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당선작(시)(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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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2022. 1. 3.

[현대경제신문]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 / 유휘량

우린 목이긴 걸// 기린이라 불러// 하필 넌 목이 길구나.// 누가 널 그리고 있는 걸 아니?// 그림자를 졸여 만든 잉크로// 괜찮아./ 너는// 그리는 동시에/ 사라지는 감각이 좋았다.// 따듯한 색은 대체로 몸에 좋지 않았던 그때// 핏줄엔 면역이 없어서, 핏줄에 묶인 몸이 싫다고/ 목에 핏줄 세우며// 새가 새를 잡아먹는 건 이상하다. 완벽한 새장을 만들기 위하여 가시밭에 두 손을 넣어두고 돌아왔다. 그 두 손은 그림자놀이를 통해 새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린이 새를 입에 물고 불타는 머리를 흔드는 걸 보면 이상하다. 나무에 열리는 아가미는 싫어하면서 하루에 새 하나씩 꼬박꼬박 먹는 건 이상하다.// 몸을 벗고 남겨진 자신을 봐.// 복도 같이 긴 목에서 빠져 나온// 새// 새를 먹는 게 아니었구나. 기린은, 몸집에서 그냥 목이 길뿐이었다. 그래도 입에 새를 넣고 빼는 것은 이상하다. 새가 거기에 거주하는 것도 이상하다. 기린들은 둥글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뭉쳐 있구나. 자기들끼리 새들을 주고받으면서…. 기린은 왜 목이 길지. 새들은 기린을 빠져나가면서 어떤 그림자를 버리고 가지. 기린은 소리 내지 않고 새를 보여준다. 새가 물고 온 아가미는 받아준다. 기린 속의 웅덩이가 너무 깊어서 목이 긴 걸까. 있지.// 나, 사실 네가 쟤를 잡아먹는 걸 봤어.// 유독 목이 긴 새였잖아. 걔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어. 거기서 죽으면 누가 묻어줘? 가끔 새가 새를 물고 기린 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어. 어쨌든 걔는 고독사는 아니길 바라지만. 기린 속의 새들은 둥지를 뒤집어 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는데, 속이 뒤집어 지는 느낌은 어떤건지. 나는 몰라. 나는 목이 짧고 기린은 아닌데,// 가끔,/ 가끔 말이야.// 씹어 먹고 싶지 않니, 새들 말이야. 입가에 머무르면 달콤한 금속성의 눈 맛이 나잖아. 입안 한가득 새들을 내보내지 않고 와득 씹고 싶을 때. 있지 않니. 웅덩이가 말라가도 아가미들은 나무에서 계속 열릴 거고. 묶인 핏줄을 하나 하나 풀다보면, 새들의 둥지는 뭐로 만들까.// 문 열어.// 금속성의 눈이 내리잖아./ 세상은 자꾸 굳은 물감 같잖아.// 새알이 든 둥지를/ 머리 위에 올리면/ 액체의 금속이 흘러// 자,// 이제 기린이라 불러라.//

유휘량 수상 소감 장석주, 송재학 시인 심사평
언젠가, 내 이름을 아무리 발음해도 시인 이름 같지 않았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지금
 
다시 내 이름을 발음했지만, 여전히 시인 같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이름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세상에 없겠지만 아직도, 시인 같지는 않고, 여전히, 앞으로도 시인 같지 않을 것이다. 호명되었지만, 어색하기 그지없다. 불완전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서, 무엇으로 완성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늘 속죄하며 살 것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늘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다. 살다보니 나는 많은 이들을 괴롭혔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생각한다.
 
감사한 성함을 감히 올린다.
 
나의 첫 시, 그리고 나의 모든 시를 함께, 사는 것을 알려주신 조하연 선생님. 늘 잘못만 저지르는 저를, 괜찮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산 선생님. 제 세계를 확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언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의 정교함을 알려주신 이영주 선생님. 감사합니다. 절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김근 선생님, 6년 동안 수업 들으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여기에 제 이름은 없을 겁니다. 같이 했던 한겨레교육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동인 쓸림 분들,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다 자신의 이름을 단 시를 쓰는 분들이니까요. 5년 동안 저의 원장 노릇을 견뎌주어 감사합니다. 나의 울음을 함께 해주어 고맙습니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신, 홍재범 선생님, 김석 선생님, 용석원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김진기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늘 저의 시를 지지해주시고 봐주신 임지연 선생님과 제 시를 늘 응원해주신 신동흔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봉형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나의 아픔을 함께 해주어 감사합니다. 상처만 줘서 미안합니다. 이제 다 갚으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드릴 분들이 더 많지만, 부득이하게 적지 못한 분들은 개인적으로 소감을 올리려 합니다. 서운해 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러진 라디오 안테나도 안녕. 48병동도 안녕, 귓속의 앵무새도 안녕입니다. 더 이상 안녕하지 않던 날들도 안녕입니다. 다 안녕하면 좋겠고 그래서 안녕이라 내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이름과도 안녕입니다.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의응답 사이에서
  
