것 같은 어머니를…. 버스는 어머니 놀란 표정만 남겨둔 채 그렇게 가버렸다.

밤부터 비가 내렸다. 잠결에 듣는 빗소리는 더 깊은 잠으로 몰아갔다. 어머니는 비 핑계 삼아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잠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먼데 산사에서 범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새벽이면 집을 깨우는 아버지였다. 고저 단장 없이 반복되는 아버지 목소리를 견딘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끈기가 필요했다. 우산까지 받쳐 든 아버지는 그날따라 더 집요했다.

새벽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추적추적 무겁게 비가 내리고 있어 여명은 안간힘으로 버티는 어둠을 밀어내지 못했다. 자전거 안장에 빗물이 축축이 고여 있었다. 대청에 놓인 걸레로 대충 문질렀다. 힘차게 페달을 밟자 가랑이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었다. 그제야 사랑방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한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든 채 용케 골목을 빠져나왔다. 축축하게 젖은 신작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바닥이 빛을 내고 있었다. 어둠이 먹어 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산을 자전거 앞에 끼웠다. 지난 날 실개천에 처박은 후로 간혹 눈을 감고 달리는 버릇이 생겼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상쾌했다. 벌써 오월인가? 빗물이 볼을 타고 입으로 흘러들었다. 목을 지나 가슴을 타고 배로 기어들어갔다. 뱀이 몸을 감고 내려가는 기분에 파르르 소름이 돋았다.

비 오는 날의 신문배달은 고역이었다. 신문이 비에 젖지 않게 비닐로 덧씌워야 했고, 신문을 던질 때에도 빗물이 없는 곳에다 정확히 해야 했으며, 시간 역시 두 배로 걸렸다. 그렇게 칠십여 곳을 돌고 나면 배는 허기가 졌다. 하지만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허겁지겁 학교에 가야 했다. 그나마 나의 애마, 튼튼한 자전거가 있어서 지각은 면할 수 있었다.

골목 한 구비 돌자 문득 라일락 향기가 유혹했다. 담장 너머 핀 보라색 꽃가지를 꺾어 장독대 항아리 뚜껑에 꽂아 두었다. 식구 누구도 출처를 묻지 않았다. 그 뒤로 내 꽃서리는 멈추지 않았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선 채 까치발로 넝쿨 장미를 꺾다가 가시에 찔려 자전거와 함께 나자빠졌다. 요란한 소리에 우람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귀싸대기 한 대 제대로 얻어걸렸다.

그러나 새벽이면 의식을 치르는 어머니를 위해 꽃 서리를 멈추지 않았다. 정화수 떠 놓고 빌던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꽃가지가 응원하고 있었다. 절박함 속에 새싹 같은 희망이었다. 어머니 가슴을 짓밟고 도시의 하이에나가 되어 방황하는 큰형을 위한 기도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