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반지의 기억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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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28.

제9회 동서문학상 은상

중국 교환학생 자격으로 유학길에 오르기를 이틀 전이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따라 나오라고 하더니 길가에 있는 커다란 금은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아버지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주인에게 금반지를 보여 달라고 하셨다, 아기 돌 반지를 보여줄 거냐고 묻는 금은방 주인에게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면서 자랑스럽다는 듯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딸내미가 유학을 가는데 반지 하나 해주려고요.”

나는 둥그레진 눈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머리 굵어진 이후로 아버지와 쇼핑을 해본적이 없었던 나는 내게 선물을 주려는 아버지의 행동에 놀랐고, 그 선물이 금반지라는 것에 또 놀랐던 것이다. 이런 황당한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주인아저씨는 어디로 유학을 가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층 더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국으로 간답니다, 요즘 중국이 점점 발전하고 있잖아요.”

요즘 남들 다 간다는 해외유학을 구태여 자랑하려고 애쓰는 아버지가 솔직히 싫었다, 이런 곳까지 와서 뭐 하러 그런 말까지 한담? 이렇게 큰소리로 쏘아붙이고 싶었다,

“혜정아, 어떤 게 예쁜지 골라 봐라, 원래 자식이 멀리 나갈 때 금반지 하나씩 해주는 거야. 돈수는 홀수로 해야 하는 건데. 요건 어떠냐?”

내가 보기에는 모두 누런 것이 그게 그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닌가 보았다. 이것저것 살피시더니 그 중 조금 두툼하고 국화꽃 무늬가 새겨져 있는 반지 하나를 집어 드셨다. 할머니가 끼는 반지 같기도 했고, 아기 돌 반지 같기도 했다.

“이것 몇 돈이나 나가는지 좀 달아봐 주세요."

두 돈 반인데 괜찮으냐는 주인의 말에 아버지는 그것도 홀수이니 됐다고 하시면서 내 손에 그 반지를 끼워주시는 것이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곳곳에 있는 화려한 액세서리 매장이 아닌 나이 많이 든 어른들이 애용하는 금은방에서 반지를 산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이십 대에 누가 이런 반지를 끼냔 말이다. 금은방에 있는 반지들은 내가 꿈꿔 왔던 모양과는 천지 차이였다. 액세서리 매장을 지날 때마다 쇼윈도 진열대 위에 있는 예쁜 반지들을 보면서 언젠가 남자친구가 내 손가락에 끼워줄 반지를 상상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가 그런 황홀한 나의 상상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 마음대로 골라버린 어린아이 돌 반지 같은 모양은 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무슨 갓난아기라도 돼요? 안 할래요. 됐어요."

이렇게 말하고 뒤돌아 나오고 싶었지만 그래도 "해주는 것만도 어디냐"라고 생각을 고쳐 먹은 뒤 입 꾹 다물고 아버지 뒤를 따라 금은방을 나왔다,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고맙다는 형식적인 말 한마디라도 꺼낼 만했을 텐데 내 머리 속에는 이 어색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것 외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와 나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이혼을 하게 된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 남매에게 매달리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기대치에 우리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커가면서 아버지께 자주 대들게 되었고 상처 주는 말이 오가다 결국에는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차에 타자마자 운전대를 잡으시더니 곧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빠가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말이야, 네 할머니가 금반지를 한 돈 해줬었는데 아마도 그 금반지 때문에 아빠가 아무 일 없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창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도 이야기 할 마음이 가셨는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씀도 꺼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어색한 관계를 뒤로 한 채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방학 때 한국으로 돌아와도 아버지와 얼굴 마주하는 때는 입국할 때 한 번, 출국할 때 한 번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아버지와의 소원한 관계를 보상받으려는 듯, 함께 있는 유학생들과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집착하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부터 해방된 나름대로의 삶을 즐기고 싶었다.