세계사의 아슬한 난간을 모든 인류가 함께 붙잡고 있는 상황이 과연 당대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상상보다 더 끔찍해진 현실이 섬세하고 정치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이제까지 그 질문들을 예민한 일부의 사람들만 수용했다면 이번에는 모든 인류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투고작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 때문에 시의 행간은 길어지고 시적 경향은 어둡고 다양해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한 분은 유휘량의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와 추일범의 영양교환, 이선락의 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등이다.

유휘량의 기린을 발견한 것은 좋은 일이다. 환상과 서정의 플랫폼에서 울림을 구축한 유휘량의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기린은 시적 화자의 그림자 놀이에서 탄생된 발명이다. 불빛에 제 몸을 맡기면 목이 길어지는 그림자/기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목이 길어진다는 것은 불빛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간절하다는 갈망의 의태이기도 하다. 기린의 파트너로서 라는 키워드 역시 그림자 놀이에서 추출된 두 손의 변주이다. 그 새는 그림자/기린의 돌기이면서 또한 외부로 향하는 메신저이기도 하면서 누군가 그림자에게 보낸 메신저이기도 하다. 내부에서 고독사로 향하는 새, 외부로 나가지 않으려는 새를 씹어먹으면서 기린/그림자의 외부는 딱딱한 눈이 내리거나 자꾸 굳은 물감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새알의 둥지에서는 액체의 금속이 흘러내리는 종말의 세계가 시작된다. 그러니 이제 나를 자아와 겨우 연결된 기린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삶이 기린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죽은 고양이를 세 번 봤다 / 로드킬은 빼고라는 맹렬한 도입부는 추일범의 영양교환이다. ‘이런 것도 밥’, ‘이런 것도 몸’, ‘이런 것도 일을 행사하던 죽은 고양이 세 마리는 우리 생활의 공감각 부분이다.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를 실천하는 중이기도 할 터이다. 누군가 우리를 사육하고 있고, 더 끔찍한 것은 누군가 우리를 고양이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고양이의 주검에 휘발성 냉소가 건너가는데, 다시 끔찍한 것은 그게 차라리 비애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사람의 의무가 있다는, 단호하고 간결한 추일범의 고유성이 눈을 사로잡는 이유이다.
 
이선락의 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은 관찰의 측면에서 시의 전범을 드러낸 가편이다. 사물과 사람이 가진 밝음과 어둠, 슬픔과 기쁨이라는 안팎좌우를 어김없이 추스리면서 다시 사물과 사람에 대해 되돌아오게끔 한다. 게다가 리듬이 시를 잘 부추기고 있다. 시의 이야기라는 측면에 눈을 뜨게 된다면 이선락의 시적 영토가 어디까지 벋어나가게 될지 짐작할 수도 없다.
 
이은경의 , 세기는 사물이 가지는 매혹에 헌신한다.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물질과 영혼으로서의 ()’을 넘나드는 충분한 존재들이 여기 있다. 때로 눈부시고 때로 끔찍한 것들, 그게 같은 인과율인 것을 소스라치게 깨닫는 지점이 돋보인다.
 
