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발의 철학 / 복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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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2022. 1. 3.

2022 매일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한국의 그릇에는 도자기와 막사발이 있다. 가만히 보면 생김새도 다르고 쓰임도 달라서 재미있다. 사람도 도자기 같은 사람이 있고 막사발 같은 사람이 있다.

도자기는 관요에서 이름난 도공에 의하여 질흙으로 빚어서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다. 도자기는 관상용 또는 화병이나 찻잔, 식기 등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대부분은 만들어질 때부터 용도가 정하여진다. 격식 있는 상을 차릴 때는 밥그릇 국그릇 탕기 찜기 접시며 주병 등과 같이 용도대로 사용해야 한다. 국그릇에 밥을 담을 수는 없다. 그릇 하나에 하나의 용도만이 정하여졌다. 도자기는 활용 면에서 보면 매우 편협한 그릇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깨끗이 닦아서 장식장 등에 전시되어 관상용으로 사용된다. 행여 다칠세라 다루기에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우리 집 대청마루 장식장에는 꽃무늬가 선명한 도자기가 항시 진열되어 있었다. 언뜻 보아도 값이 꽤 나가는 듯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머니가 시집와서 처음으로 샀다는 도자기는 어머니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목록 중 으뜸이었다. 우리 집 도자기는 귀한 손님이 오실 때나 아버지 생신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늘 장식장에 모셔져 있다. 어머니는 훤칠한 키에 뽀얀 살결을 가지고 도자기를 닮은 형을 무척 사랑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은 장인 소리를 들을 만큼 빼어난 솜씨를 가진 꽤 유명한 전문가였다. 전문가는 자기 직분만 충실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도자기 그릇과 닮았다.

막사발의 모양새는 투박하나 기품이 있어 보인다. 두껍고 거친 겉면은 부드럽지 않으나 기세등등한 장수의 넉넉함을 닮았다. 하늘을 향하여 벌린 주둥이는 당당하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졌다.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수수하고 꾸미지 않은 자연미에 빠져든다. 도자기와 같이 일상생활에 주로 식기로 사용되었으나 사용 빈도 면에서는 막사발이 단연 앞선다. 막사발은 음식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담아낸다. 도자기가 용도 외에는 사용되기를 거부하는 이기심 많은 그릇이라면, 막사발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닌 서민들의 그릇이다.

형은 특별한 용도로만 사용되는 도자기를 닮았다. 형은 당연히 전문가의 일 외에는 집안일을 전혀 거들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가졌다. 당연히 집안 심부름이며 잡일은 내가 도맡아 하였다. 어머니는 나를 종그락이라고 불렀다. 작은 표주박인 종그락처럼 부리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언제든지 손에 끼고 다니며 온갖 일을 맡기기에 좋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도자기를 닮은 형이 부러웠다.

그릇은 채워졌을 때는 그 용도를 다한 것이다. 다시 비워졌을 때 비로소 그릇의 임무를 다시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비어 있어도 그릇 본연의 의무를 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막사발처럼 내용물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채우고 비울 수 있는 그릇이 좋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군자불기(君子不器)를 가르쳤다.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아서는 아니 된다.", "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말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데 혈안이 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심각한 개인주의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개인 이기심이 극치를 이룬다. 정치인들도 국가나 국민의 안위보다는 자기 개인이나 정당의 이익만 좇는다. 도자기처럼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사회는 전문가도 필요한 세상이지만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아는 막사발처럼 넉넉함을 가진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스마트폰은 현대 문명의 총아다. 그 원리가 막사발을 닮았다. 모든 걸 다 담았기 때문이다. 막사발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최첨단 그릇이다.

막사발은 막 만들어서 막사발인지, 막 사용하여서 막사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나는 후자의 편이다. 막 사용하다가 금이 가거나 이가 빠져나가도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행여 다칠세라 아까워서 사용하지 못하고 구경만 하는 도자기를 대신하여, 집안의 온갖 행사에 불려 다니며 고생을 한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국물이 새거나, 깨진 부분이 일정 선을 넘으면 그때서야 버려진다. 아니 재수가 좋으면 개밥그릇으로 용도가 지정된다. 처음으로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개 밥그릇……!" 개의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다. 가끔 술 취한 주인장의 호된 발길질에 채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자기를 닮은 첫아들인 형은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앞서갔다. 정해진 용도대로 자기만의 길을 걷다가 장식장에 갇힌 채로 간 것이다. '한 마리 산토끼를 잡으려고 온종일 산속을 헤매다가, 아름다운 경치는 구경도 못 해 보고, 해 질 녘에 내려와 잠드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을 모른 채로……!' 그토록 도자기를 사랑하던 어머니도 도자기의 사망 소식을 모른 채 종그락만을 남겨 둔 채 소천하셨다.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막사발이 되고 싶다. 그동안 도자기처럼 생각 없이 살다 보니 이기심으로 살아온 나날들이 후회스럽다. 여생은 막사발을 닮은 넉넉함으로 살아가리라. 설혹 개밥그릇이 되면 어떠하랴.

