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까래 / 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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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28.

가끔 나의 존재를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관공서에서 나랏일 한 공적도 없고 기업체를 이루어 사원을 먹여 살린 공덕도 없고, 더구나 후배 양성할 자격도 갖추지 못했기에 내세울 게 없다. 단지 자영업으로 내 가족 건사한 것뿐인데 그마저도 접고 있으니 삶의 의미가 사라진 듯하다. 애완견과 화초를 키우며 자연에 묻혀 지내다 문득 선방 요사채를 불사할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사찰의 원주보살 소임을 맡고 있었다.

대선사께서 수행하시던 선원에 불사가 시작되자 신도들의 열성은 불같이 일어났다. 대들보는 오백만 원, 기둥은 삼백만 원, 문짝과 상방, 중방, 하방, 값은 일백만 원, 도리 값은 오십만 원인이었다. 그에 비해 천정을 바치고 있는 서까래 값은 십만 원으로 매겨졌다. 차전놀이에서 장수를 떠받드는 형국의 서까래 값이 가장 쌌다. 개수가 많은 만큼 한 개의 값은 싼 게 당연하다면서도 어쩐지 존재 없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목수 한 분이 몇 년간 다져놓은 지반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뿌리가 썩지 말라고 소금을 수북이 쏟아부었다.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보와 마룻대를 걸치고 대들보를 올리자 큰 골격이 거반 완성되었다. 여태 힘들었던 목수들이 한시름 놓았다는 듯 상량 술 한 잔씩을 들이켜고는 몸을 풀 겸 집으로 돌아가자 경내는 다시 예전처럼 고요해졌다. 한 마장 건너편에서 해조음만 철썩철썩 바람결에 실려 왔다. 모처럼 한가해진 나는 한갓진 사찰마당을 서성이다 솔 향이 물씬 나는 서까래 더미 쪽으로 다가갔다. 연약한 서까래쯤이야 나도 들 수 있겠다 싶어 나무 밑에 손을 넣었더니 겉보기와 달리 꽤 묵직한 중량이 전해졌다.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요량이었는지 나의 힘으론 도저히 들 수 없는 무게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피로를 풀고 온 목수들이 서까래 재목에 대패질을 하기 시작했다. 쓱싹쓱싹 목피 벗겨내는 소리가 종무소에까지 들려왔다. 제재소에서 이미 다듬어온 목재지만 그들은 작은 옹이 하나도 정성껏 깎아내고 있었다. 건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무거운 황토와 수백 장의 기와를 받치고 있을 그 노고를 위로하려는 듯 매끈하게 손질해 주었다. 나도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떡을 녹이고 라면을 끓이고 저온 창고에서 과일을 꺼내 목수들의 허기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십 개의 서까래가 마룻대에 걸쳐지고 그 위에 널빤지를 덮고 붉은 황토를 태산같이 올렸다. 이제 수백 장의 기와가 올라가면 고랫등 같은 한옥의 위용이 들어날 터였다. 한데 아무리 봐도 서까래의 역할이 너무 버거워 보였다. 대들보 밑에서 막중한 무게를 받아내야 할 서까래의 형색이 꼭 우리 여인네를 닮은 듯했다. 모든 일에 남자의 주장을 따르고, 가슴앓이를 하며 자식을 키우는 여자의 자리가 단연코 서까래를 닮은 듯했다. 서까래는 이제 지붕을 올리고 나면 힘들고 속상해도 집이 해체되지 않은 한 벗어나지 못한다. 서까래가 내려앉으면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수십 년간 한옥을 지어본 목수들이 서까래에 정성을 들이던 뜻을 그제야 알았다. 한옥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등에 업은 멍에를 벗을 수 없고, 벗어난들 심기가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암키와와 수키와로 골을 지은 지붕 위에 용마루를 덮었다. 양 옆에 망새를 세우고 처마 끝에 수막새까지 붙이고 나면 고대광실 한옥이 그 자태를 드러낼 터이다. 그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서까래는 힘에 버거워 뼈마디가 욱신거려도 강단 있게 버티어 줄 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여자의 직분이고 안사람의 자리인 것이다.

서까래용 나무들이 가지를 옆으로 뻗지 못하고 가지런히 자란 이유는 잡생각 하지 말고 묻혀 살라는 뜻인 성싶다. 그처럼 나도 옭매어 길러졌다. ‘여자는 남의 발에 신발이니 네 주장을 펴지 마라. 여럿이 모였을 때 방 가운데 앉지 마라, 남의 눈에 가시 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다, 날뛰지 말거라.’등등 귀에 못이 앉도록 들은 말을 종합해 보면 모두 남의 보조역할이나 해주며 살라는 뜻이었다. 여자로 태어난 너는 날고 뛰어봤자 서까래용이다. 서까래가 고개를 쳐들면 대들보와 지붕이 무너지는 법이니 죽은 듯이 살라고 배웠다. 물론 그 말 속엔 여자가 수그리고 사는 게 못 나서가 아니고, 못 이긴 듯이 깔려주면 속내는 다 고맙게 여긴다는 뜻도 들어있었을 터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나니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남 잘 되는 것 보고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 없고 튀다가 깨지지 않은 사람 없다. 묻혀 살아서 좋은 점도 많지 않은가. 집의 중심을 잡고 있는 대들보도 수시로 일어나는 갈등을 잠재우느라 고통스러울 테고, 건물 전체의 하중을 받고 있는 기둥과 마룻대도 곤고하긴 매일반일터이다. 어쩌면 나는 기둥이나 대들보같이 드러난 사람들로 인해서 편하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묻혀 살아서 다른 사람이 돋보였고 내가 못나고 튀지 않아서 타인의 마음이 좀 편했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서까래같이 묻혀서 제 역할을 하는 이들이 훨씬 많지 않은가.

지금까지 나의 존재가 하찮다고 속을 끓인 게 후회된다. 격조 있는 한옥을 보며 묻힌 서까래의 직분이 얼마나 큰가를 이제야 깨닫는다.


김광영 수필가 2004년 《문학예술》, 2005년 《수필과비평》 등단. 《에세이문예사》에서 ‘제1회 민들레수필문학상’을 받았으며, 부산수필문인협회 ‘제1회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객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