최정민의 껍질에 베인 손, 김희숙의 털실로 얼음 들기에도 우리가 서성거리고 편애했다는 것을 덧붙인다.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의 응답 사이에서 우리는 유휘량의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를 당선작으로, 추일범의 영양교환을 가작으로 선택했다. 당선된 두 분에게 축하를, 여기까지 힘겹게 도착한 분들의 여정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강원일보] 목다보 / 송하담

아버지는 목수였다/ 팔뚝의 물관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나무와 나는/ 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 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 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 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 아버지 못은 나무못. 나무의 빈 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게 시시해 보였다. 뭉툭한 모서리가 버려진 나무들을 데려와 숲이 되었다. 당신은 나무의 깊은 풍경으로 걸어갔다. 내 콧수염이 무성해질 때까지 숲도 그렇게 무성해졌다. 누군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박히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빈 곳은 신의 거처였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신을 옮기는 사람/ 나무는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신에겐 노동은 어려운 말. 그의 일은 산책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였다. 숲과 숲 사이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걷고 걸었다./ 신은 죽어 나무에 깃들고/ 아버지는 죽어 신이 되었다/ 나무가 햇살을 키우고/ 나는 매일 신의 술어를 읽는다/ 목어처럼 해저를 걷는다//

송하담 수상 소감 이영춘, 이홍섭 시인 심사평
보이지 않는 장벽에 '라는 못 박을 것
 
송하담(본명 송용탁·45) 부산 학원 국어강사

긴 채굴의 시간이었습니다. 탄차의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시 쓰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이 거리두기를 외칠 때 저는 무엇보다 나와의 거리두기가 중요했고 그 거리 언저리에 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출구가 저기 보이는 듯합니다. 이번에 강원일보에서 부족한 글꾼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고대하던 등단은 또 다른 나와의 거리두기가 될 것이고 힘든 싸움의 시작임을 알고 있기에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한 걸음씩 걷겠습니다. 당선작의 첫 구절처럼 아버지는 목수이셨고 막노동의 현장 한가운데 서 계시던 분이었습니다. 쉼 없이 못과 망치를 쥐시던 거친 두 손처럼 저 역시 보이지 않는 벽에 시라는 못을 박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벽이 너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벽과 싸우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못을 박겠습니다. 조금 더 겸손하게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나의 아픔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무거운 옷들을 걸 수 있도록 열심히 시라는 못을 박겠습니다. 쉬지 않는 목수가 되겠습니다.

힘든 시간 옆에서 응원해 주신 전다형 시인님, 황윤현 시인님, 김선미 시인님, 활연 시인님, 세상에 나갈 물꼬를 터주신 용인문학회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분들과 강원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상상의 폭 넓게 두고 적확한 시어 찾아내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대부분 오랜 습작의 내공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왜 이 시를 쓰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흔쾌한 답을 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달아나기만 하는 언어를 붙잡아 내 존재의, 삶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시 고유의 장르적 힘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자들이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이용원의 무심하게 미시령' 4편과 송하담의 목다보' 4편이었다. 이용원의 시들은 마치 베틀로 피륙을 짜내려가는 듯한 직조의 맛이 돋보였으나, 이러한 정성이 오히려 시를 단조롭고 밋밋하게 만드는 아쉬움을 남겼다.
 
송하담의 시들은 이용원의 시들에 비해 좀 더 과감한 면이 있었다. 거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다보'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이 작품이 이러한 응모자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상의 폭을 넓게 두면서도 적확한 시어를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이 상상과 언어 속에 삶의 비의와 존재의 근거를 담아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그를 좋은 시인으로 우뚝 서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경남신문] 엽록체에 대한 기억 / 이경주

숲을 떠난 푸른빛의 기억이 갇힌 방으로 들어간다/ 형광등 불에 달궈진 자갈과 모래알들이 바닥에 깔리어/ 전갈이 지나는 길을 만들고 있다/ 마른 바람이 눈에 익거나 때로는 낯선 발자국들을 지우는 한낮에는/ 미세한 먹이사슬들이 잠깐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하얗다/ 종일 내리쬐는 빛은 벽에 박힌 나무들의 뿌리와/ 그걸 바라보는 죽은 새들의 밥상과/ 좁은 틈새를 뚫고 머리를 든 작은 벌레들의/ 핏줄까지 하얗게 만든다/ 한번이라도 불빛에 닿은 것들은 제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오후가 저물 때면 변색의 관성은 더욱 강해져/ 누구도 아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방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나갈 수 없다/ 아무렇게 발을 들여 놓았다가/ 깊은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풍에 갇히어 돌아설 수 없다/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표정이라고는 창백한 빛뿐인 고요한 방이/ 암흑 속을 빠르게 날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분명 하루가 지난 거 같은데/ 눈을 뜨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 녹색이 사라진 방으로 계속 나비들이 날아 들어온다//

이경주 수상 소감 이성모, 배한봉 시인 심사평
내 삶의 단 하나의 길, 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들은 늘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 여운을 감당할 힘이 없어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이 두려워질 때도 있었지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꺼냈습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머나 먼 바다의 섬을 떠나 조그만 해변으로 날아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 버리는 것일까요. 나에게 떠나야 할 섬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 몸을 던져야 할 곳은 어디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언제부터인지 젊은 시절 굵은 노트에 적어 댔던 시들이 나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추억이 되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몰입해온 현실을 핑계로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갈 수 없는 사막에 갇혀 버렸다는 절망감도 컸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면서 운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을 그 지독한 외로움, 고통, 무엇보다도 지켜내야 할 영혼의 투명함과 순수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음이 솔직한 고백일 겁니다.
 