 

 

[2022 매일신춘문예 당선소감]

 

이제 '매일신춘문예' 당선자로 불리게 되었다. 대단한 영광이다. 호칭에 걸맞은 작가가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당연하다. 하심(下心)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

그릇 본연의 용도는 채우는 데 있다. 가득 찬 그릇은 용도를 다한 것이다. 다시 비워야만 비로소 담을 수 있다. 번뇌 망상으로 가득 찬 뇌 속도 비워야 한다. 비운 자리에 새로운 희망으로 채워 살아가겠다. 그래서 다시 채운 희망이 지면 위에서 살아 꿈틀대는 수필을 쓰겠다.

서럽던 지난날의 기억들은 모두 비워 버리고 희망으로 가득 채우련다. 그리하여 무녀(巫女)의 예리한 춤사위처럼 희망이 지면 위를 자유롭게 노닐게 할 것이다. 그렇게 신명 난 이야기 마당을 한껏 즐기는 멋진 글쟁이가 되고 싶다.

때로는 시류와 타협하지 않는 옹골진 모습으로, 때론 이웃과 아픔을 달래주고 나눌 수 있는 정겨움으로 지면을 채워 나갈 것이다.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면 수필과 함께 웃고 울고 하면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수필은 지난 생을 반성하고 추억하기에 좋다. 글을 쓰면 나머지 인생을 주관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졸필이지만 풍류를 즐기는 멋있는 글쟁이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온 세상이 괴질로 인하여 인심이 흉흉하다. 지쳐있을 때 걸려온 매일신문의 전화는 힘을 내어 다시 살아가자고 다짐하는 확실한 이유가 되었다. 뽑아 주신 매일신문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복진세: 1959년 충남 예산 출생, 세종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안산평생학습관 IT 강사

 

 

[2022 매일신춘문예 심사평] - '꽃눈개비 내리던 날에', '지도리', '막사발의 철학' 두고 최종 고민

                                                            심사위원: 구활(수필가), 허상문(문학평론가)

 

202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는 무려 533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최근 들어 갈수록 높아가는 수필 문학에 대한 열기를 잘 방증해 주는 결과라 하겠다. 또한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어두운 시기에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높아가는 덕분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양적인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깊이를 담보해주는 작품이 충분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의 손에 남은 작품은 '꽃눈개비 내리던 날에', '지도리', '막사발의 철학'이다.

'꽃눈개비 내리던 날에'는 화자의 아이가 아끼던 장난감인 레고를 친구에게 주어버린 에피소드에 대한 작품이다. 우리 시대에 갈수록 상실되어가는 어려운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새로이 생각하게 하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작품이 지나치게 사건의 서술로만 이루어져 있어 주제의 깊이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지도리'는 여닫이문에서 문을 받치면서 회전축을 가능케 하는 '지도리'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다. 균형과 중심을 잃어가는 우리 시대에 지도리 같은 중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착상은 좋았으나, 하반부로 넘어갈수록 주제의식이 다소간에 혼돈스럽고 달팽이라는 보조관념의 채택도 작품의 주제와 유기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막사발의 철학'은 도자기의 일종인 막사발을 통하여 화자의 형의 모습을 소환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쉽게 스쳐 지나가는 흔한 사물을 통하여 그 두께와 깊이를 생각하는 작가의 사물에 대한 형상화의 솜씨가 돋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도 수사나 묘사보다는 지나치게 서술에 치중하다 보니 명징한 문학적 언어 사용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지적되었다. 이런 아쉬움을 남기며 '막사발의 철학'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힘들게 합의했다.

끝으로, 기존의 여러 매체를 통하여 등단하거나 수상한 기성 작가들이 신춘문예에 다시 응모하는 일에 대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아무리 모든 분야에서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시대라고 하지만, 문학판에서만이라도 새로운 후배를 위해 길을 양보해 주는 미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선작에 축하드리며 이번에 수상하지 못한 분들도 더욱 정진하여 좋은 작가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