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사 갈비찜을 먹었다 / 김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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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1.

집 구조가 사람 냄새를 느끼게 했다. 간판이 없었다면 그저 오래된 할머니 댁 같은 분위기였다. 검은 바탕에 ‘천사 갈비찜’이라고 쓰인 흰 글귀가 마치 현수막처럼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맛은 빈틈이 없었다. 한동안 그 맛이 입안에서 요동쳤다. 태양도 녹아내리는 무더운 여름날 그 집을 다시 찾았다.

찜 종류는 매콤한 맛과 간장 맛 두 가지뿐이다. 밑반찬이라고는 매운맛을 조절해 주는 깻잎과 쌈무, 알알한 기운을 개운하게 해주는 시원한 콩나물국 그리고 고소한 참기름에 간간한 맛이 밴 김 가루가 전부다. 더 필요하다면 직접 가져다 먹는 셀프바가 준비돼 있다. 우동 사리나 라면 사리도 다투어 대기 중이다. 무엇보다 이미 만들어져 나오기에 먹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 편하고 좋다. 내부 장식이라고는 낡은 차림표와 텔레비전 한 대, 얼마 전에 방송을 탄 포스터가 다다. 깔끔한 분위기가 이 집의 맛을 의심치 않게 한다.

매콤한 찜이 나온다. 돌판에서 짜글짜글 끓는 소리가 먼저 청각을 두드리고 나니, 알싸한 냄새가 콧속을 훅 치고 들어온다. 뒤를 이어 빨간 만큼 맵싸한 양념이 일제히 혀를 공격한다. 입안이 얼얼하다. 칼칼한 맛을 즐기는 내겐 너무도 경쾌한 맛이다. 태양초 고춧가루와 마늘이 듬뿍 들어간 양념에 푹 빠진 고기 두어 점을 깻잎에 싸서 입이 미어지도록 한 쌈 넣고 본다. 젓가락질이 멈추어지지 않는다. 달짝지근하고 매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앞에 있는 친구도 잊게 만든다.

땀을 훔치고 입을 호호 불어가며 계속 먹는다. 국물이 되직할 땐 밥을 비벼 먹거나 볶아 먹어야 제맛이다. 기분 좋은 얼근덜근한 맛이 자꾸만 입맛을 꼬드긴다. 밥 한 그릇을 친구와 나누었다. 김이 나는 고슬고슬한 밥 한 숟가락에 두툼한 고기를 올려 한입 가득 씹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다음 숟가락을 준비하게 한다. 밥도둑이 분명하다. 반 공기를 금세 비운다.

남은 양념도 포기할 수 없다. 자작하게 졸여진 고기의 응축된 맛이 끊임없이 구미를 당긴다. 더 먹고 싶은 욕심을 억누르다 결국 볶은 밥 한 그릇에 백기를 들고 만다. 음식 앞에서 굴복되어 버린 마음이 그지없이 통쾌하다. 고소한 냄새를 흘리는 볶음밥에 깻잎을 뚝뚝 뜯어 넣고 쓱싹쓱싹 비벼 김 가루를 더해 한 입 삼킨다. 또 뚝딱 해치운다. 말이 필요 없다. 맛있다는 몇 마디의 말보다 최고의 찬사는 빈 그릇이 아닐까 싶다.

옆자리에 젊은 부부와 여섯 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앉는다. 부부는 매운맛을 원하나 아이 때문에 간장 맛을 시키는 것 같다. 아쉬움을 달래듯 음료수와 소주를 시키고는 대화를 나눈다. 아이가 젓가락을 들고 기다린다. 음식이 나오자 뜨거운데도 야무지게 잘 먹는다. 엄마를 따라 콩나물국 한 숟가락 떠먹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린 녀석이 제대로 먹을 줄 안다. 고기가 거의 없어질 때쯤 여인이 라면 사리를 양념에 버무려 아이의 접시에 덜어준다.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먹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다음엔 나도 저렇게 먹어볼 참이다.

처음에는 소 갈비찜인 줄 알았다. 어쩌면 가격까지도 이리 착할까 하고 감탄만 했다. 다 먹고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알았다.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것이 돼지 갈비찜이라는 것을. 돼지에서 어찌 감쪽같은 소 맛이 났을까. 누린내가 없었고 씹기 좋게 살도 부드러웠다. 이 맛을 찾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공들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적어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 음식점엔 숨은 고수가 있는 게 분명하다.

어떻게들 알고 찾아오는지 식당 앞이 붐빈다. 더 있고 싶어도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미안해 일어선다. 오래 기다려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기다린 보람이 싼 가격과 맛으로 보상된다는 것을 저들도 알기 때문이다. 나 또한 먹고 나서야 알았으니 말이다. 꼬리를 무는 젊은 손님이 많다. 이 집의 장래가 밝아 보인다. 수수한 간판이라도 없었으면 그저 작은 마당을 거느린 기와집 한 채로 여기며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있는 듯 없는 듯 앉아서 달짝지근하고 매콤하고 부드러운 살코기로 언제까지나 젓가락 싸움을 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갈비찜이 대구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1인분에 구천 원이면 가성비도 그만이다. 정성이 담기면 언제나 사람의 마음과 통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불변의 관계를 작은 가게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섯 탁자가 놓인 아담한 규모지만 내공은 깊다. 손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갈비찜, 칼칼한 맛과 감칠맛을 고집하는 철칙이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의 맛으로 우러나, 서민들이 마음을 부비고 사는 이곳의 터줏대감으로 남기를 바란다.

자주 들고 싶은 집이다. 내 입에 맞고 두 가지 맛만 고집하는 젊은 주인의 자신감도 마음에 든다. 오늘 못 가면 내일이라도 꼭 가 볼 일이다. 맛도 양도 가격도 엄지척이다. 갈비찜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줄을 섰으니 돼지는 이 집을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대문을 나서며 가을이 가기 전에 또다시 들리겠다고 미리 약속하고 말았다. 어떤 음식이든 입에 보증을 받아야 길게 간다. 맛있다고 입소문이 자자해도 어디 가지 말고 이곳에 있기를. 같은 자리에서 먹는 이의 눈과 입과 마음을 한꺼번에 사로잡는 그런 집이기를 청해 본다.

가족도 좋고 연인끼리도 좋다. 직장 동료와 하루를 마감하기에도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막역한 지기들과는 한 잔 술이 아니라 소주병을 부르는 매력 있는 맛이다. 가을날에도 빠질 수가 없다. 가을의 절정이 울긋불긋한 단풍이라면 우리 입안에서의 절정은 맵게 불타오르는 갈비찜이 아닐까.

천사번지에 천사처럼 숨어 있는 맛집. 먹은 건 갈비찜이지만 나는 분명 중독을 거부할 수 없는 마약을 삼키고 기쁘게 돌아섰다.



김미향 수필가 《수필과비평》 등단. 제4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제12회 동서문학상 은상, 제1회 포항바다문학제 우수상, 2016 호국보훈문예 최우수상, 제4회 등대문학상 최우수상, 제11·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대구수필문학회,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