작년에는 참으로 많이 걸었습니다. 끝도 없는 길을 걸으면서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결국 시를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세상을 사랑하는 강력하고 유일한 방식이자 수단이 되어야 함을 길이 끝날 어느 즈음에야 알게 되었지요. 시는 갈수록 희미해지는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고, 내가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멈추어 버렸던 시를 다시 끄집어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지 않고, 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습니다. 고립된 섬을 벗어나 내 몸을 던질 마지막 해변을 향해 날아가겠습니다. 긴 망설임의 여정에서 내 안에 생겨 난 상처를 치유하고, 나의 치유로서 사막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감히 꿈꾸겠습니다.
 
이제까지 혼자 써 왔던 시였기에 세상에 내놓기가 참 부끄러웠습니다. 채 다듬지 못한 나무처럼 거칠고 틀어진 저의 작품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저를 응원해 준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제가 어디를 가든 늘 함께 해 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아름답고 따뜻한 언어로 부지런히 좋은 시를 씀으로써 저를 사랑해 준 숱한 인연들에 보답하겠습니다.
 
(1963년생 충남 홍성 출생, 서울 거주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 신한금융투자 근무





울림 큰 문장들시적 틀 만들어가는 상상력 돋보여

코로나19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접어들면서 코로나 19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다시 확진자가 급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등 여러 어려움이 많은 때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예년보다 신춘문예 시부문 투고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백명의 시인 지망생이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해 와 뜨거운 문학적 열기를 느끼게 했다.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에는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시적 역량을 보여준다는 것이 오히려 과도한 수사에 매몰되어 시적인 깊이와 사유의 넓이를 놓치고 있는 작품들이 눈이 많이 띄었다. 한 사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이나 정서를 짜임새 있게 압축하여 끌고 가는 긴장감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다.
 
숙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김난(김향숙), 김휼, 나영채, 노수옥, 이경주, 이동우, 임승환, 최수안 제씨의 작품들을 본심에 올려 논의하였다.
 
몇 분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등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아내어 보여주기도 했지만 시대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깊은 정서적 울림을 주지 못했다. 또 몇 분은 토속적인 정서에 기대어 서정의 영역을 파고 든 경우도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익숙한 어법에 머물러 있었다. 또 시적 발화가 너무 무성하여 이미지를 응집시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다, 하고 단숨에 손꼽을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속에서 노수옥씨와 이경주씨의 작품을 만난 것은 기쁜 일이었다. 노수옥 씨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끈 작품은 입관이다. 언어를 세공하는 솜씨가 우수했다.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문장을 끌고 가는 힘도 좋았다.
 
이경주씨의 엽록체에 대한 기억은 현대인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적인 틀을 만들어나가는 능력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퇴색되고 변해가는 자아와 만나는 방의 풍경은 흡인력이 있다. “눈을 뜨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 녹색이 사라진 방으로 계속 나비들이 날아 들어온다는 환상성을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해서 울림이 크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노수옥씨의 입관과 이경주씨의 엽록체에 대한 기억을 놓고 숙고하고 논의했다. 논의한 끝에 응모작 전편이 편차 없이 고르다고 판단된 이경주씨를 당선자로 합의했다.
 
