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기排泄記 / 백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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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6.

건강의 척도는 잘 먹고 잘 싸는 데 있다고 한다. 한데, 인생길 팔부능선에 오르고 보니 먹는 덴 예나 지금이나 별 이상이 없는데, 문제는 싸는 게 영 시원찮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양변기 타고 끙끙대다가, 황금덩이는 끝내 구경도 못한 채 엉거주춤 내려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뜰에 내려 옛날 습관대로 재래식 변소에 들어가 가까스로 근심 한 덩이를 풀고 나왔다. 해우소解憂所에 쪼그리고 앉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도습蹈襲 하노라면, 대장大腸이 압박을 받아 물리적 배변을 촉진 시켰다. 뿐만아니라 어릴 적 뒷간에 앉아 별자리를 짚었던 귀소본능의 향수에 젖어 거룩한(?) 작업을 이행할 수 있었다.

변비는 스트레스로 인한 대장 운동의 장애나, 위궤양으로 복벽근腹壁筋의 쇠약과 대장 과장증過長症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며 소채와 과일 등의 채식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조건반사를 형성하는 아침 식후의 배변습관도 고려해 볼 일이다.

문우 중에 ‘똥꼬 의사’란 별명을 가진 외과 전문의가 있다. 치핵痔核 제거에 달인인 그에게 집도의의 애환을 물은 적이 있다.

개원 십 년차의 회리바람 스산한 늦가을 하오였단다. 진찰실에 들어온 비쩍 마른 초로의 영감 표정은 그야말로 똥 마려운 견공犬公의 상호, 바로 그 모습이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나오셨냐고 문진聞診부터 시작했다.

“시상에 이 나이 먹도록 이런 변괴는 첨이랑게유ㅡ. 뒤를 못 본 지가 내일이면 꼭 열흘이구만유!”

검버섯이 피기 시작한 달증疸症 증상으로 봐 만성 변비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임이 분명했다. 찜질로 괄약근을 활성화 시킨 다음 관장灌腸을 시도했다. 그러나 웬걸, 앙다문 항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땅굴 속으로 잠적한 오소리를 잡으려면 연기를 피우고 터널 속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으렷다. 수술용 장갑으로 무장하고 직장直腸까지 직핍하니, 숫제 돌덩이나 진배없는 변석便石이 손끝에 잡히더란다.

철옹성이 뚫리니 막힌 물꼬가 터진 형국이었다. 이젠 살았노라고 환호작약歡呼雀躍 하는 환자의 기쁨 속에서 도규가刀圭家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2주 가까이 똥자루 꾸리고 다니며 낑낑댄 그 고충이 오죽했으면 머리 희끗대는 영감이 자식 같은 의사에게 큰절이라도 올릴 듯 수도 없이 고개를 조아렸을까?

어릴 적 우리 사랑방엔 마을꾼들로 늘 북적댔다. 짚으로 새끼를 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곡식을 담을 둥우리를 왕골로 짜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멱서리를 역고 있던 황 노인이 부리나케 일어나더니 자기 집을 향해 줄행랑을 치는 게 아닌가. 이를 본 좌중이 이구동성으로

“어허, 저 양반 화롯가에 엿을 붙여놓고 왔던 가베?”

“아냐, 괴춤 틀어쥐고 문중방 넘어가는 꼴이 아무래도 거름 장만하러 빨빨 대고 간 게여!”

금비金肥가 흔치 않던 시절 똥·오줌은 농토를 걸우는 보약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귀한 자원을 어찌 남의 집 측간에 싸질러댈 수 있었겠는가?

똥이 황금빛을 머금은 까닭은 위 속에 든 음식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쓸개즙 분비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똥은 방부 처리된 위생물이 아닌가. 옛적의 똥개들은 그 똥을 먹고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그런데 요즘의 가축들은 지구상 곡물 생산량의 40%를 먹어치우고 있다니 팔자 좋은 가축 천국이다. 먹을 것이 없어 주려 죽는 르완디 어린이의 앙상한 몰골 영상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미국의 토양학자 플랭클린 킹은 똥 예찬론자이다. 그의 지론에 의하면 경작지에 화학비료만 쳐대면 토양이 산성화 되어 농경지가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완숙된 분뇨糞尿를 시비하면 지력이 소생한다니 똥을 똥같이 매도할 일이 아니다. 똥 분糞자를 파자하면 米+異로 구성된 회의 문자임을 알 수 있다.

대저, 밥은 똥이요 똥 또한 밥이 되는 자연의 순환 고리가 동북아 4,000년의 벼농사 금자탑을 이룩했다고 그는 피력했다. 땅이 사람의 어머니이듯 토양은 곡식을 잉태하는 거대한 자궁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동안 나는 가년스레 걷어먹는 데에만 허발했지, 배설의 당위성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는 음식만이 아니다. 그 알량한 자존과 서푼도 못 되는 명예, 그리고 재화에 대한 애바른 욕기慾氣들을 설사하듯 후련하게 배설해 내야만 하겠다. 속을 비우면 비울수록 참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