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엔 / 심선경

댓글 1

수필 읽기

2022. 1. 13.

바람 부는 날엔 춤추고 싶다. 옥상 위에 널린 하얀 이불 호청이 되어 출정하는 배의 돛폭처럼 허공으로 힘차게 펄럭이고 싶다. 살아갈수록 때가 끼는 마음 자락을 씻어내어 볕 좋은 날 빨랫줄에 나란히 널어 말리고 싶다. 묵은 세월에 얼룩지고 땀내에 절은 나를, 빨래 방망이로 탕탕 두들겨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궈내고 싶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빨래비누에 치댄 속 고쟁이를 우그러진 놋양푼에 담아 바글바글 삶곤 하셨다. 삭아서 고무줄이 툭툭 터지는 속옷들을 신명나게 방망이질하여 마당에 내다 말리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햇볕이 아깝다, 정말 아까워." 하시던 말씀이 이제는 딸아이에게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되었다. 저 무수한 햇볕을 공으로 쏘이면서 단 한 번도 그것에 고마워하지 않은 것이 그저 송구할 따름이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속을 삭이고 얼마나 더 너그러워져야 외할머니의 구멍 숭숭 난 속 고쟁이처럼 나달나달해지는 것일까. 거푸집 같았던 외할머니의 속옷을 개킬 때마다 부슬부슬 떨어지던 삭은 옷밥처럼, 가끔은 메마르고 궁상스런 삶이 삐죽대며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 되면,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기나 한 것인지 아니면 죽지 못해 그냥저냥 견디고만 있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기도 하다. 뱀 허물처럼 몸을 뒤집으며 후딱 빠져나간 시간의 빈 곳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부지런한 손끝이 눈보다 먼저 가서 후줄근해진 일상을 황급히 수습한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뒤틀린 생(生)은 젖은 빨래처럼 무겁고 고단하다. 그런 날은 높은 바지랑대 옆에 바투 널린 흰 옷이, 패잔병이 치켜 든 굴욕스런 백기처럼 보일지라도 한 번쯤 하늘에 두 손 번쩍 들고 아무 생각없이 투항하고 싶다. 무지하고 약한 인간인지라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는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노라고 무릎 한 번 납작 꿇은들 또 어떠리.

길을 걷다가, 마당에 빨래가 널린 집을 보면 나도 몰래 그 집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다. 빨랫줄 하나에 온 식구가 다 걸려 있다. 바람이 덜어주고 햇살이 말려주지만, 식구들의 몸무게만큼이나 잔뜩 무거워진 빨랫줄을 바지랑대 혼자 이고 섰다. 촘촘하게 자리 잡은 빨랫줄 위의 가족들, 어머니의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 옆에 아버지의 긴 바지가 슬쩍 다리를 걸치고, 형의 운동복 윗도리에 플라스틱 빨래집게로 집힌 동생의 양말 한 켤레가 냉큼 올라앉아 있다.

울타리 가득 널려 빛나는 것은 빨래가 아니라 우리네 정다운 삶의 모습이다. 단절되었던 세상 인심을 긴 줄로 다시 잇고, 얼룩진 양심은 양푼에 삶아내어 널어 두면 목화솜 같은 인정이 피어난 빨랫줄이 한바탕 신명 나게 춤출 것이다. 맑은 바람, 밝은 햇살 아래서 빨래들은 생기 푸른 나뭇잎처럼 피가 돌아 반짝이고 우리들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겨울지 모른다. 서로 옹송거리며 몸 부비는 빨래들처럼 그렇게 붙어살다 보면 이심전심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을 듯하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세상의 이쪽과 저쪽을 구분지은 듯, 긴 바지랑대가 갈라놓은 빨랫줄에 빈틈없이 널렸다 걷히며 다시 더러워질 것을 마다하지 않는 눈부신 흰 옷의 반짝임 같은 것. 지난날 돌이켜보며 후회하기보다는, 남은 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희망을 걸고 행복을 걸어보는 것. 설령 아침나절에 내걸어놓고 걷어야 할 시간을 깜빡 잊어버려 밤이슬 맞으며 비바람에 젖는 신세가 될지라도 빨랫줄 같은 아찔한 삶의 무대에서 함께 나란히 흔들리는 것.

낮에는 홀로 비어있던 집에, 저녁이 되면 뿔뿔이 헤어져 있던 식구들이 돌아와 다시 빨래로 널릴 것이다. 순하지 않은 바람에 때로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삭은 빨래집게의 느슨한 힘이지만 우리를 함께 묶어 두는 삶이었기에 정녕 외롭지만은 않은 것이다. 외줄에 힘겹게 매달려서도 빨래들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은 살 맞대고 살 수 있다는 끈끈함에 젖은 가슴 말리며 덩실덩실 춤추는 것이다.

가끔 옥상 위에 올라 바람에 날리는 빨래들을 본다. 나도 저 빨래들처럼 부는 바람에 자유롭게 몸을 내맡길 수 있다면, 저리 가볍게 흔들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고 만다. 빨래들이 의지하고 있는 외가닥 빨랫줄과 새로 산 플라스틱 집게의 완강한 악력(握力)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나는 또 얼마나 더 세상과 부딪치고 깨어져야만 할까. 눈에 보이는 자유는 늘 매혹적인 자태로 나를 유혹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보이는 게 다는 아닌 것이다.

이 세상에 저 홀로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이랴. 저 홀로 반짝이며 살아 있으면 무엇하랴.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도, 발길에 채는 돌멩이 하나도 저 혼자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없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얼굴 부비며 힘든 등 토닥이며 사는 것이다. 낡은 신을 신고 걸어가야 하는 먼 길이지만, 반드시 닿을 내일이 있다는 것을 철저히 믿기에 그 길을 어깨동무하며 함께 가는 것이다.

털어도 또 털어내도 먼지 많은 내 마음 속. 흐르는 물로 깨끗이 씻어낸 날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던가. 너무 오래 빨지 않아 곰팡이가 피지는 않았을까. 살아있는 동안은 묵은 죄를 씻어내듯 어둠을 흔들어 말갛게 나를 헹궈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