축하하며, 한국시단을 이끄는 큰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안타깝게 당선을 놓친 노수옥씨에게 심심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전북도민일보]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 김종태

뉴타운 소문을 태우고 마을버스가 들어왔다/ 미숫가루처럼 흙먼지만 내려놓고 폐교를 한 바퀴 돌더니/ 제비처럼 고샅길을 빠져나갔다/ 언젠가부터 절개지 묵정밭엔 어린 의혹들이 심겨지기 시작했다 깨진 항아리 속에 갇혀있던 뻐꾸기 소리에 둔덕 까마중 몇, 복부인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귀고리를 흔든다 전과자인양 담장 안을 기웃거리던 햇살, 굴다리 밑으로 잠입하고 배 밭으로 달려간 그림자 하나가 이른 아침부터 풍선 불 듯 바람의 평수를 후후- 부풀린다/ 두부장수 확성기에 귀를 열던 도토리들 일제히 상수리나무를 버린다 선거벽보 어지럽게 붙어있는 축대 아래, 사방치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 오후가 오랜만에 찾아온 밀짚모자 주위로 몰려든다/ 뻥튀기 소리에 놀란 해바라기, 발밑에 검은 태양들을 투투둑- 파종하고 늦게 외출한 채송화는 발뒤꿈치를 높이 꺼내 분꽃의 망설임을 흔든다 태양이 시작되면 빨간 인주통이 열렸다 몇 평 봄이 처분되는 계약서 그 끝, 마을경로당에선 코스모스와 금잔화가 형광빛 포스트잇처럼 끝도 없이 유예되고 있었다/ 이장 집 옆 모과나무가 늙은 귀띔이라도 들은 걸까 오래된 우물 속에다 노란 주먹을 툭툭 박았다 내가 헐값에 처분했던 그 시절 변두리 네온사인과 외딴집에 세를 든 귀뚜라미의 지하 방엔 오래도록 해가 들지 않았다 지난밤 거처를 잃은 두견새와 갑작스레 약수터에서 쫓겨난 달빛은 창문 틈에 허리가 끼어 아침까지 웅웅거렸다/ 누가 분실한 것일까/ 공사 중인 안테나처럼 힘껏 꼬리를 세운 고양이 한 마리/ 방금 눌러 찍은 붉은 태양이 채 마르지도 않은 부동산 계약서를 입에 물고서/ 인적 드문 논밭을 검은 천 조각처럼 가로질러 어디론가 재빨리 구겨지고 있다//

김종태 수상소감 김영 시인 심사평
앞으로는 내가 세상을 로 위로할 차례
 
패딩점퍼처럼 눈을 껴입은 세상이 고딕체로 서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삶의 목록들이 연착되고 있었다. 측은지심의 영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시 쓰기. 내 가냘픈 노래는 원고지 속에서 자주 익사했다. 악보의 실루엣이 보이면 음정이 삐걱거렸다. 부러지고 흔들리는 것들이 시가 된다고 믿었기에 앞만 보고 계속 노를 저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몇 년 전의 내가 나에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살고 싶어서 시의 소맷자락을 간절히 붙들었다. 시는 나를 살려주시려고 보내준 그분의 언약궤였다. 이제는 내가 세상을 위로할 차례이다.
 
한 시도 의 램프를 끄지 않는 시시각각(詩視刻各) 스승님과 따뜻하고 치열했던 나의 도반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준 아내와 두원, 예은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난해 하늘로 가신 어머니, 늘 막내아들을 자랑스럽게 믿어주셨는데, 하늘 향해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벼랑 끝에 선 제 시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신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마음이 춥고 외로운 이들에게 손난로가 되어줄 그런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2022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읽는 시간은 어떻게 시를 써야 울림이 깊은가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천 편이 넘는 응모작에는 막 시를 쓰기 시작한 듯한 사람의 작품도 있었고, 시적 완성도와 문장의 긴밀도가 만만치 않은 작품도 있었다.
 
각주와 외래어가 난무하는 작품과 언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아쉬운 작품도 많았다. 패기나 참신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적었고, 그만그만한 내용이나 익숙한 수사가 버무려진 작품도 많았다.
 
주제 면에서는 개인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부터 시대의 불합리에 대한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시국의 영향인지 사회의 어두운 면과 개인의 어두운 시간을 직조한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으로 김선호 님의 빙하의 숲을 걷다’,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과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장성희 님의 폭우’, 김수형의 포스트잇이었다.
 
