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의 기다림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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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28.

제9회 동서문학상 은상

크고 작은 서랍 속은 우리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술렁거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서랍 속엔 꽁꽁 입구를 봉해놓은 삶의 씨앗봉투, 미처 볶지 못한 연한베이지색의 커피,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리지 못한 작은 공, 다리가 부러진 안경, 고장 난 손목시계가 차곡차곡 넣어졌다. 때론 보는 것이 보이는 것의 전부였고 만지는 것이 만져지는 것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입방체의 그 수많은 서랍이란 공간 속에 정작 내가 간직하고 싶은 것들은 자리를 잃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롱 속엔 몇 번 입지 않은 또한 앞으로도 입을 것 같지 않은 내의와 철 지난 옷가지들로 가득 찼다.

이토록 잘 짜여진 수납 공간 속엔 크고 작은 물건들이 용도에 상관없이 뒤 섞여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건 살림살이뿐 만이 아니다. 때론 세상이란 공간의 넓은 서랍 속엔 온갖 다양하고 복잡한 삶들로 뒤 섞여 있다. 미처 새로 옮겨 간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이삿짐을 싸야 하는 특별하고도 당황스러운 아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처럼...... .

새로 옮겨간 집을 구하지 못한 채 해야 하는 이사는 여러 가지로 어수선했다. 집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 써야 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이 분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꼭 필요한 물건 최소한의 물건을 제외하곤 모두 이삿짐센터의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해야 한다.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버리지 못해 모아두었던 생일 케잌 상자에 여유분으로 남았던 색색의 초, 작은 옷핀, 떨어진 단추. 이 모든 것들은 이삿짐센터의 컨테이너 속에 보관 되게 될 것이다.

“저, 이것도 실을 건가요?”

이삿짐센터 직원이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흰색의 나무콘솔을 가리켰다. “아니요” 잠시 갈팡질팡 하는 사이 집안 구석구석 박혀 있던 크고 작은 살림살이가 간 곳을 정하지 못한 채 거실 가득해졌다. 덩치 큰 가구와 부엌살림과 책들을 옮기고 싸던 이삿짐직원들은 투덜거렸다. 이삿짐이 온전히 한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자꾸 지체되자 짜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짐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흰색의 콘솔과 서랍장 그리고 노란색 대형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부엌살림들이 사다리차에 실려 10층에서 이삿짐트럭으로 옮겨졌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처럼 사다리차는 연실 이삿짐을 부지런히 트럭으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가진 게 간단하면 인생도 간단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가진 게 많아 복잡할지라도 끝까지 내가 가진 것들을 껴안고 살고 싶다. 겨울 내내 남편 의 눈총을 받으면서 몸통에 솜을 넣어 만들던 색색의 퀼트인형들. 그 인형들을 흰색 나무콘솔에 올망졸망 조르르 올려놓고 바라 본 때의 그 따뜻한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잘 아는 지인에게 보증금도 받지 않은 채 계약서도 쓰지 않고 급하게 농장전체를 사용하게 했다. 뒤 늦게 일을 해결하기엔 일이 너무 심각하게 되어버렸다. 내 건물이라도 함부로 내 보낼 수 없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지인과는 이미 극한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급하게 집을 팔게 되었다. 남편은 집구할 때까지 큰 시누이아파트에 잠시 지내자고 했다.

잠시 머무는 것에 동의 할 수밖에 없었던 내겐 선택이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선택 이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때론 선택된 이들에게만 주는 선물일 때가 있다. 큰시누 내외는 지방에서 작은 사업을 했다. 그래서 아파트에는 아침에 출근해서 늦은 저녁에 퇴근하는 두 조카들이 지냈다. 조카가 키우는 네 마리의 애완용 강아지들과도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내게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남편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한 큰 시누의 짐들이 고스란히 있기에 나의 살림살이들을 들여 놓을 공간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그 많은 살림 중에 아이들 책과 교복 간단한 옷가지만을 챙겼다. 하지만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둘러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를 가져가기로 했다.

밀랍 같은 세상이란 서랍 속에서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어 요긴하게 쓰인 그 무엇이 되기 위해 깊은 숨을 쉬고 있을 내 또 다른 삶의 분신들인 살림들. 내가 이렇게 서랍 속의 기다림을 이해하게 될 즈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내 삶의 분신들은 밀폐된 은밀한 공간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기를 나처럼 희망하지 않을까. 내 삶에 있어 그 동안 소중하다고 느꼈던 가치들이 변하고 더 이상 내게 소유가 행복의 전부가 아님을 눈치 챌까 봐 서랍 속의 크고 작은 물건들은 그 어떤 의미를 지니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삶에 있어 덜 소유함으로써 덜 소비하게 된다는 담백한 삶이란 무소유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누구에게나 행복한 인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무소유의 참 진리를 깨달은 것이 누군가 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소유하고자 하는 물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욕망하는 것이 없어지는 걸까.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소유의 가치가 변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난 내가 지니고 살던 올망졸망한 살림살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 같다.

서랍장에 달린 크고 작은 서랍과 낡은 상자.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자물쇠 그리고 비좁은 공간들. 그 공간들에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내 삶의 서랍을 비우고 또 비우는 동안 내밀한 내 의식과 몽상들이 버려야 할 것과 소유해야 할 것들을 깨닫게 하기도 할 것이다. 크림색커튼과 베이지색 천 소파, 테이블들이 이삿짐 트럭에 실려 갔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흰색의 서랍장이 마지막으로 실려 나가 집은 텅 비었다. 집은 조용하고 처음처럼 텅 비어졌다. 나의 전부를 잃은 것처럼 허전하다.

정수리 부분이 달팽이처럼 뾰족한 은빛별 모양이 그려진 모자를 쓴 마법사가 되어 굳게 닫힌 이삿짐 컨테이너 문을 향해 알리바바의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외쳐 본다. 때론 닫혀있는 서랍 속에는 열려 있는 서랍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서랍은 사물들의 감옥인데, 언제부턴가 내 자신이 내 감옥 속에 갇히듯 닫힌 서랍을 열어 채우려는 욕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가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마음이란 욕망의 서랍 속에 숨겨져 있는 것과 입방체의 서랍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살다 보면 스스로 평정을 잃고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좌절과 실패, 행복이라는 안과 밖이 무한한 세계에 던져져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내 삶이란 내밀한 공간 속을 비어내는 인만큼 텅 빈 공간을 채워가는 것 또한 또 다른 행복이 될 수 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며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하기란 쉽지 않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법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소유로 인해 마음을 상하는 인도 있지만 소유할 수 없어 마음상하는 것도 매 한가지인 때가 있다. 그래도 살면서 애지중지 맘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그 나름의 은근한 맛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말이 나를 잠시 흔들리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난 내 삶의 소유물을 버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직은 더 곤혹스럽다. 하지만 나 또한 내 손에 움켜쥐고 있는 모든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 몫을 챙기기 위해 아웅다웅 살던 나를 향해 빙그레 웃고 있지 않을까.

난장이가 미처 쏘아 올리지 못한 작은 공이 세상을 향해 멋지게 쏘아 올려 질 때 비로소 세상이란 닫힌 서랍의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져 버리고 서랍 속의 오랜 기다림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