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좋다 / 문희봉

댓글 0

수필 읽기

2022. 1. 7.

신부가 신도들에게 강론을 하고 있다. “신도 여러분, 지옥에 가고 싶은 분 계셔요?"

아무도 없다.

“그러면 천당에 가고 싶은 분 계셔요?"

대부분의 신도들이 손을 든다.

“아, 지옥에는 가기 싫고, 천당에 가고 싶은 분은 많네요."

“그럼 지금 천당에 가고 싶은 분 계셔요?"

없다. 지금이란 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각이다. 지금이 좋다.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지금'이 좋다. 지금보다 더 나은 순간은 없다.

환하게 웃어주는 햇살을 맞이하기 위해 아침 창을 열면 흐릿하게 미소 짓는 부드러운 바람기가 있는 지금이 참 좋다. 흩어진 머리카락 쓸어 올리며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비틀거릴 하루지만 걸을 수 있는 고마운 두 다리가 있어 좋다. 땀방울 방울방울 이마에 맺혀도 열심히 살아가는 얼굴에 미소가 넘쳐서 좋다. 힘들고 고달픈 삶이라지만 나와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좋다.

시간이 멈춘다 해도 오늘이라는 성적표에 부지런히 살았다는 표시로 밤하늘 달님이 친구가 되어주니 좋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다. 지금이 좋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초원을 달릴 수 있는 낡았지만, 자동차가 있어 좋다. 고철 줍느라 때 전 손톱이지만 일할 수 있는 육신이 있으니 좋다.

대전의 유등천변은 거대한 반란지대, 희고 노란 가을꽃들이 부드러운 율동으로 손을 흔들고 있으니 좋다. 내가 새라면 당신께 하늘을 주고, 꽃이라면 향기를 주겠지만, 인간이기에 당신께는 사랑밖에 줄 것이 없다는 사람들이 지금 내 주위에 많이 있으니 좋다.

꽃은 아름다움을 약속하고, 공기는 맑은 산소를 약속하듯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어디선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좋다. 지금 내 곁에 웃는 별이, 하늘이, 땅이, 구름이, 자작나무가 있으니 좋다.

내 곁에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자기를 다 열어놓고, 피고지고, 졌다가 다시 피는 사랑이 있으니 좋다. 희고 붉은 아이를 낳고, 아랑곳없이 열심히 젖 물리고, 밥 먹이며 어둠의 발톱을 잘라 가시로 무장한 채 피어 있는 장미가 있으니 좋다. 잠자리의 날갯짓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금 산을 오르내릴 수 있으니 좋다.

자식이 먹고 싶어 히는 빵이며, 과자며, 음료수들을 사 줄 수 있으니 좋다. 내 기쁨으로 지식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넉넉함이 있으니 좋다.

가난이 소똥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구차한 살림살이지만 식솔들의 웃음이 집안 가득 채우고 있으니 좋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니 좋다. 부모님이 잠들지 않고 지금도 반짝이는 새벽 별이 되어 자식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밤새도록 비춰주고 있으니 좋다.

솔방울들이 새끼 참새처럼 내려앉아 있는 오솔길을 걸을 수 있으니 좋다. 깨진 빨간 벽돌 빻아 고춧가루 만들고, 봉숭아 잎으로 김치 만들어 소꿉놀이하던 초등학교 동기생들을 한 해에 한두 차례 만날 수 있으니 좋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보문산이 어쩌면 저렇게 싱그러운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보문산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으니 좋다.

삶에 지쳐 눈물이 날 때마다 언제고 날 데려가 추억의 밥숟가락을 들게 하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행복은 내일부터! 아니 지금부터! 지금을 즐겨라. 미루지 마라. 그날그날 행복을 외면하지 마라. 살 만하니 떠나는 게 인생이더라. 고생고생해서 집 장만하고, 애들 키워놓고, 이제 한숨 돌리며 여행이나 하며살자 했는데 미뤄놨던 취미생활도 여행도 모두 물거품이더라.

건강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못 하고 세상에서 제일 비싼 병원 침대 신세더라. 오늘 지금! 이 중요한 시간을 최대한 즐기며 살기로 한다. 작은 행복이지만 감사하며 실기로 한다. 눈을 뜨고 하루를 맞이하는 일, 두 발로 가고 싶은 곳 맘껏 갈 수 있는 일, 맛있는 거 실컷 먹을 수 있는 일, 이 세상은 많고 많은 감사한 것들로 직조된 낙원이다. 감동의 연속이다. 세상에 당연한 게 없다. 지금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문희봉 수필가 《월간에세이》 추천 등단(1989). 한국문인협회 인문학콘텐츠개발위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대전문인협회 회장 역임. 한국현대수필작가 100인 선정(교음명작신서), 한국현대수필가 100인 선정(수필과비평사, 좋은수필사). 소운문학상, 원간문학상 등 수상. 수필집 『작은 기쁨, 큰 행복』외 7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