 모두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었으나, 제목이 내용을 끌고 가지 못하거나 내용이 제목을 받쳐주지 못하기도 했다. 시상을 직조하는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기도 하고 제출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이었다. 시상을 전개하는 힘이나 주제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좋았으나 아쉽게 되었다. 조금 더 힘을 내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은 자신만의 언어로 시대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삶의 현실에서 시의 뿌리가 발아했으나 주관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솜씨가 시의 밭을 오래 가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보인 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전남매일] 미역국 / 강일규

산부인과 병원 근처엔 혼자 우는 울음이 많다// 팔을 벌리고 부를 이름이 없어/ 한낮에도 울음이 바람을 끌어안고 멸망을 낳는다// 저만치 뒤따라오던 아내가/ 전봇대를 붙잡고 이름 없는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다// 미안/ 미안// 건너편 정류장에서도/ 한 여인이 어리어리한 앳된 딸아이를 끌어안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와 한 남자가 보호자란 인연으로/ 눈빛이 스칠 때마다 놓친 연과 놓은 연을 위로했다// 아내의 울음이/ 자궁 밖으로 다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 반 근을 샀다//

강일규 수상 소감 강대선 시인 심사평
아픈 이들 보듬는 따뜻한 시 쓰겠다
 
시클라멘 화분에 영희 씨 젖꼭지만한 붉은 망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꽃을 터트리기 전 베란다에서 햇살을 즐긴다는 그녀, 피고 지면 또 다른 꽃대가 올라온다 했습니다.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을 때가 여름이라고 했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요라는 말에 물기 어린 글을 썼다 지우고 다시 또 쓰고.
 
오늘, 꽃이 피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첫눈이 내리는 퇴근길이었지요. 한겨울에 이토록 화사한 꽃을 피우다니. 올해를 넘기지 않아 다행입니다. 눈발이 바로 땅에 닿지 못하고 공중에 부유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들도 심장이 뛰는구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운전을 멈춰야 했습니다. 눈의 방향을 따라 걸었습니다. 큰길의 환한 불빛을 의지한 골목은 차갑고 희미했지요. 내 시작의 지향점과 닮아 있습니다. 삶의 무게를 시의 무게로 받아들일 때까지 겸허한 자세로 정진하겠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아프고 힘든 이들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시를 쓰겠습니다. 그런 글들이 모여 내 자신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기쁨에 가장 빨리 전염된 나의 영희 씨, 연수와 지연이 사랑해. 그동안 응원해 줘서 고마워.
 
시의 첫 걸음을 올곧게 일깨워 준 강희안 교수님, 인문학 강의로 시적 사유를 확장 시켜 준 소설가 연용흠 교수님, 좌절과 절망으로 방황할 때마다 시의 연을 단단하게 붙잡아 준 이돈형 시인님, 시의 길에서 만난 수레바퀴문학회와 시깡패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게 따뜻한 손 내밀어 주신 강대선 심사위원님과 전남매일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58년 충북 영동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졸업
고통받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책상 위에 쌓인 응모작을 읽었다. 정성을 다해 보내온 시들이라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시대에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고독과 우울한 내면을 다룬 시가 많았고 가족 서사와 함께 일상을 소재로 한 시들도 적지 않았다. 사유의 깊이를 언어로 형상화한 시에 먼저 눈이 갔다.
 
그중에 뒷모습’, ‘여우야 여우야’, ‘미역국등이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뒷모습은 시장의 노파를 새우로 비유하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어시장에서 노파의 삶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좋았으나 너무 쉽게 풀린 부분이 있고 함께 제출한 시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해 아쉬움을 주었다.
 
여우야 여우야는 코로나19로 격리된 상황을 동요로 표현한 발상이 신선했다. 하지만 몇몇 시어들이 전체적인 시적 긴장감을 반감시켜 작품을 선정하는 데 망설이게 했다.
 
미역국은 아기를 잃은 아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다른 이들의 아픔과 함께하는 지점에 마음이 갔다. 코로나19 시대에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컸다. 나머지 작품의 수준이 고른 점도 신뢰를 주었다. 축하드린다. 깊은 울림을 주는 참신한 서정성을 기대한다. 당선되지 못한 분들도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경상일보] 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 / 신춘희