하루는 같이 수업 받는 친구들과 함께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노래방을 갔다. 서로가 그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다 풀어버리겠다는 듯이 마이크를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 정말 신나게 놀긴 놀았나 보다. 어느덧 집에 갈 시간이 다가와 자리를 정리하는데 순간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손을 내려다보니 내 손가락에는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손가락을 압박하고 있는 금반지가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탬버린을 칠 때 반지를 낀 손가락에 대고 정신없이 쳐댄 모양이다. 아무래도 순금이라 물러서 반복되는 타격에 반지 모양이 찌그러진 것 같았다. 억지로 빼기는 했지만 그 찌그러진 반지를 다시 끼고 다닐 수는 없었다.

얼마 후에 누런 금반지가 빠진 손가락에는 남자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깔끔하고 세련된 백금반지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물론 제 자리를 잃은 금반지는 백금반지가 들어 있던 조그만 상자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곧 위암 말기판정을 받으셨다며 귀국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부랴부랴 들어와 아버지를 뵙는 순간 그 초췌한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 곁을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내 정성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점점 아무 음식도 입에 대지 못하시던 아버지는 하루하루 꼬챙이처럼 말라가더니 결국 3개월도 안 돼 우리 곁을 떠나버리셨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갑자기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빈털터리로 나앉아버린 것이다. 그때서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나쁜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나 보다. 우리 집안 사정을 알게 된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더 이상 우리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고, 곧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알량한 자존심에 설득 한 번 해보는 노력도 없이 이별을 받아들였지만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는 차마 빼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세를 한탄하면서 허우적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그 동안 정리하지 못한 오랜 짐들을 간추리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상자를 하나를 발견했다. 남자친구가 반지를 선물할 때 넣어왔던 상자였다. 나는 얼른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아버지께서 주신 노란 금반지가 찌그러진 채로 누워 있었다.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 아버지께 송곳 같은 말들로 가슴을 찌르고 대들었던 지나간 시간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아버지의 바짝 마른 마지막 얼굴이 구겨져 있는 반지에 비쳐졌다.

“아빠가 월남에 갔을 때 말이야, 죽을 뻔한 적이 있었지. 한번은 할머니한테서 편지가 온거야. 막사 밖 벤치에 앉아 편지를 읽고 있는데 동료가 “뭐하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다가왔지. 그래서 아빠가 옆으로 자리를 비켜줬는데 그 친구가 아빠가 앉았던 자리에 앉자마자 총소리가 들렸고, 그 친구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거야, 나를 노리고 있던 베트콩의 총구가 친구의 심장을 적중해 버린 거야. 그날 그렇게 참혹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할머니가 내게 해준 반지 덕분에 살아난 거라고 믿게 되었지.”

아버지는 내가 외면해 버렸던 그 영화의 장면 같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신 것이다. 진통제를 너무 많이 맞은 탓에 약간 몽롱한 상태가 된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말씀하셨다.

“아빠는 이제 틀린 것 같다. 아빠가 끝까지 너희들 책임 못 져서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독하게 열심히 살아야 돼. 할머니가 아빠를 지켜줬던 것처럼 아빠도 너희들 왼쪽 어깨에 항상 있을 거야. 명심해!”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서 함께 금은방으로 갔던 그 날의 일을 되짚어 보았다. 얼마나 딸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면 그 힘없는 몸으로 못내 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힘들이며 했을까? 아버지는 딸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저 자식들이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일만 하시다가 병이 나고 찌그러진 반지처럼 몸이 병을 얻어 메말라 버린 것이다.

나는 상자 속 반지를 꺼내들고 바로 금은방으로 향했다. 아쉬움에 빼버리지 못한 백금 반지도 지금 내 손가락에는 없다. 그것은 이미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반지였다. 머릿속에는 아직도 아버지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그동안 아버지께 드렸던 상처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금은방으로 들어가 반지를 펴달라고 내밀었다.

주인아저씨 손에 의해 반지가 펴지는 것을 보면서 내 구겨진 속마음도 함께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보고 계시리라. 일그러진 얼굴이 아닌 환하게 펴진 얼굴로 바라보고 계시리라. 다 펴진 금반지를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살며시 끼웠다. 다행히 예전처럼 잘 맞았다. 이제는 다시 아버지와 함께 하려고 한다.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어린 날 아버지께서 나를 지켜줬던 것처럼 또 다시 아버지는 금반지가 되어 나를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