눈사람 한쪽 눈이 삐뚤게 붙어 있다/ 돌멩이 하나 머금었다// 지금 조금씩 녹고 있는데/ 눈두덩이가 시릴 만큼 너를 오래 붙잡고 싶어/ 미안하지만 나는 점점 온기를 갖고/ 안타깝지만 너는 점점 부피를 줄이고/ 한동안 우린 밀착된 결빙으로 중력을 버티지/ 눈송이들 모여 숨겨둔 방/ 이곳은 해의 꼬리가 닿지 않아 심장을 두기 좋지/ 두근대는 돌멩이가 감정이라면/ 겨울은 안전한 밀실이야/ 사람들은 그저 눈빛을 얹어주거나/ 손끝으로 훑어볼 뿐/ 녹아내려야 하는 운명엔 관심이 없지/ 내가 너를 지키는 방법은/ 구름을 불러 모으는 일/ 눈이 자꾸 짓물러지고 있어/ 눈 속에 갇힌 마음이 죄다 흘러내리고 있어/ 우리가 견뎌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 처음 눈덩이 궁글렸을 때의 설렘 같은 거/ 아이들 모두 돌아간 뒤 입꼬리를 움직여본 거/ 별들이 싱싱해서 우리는 하나였던 거야/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낮이야/ 돌멩이와 눈덩이가 분별되어야 하는 시간이야/ 마지막 냉기가 사라지면/ 너는 나를 놓아줄 테지/ 그때까지 나는 너의 공중이 될 거야/ 머리가 기울고 있어/ 몸에 금이 가고 있어/ 물의 장례가 시작되고 있어// 툭, 돌멩이 하나 그렁그렁 쏟아져 내린다//

신춘희 수상 소감 문정희 시인 심사평
봄같은 소식늦게 핀 꽃 늦게 질 것
 
뜻밖에 봄이 찾아왔다. 당선 소식을 듣고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겨울과 봄 사이, 차가운 얼음 속에 있던 노란 복수초가 내 가슴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눈 녹은 물인지, 눈물인지 몸 밖으로 흘러내렸다.
 
시의 씨앗을 뿌려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얼마 전에 다녀온 설악산 공룡능선의 날카로운 봉우리들, 공룡의 등을 내려올 때도 시를 생각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기록할 힘을 길러준 열정이 내 안에도 있었다. 어느 날은 생의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시가 사라져 눈앞이 캄캄할 때도 있었다.
 
늘 허기가 졌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마경덕 선생님, 윤성택 선생님, 하린 선생님, 박지웅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시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 관계자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문우들과 친구들 나를 믿어준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늦게 핀 꽃은 늦게 질 것을 믿는다.








예술의 완성 향한 치열성 확인 반가워
 
위험하고 슬픈 시대, 고립과 폐쇄의 시간을 밀치고 희망처럼 피어날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예심을 통과한 응모작들을 깊이 읽었다. 언어에 대한 탐색과 예술의 완성을 향한 치열성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반가웠다.
 
행과 연을 무시한 산문성의 경향, 여백의 문제에 고민해 본적이 없는 소통 불가의 작품은 줄었지만 외래어에 대한 무자각과 상상력 보다는 사소한 현실과 현상에 대한 묘사에 치우친 경향은 여전했다.
 
오늘날 지구를 위협하는 생태 문제로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현실을 주제로 한 ‘55500’, 오래된 소나무를 통하여 역사와 인간의 발자국을 읽는 나무 실록과 함께 응모한 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 혼자가 시대의 모습이 된 오늘날의 자화상 같은 고독에 물리지 않는 방법을 따라함과 감각적인 포착이 돋보이는 가베라에 대한 경배천사를 만나는 날은 오늘이 선자의 손에 오래 남았다. 숙고 끝에 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나무 실록이 완성도는 높았지만 신인답지 않은 사유와 안정된 진술이 오히려 긴장을 줄이고 있었다.
 
신춘문예란 새해 아침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언어가 등 푸른 용처럼 뛰어 오르는 것이 아닐까.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한국 시단의 강한 수압(水壓)을 잘 견디어 부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경인일보] 일 잘하는 요즘 애들 / 전예지

프린터기가 또 말썽이다// 이 애물단지를 버리든가 고치든가 이게 대기업의 수준인가요?// 하루에 기본 다섯 번을 1층에서 2층으로/ 걸어야 하는 에스컬레이터 아니면 계단으로/ 왼쪽 끝 후문 쪽에서 오른쪽 끝 정문 쪽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프린터기를 하나 놔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겨우 몇 십 만원이 아까워서 사람을 갈아 버린다/ 두 여자는 욕이란 욕을 다 입에 담지만/ 차마 입을 벌리진 못한다 멋쩍게 서로 한숨만 쉴 뿐// 낡고 늙은 마트에 새로 생긴 텅 빈 매장의 취급은 이 정도// [자리 비움]// 자기는 왜 자꾸 마음대로 자리를 비워?/ 일하기 싫어?// 하필 매니저가 없는 날/ 혼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본부장이 찾아온다/ 억울한 아르바이트생은 그나마 매니저보다 깡다구가 있다// 프린터기가 2층에 있어서 왔다 갔다 하려면 어쩔 수,// 말대꾸도 하고 참 요즘 애들 무섭다// 눈이 순간 흰자로 뒤덮여진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머리 빠진 본부장은 혀를 찬다// 죄송합니다// 속으로 본부장이 매장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으론 여전히//

전예지 수상 소감 김윤배, 김명인 시인 심사평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창백한 하루를 밤새 쓴다
 
저는 외출이 잦지 않습니다. 저만의 공간은 어둡고 좁습니다. 그 좁은 폐허 속에 저만의 규칙과 행복이 편안합니다. 고독은 바람으로 불어오고, 저는 점점 더 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공간은 햇빛이 부족합니다. 햇빛이 싫어 숨은 대가는 사색(思索)과 현기(玄機)입니다. 겨울은 어느새 찾아오고, 저는 대신 비타민을 챙겨 먹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먹는 비타민은 가장 흡수율이 좋습니다. 그렇게 채운 시리고 창백한 하루를 밤새 쓰고 시를 적습니다.
 
이런 저의 시가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겐 빈 곳이 많고 그 부분들이 드러나는 게 부끄럽습니다. 저는 곧잘 틈을 흠으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당선이 전부 꿈이라는 소식이 전해질까 봐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상처받지 않으려 상처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불안은 헛된 꿈인 듯 하루하루가 선명하게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부족함을 알고, 더 열심히 살며 나의 틈을 채우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틈이 존재해도 흠이 아니라고 깨닫게 해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이번 겨울은 한동안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우울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내 곁에 남아 있던 건 가족과 친구들이었습니다. 항상 곁에 있으면서도 가장 숨고 숨기는 딸을 믿고 응원해준 가족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극제가 되는 글 잘 쓰는 나의 한신대 문창과 17학번 친구들. 글썽글썽 고마워! 마지막으로 2021년의 겨울에게. 나는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믿어주세요. 사랑해요.
 
틈을 주고 채워지는 것에 불편해하지 않는
흠이 아닌 틈을 자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런 사랑을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려한 수사 없었지만일상의 소중함 일깨우는 어법

202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의 관심은 뜨거운 편이었다. 비록 응모편수는 지난해보다 약간 줄었지만 응모작품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응모자들의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고루 분포되었지만 50~60대의 응모자가 많았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현상일 수 있다. 그만큼 사물을 응시하는 시각이 깊고 인식의 수준이 높았다고 보여진다.
 
시가 죽었다고 말하는 시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시는 여전히 살아 있는 문학의 영역인 것을 응모 편수를 통해 알 수 있다.
 
응모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으로는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생명 문제라든가 환경 문제라든가 통일 문제라든가 코로나 팬데믹 문제라든가 하는 거대담론을 다룬 시편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반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모티프를 얻거나 사소한 경험에서 소재를 찾는 경향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실험적인 응모작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안정된 작품으로 위험부담 없이 순항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일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예시영의 '카이트 서퍼', 김현주의 '그림자를 수집하는 방법', 전예지의 '일 잘하는 요즘 애들'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해 장시간 토론과 논의를 거쳤다.
 
'카이트 서퍼'는 활달한 상상력과 긴 호흡이 미덕이면서 '그리고 바람이 불면/이 연서(戀書)가 당신에게 도달할지 모른다'와 같은 당돌한 문장이 시선을 끌었지만 응모작 모두 숨 가쁘게 긴 호흡이 문제였다. 압축미를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김현주의 '그림자를 수집하는 방법'은 어법이 새롭지 않다는 데 심사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산문시의 군데군데 상투성의 혐의가 보이는 것도 문제일 수 있었다. 그러나 '푸른 별빛이 숨죽인 그들의 입속에서 검게 변해 자라졌다'와 같은 문장은 돋보였다.
 
전예지의 '일 잘하는 요즘 애들'은 사무실의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다. 프린터기가 말썽이어서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내려야하는 고충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지도 않았으며 다양한 은유를 보여주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병의 시대에 이와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신선한 어법이 이 작품의 힘이다.
 
일상의 수없이 많은 흐름 속에서 한 장면을 포착해서 성화해낸 전예지의 시적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는 데 두 심사위원은 공감하고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하고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2022 신춘문예 당선작(시)(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