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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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피어라, 오늘 / 노정숙

70년을 사는 솔개는 40살쯤 되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노쇠한 몸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반 년에 걸쳐 새 몸을 만드는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 바위에 낡은 부리를 쪼아서 빠지게 한다. 서서히 새 부리가 돋아나면 그 부리로 무뎌진 발톱과 무거워진 깃털을 뽑아낸다. 그 후 새 발톱과 깃털이 나와 솔개는 다시 힘차게 새로운 삶을 산다. 시난고난하던 때, 이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우화라는 걸 알았다. 실제로 솔개의 수명은 20년 정도이며 부리가 상한 뒤 다시 자라는 조류는 없다고 한다. 새로운 선택을 할 때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의 의지를 다그치기 위해서 만든 우언이었다. 어쨌거나 맹렬한 행은 고수의 몸짓이다. 그럼에도 나는 쇄신을 생각했다..

댓글 수필 읽기 2021. 6. 3.

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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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봄봄 / 노정숙

언덕배기에 산수유가 선웃음을 날린다. 제비꽃 살풋 고개 숙이고 쑥은 쑥쑥 올라와 푸르른 향내로 길손의 손길을 맞으리. 길가에 넌출넌출 수양버들 팔 벌리니 흰머리 휘파람새 그 품에 집을 짓고, 벌판은 꽉 짜인 풍경화. 실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좁은 길 굽은 길 연분홍 점묘화가 지천이다. 벚꽃이 진다고 애달플 건 없네. 봄볕은 벚나무 아래 곳간을 열어 이팝꽃 팡팡 나누네. 이팝꽃 곁 철쭉이 오동통 꽃망울 앙다물고 머지않아 여민 가슴 열어보이리. 꽃비, 걱정 없다. 벚꽃은 바람에 휘날릴 때가 절정인걸. 절정에서 스러지는 저 눈부신 산화, 달콤한 봄날이다. ..... 앞 산, 키 큰 소나무가 팔 벌려 새들을 부르고 단풍나무가 아직 마른 잎을 떨치지 못하는 사이 눈치 빠른 놈은 뾰족 아기새부리 같은 여린 잎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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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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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잃어버린 감색목도리 / 정호경

나는 혹한의 겨울에도 목도리를 안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3때의 사건이었으니 아득한 옛날 일이네요. 어렸을 때 몰래 어머니의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동네 앞 논바닥에서 조그만 문패만한 판자에 철사를 대어 받친 외발 스케이트를 타는 동네 아이들 옆에서 한 시간이 넘게 서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내 여우목도리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장롱 속에 있어야 할 이 목도리가 어머니의 눈에 띄어 꾸지람을 들은 데다 아버지까지 알게 되는 날에는, 공부는 안 하고 언제나 엉뚱한 짓만 하고 다니는 내 종아리에 열 서너 대의 핏발이 서게 될 것은 너무나도 빤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피해 골방에 숨어 엎드린 채 졸다가 그만 저녁밥 때를 놓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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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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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물소리를 들으며 / 허창옥

혼자 앉아서 물소리를 듣는다. 그 시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물은 눈앞에서 두세 번 꺾이며 떨어져서 소(沼)에 잠긴다. 영국사 가는 길, 숨이 찰 즈음에 삼단폭포를 만났다. 폭포는 높지 않고 물줄기도 새지 않다. 마찬가지로 소도 둘레가 크기 않고 깊이도 얕다. 작고 조용한 폭포, 오히려 쉬기에 편안한 느낌이다. 평상처럼 편편한 바윗돌에 홀로 앉아있다. 이제 막 돋아나는 새잎들의 투명한 초록으로 천지가 눈부시다. 물은 연신 떨어져서 포말로 퍼지고 소는 그물을 받아 안는다. 물은 소에 이르나 한 쪽이 터져있어 또 어디론가 흘러내린다. 그러니 소는 더함도 덜함도 없이 마냥 그대로이다. 품었으나 다시 흘려보내니 소는 편안해 보인다. 소는 그 속을 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이끼 낀 돌들, 떨어져 겹겹이 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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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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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젓갈 예찬 / 정호경

‘젖’은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애가 꼬막손으로 미래의 꿈을 주무르며 빨아먹는 사랑의 밥인가 하면, ‘젓’은 나이가 든 어른들이 밥숟가락에 얹거나 걸쳐서 먹는, 짜고 고소한 감동의 반찬이다. 이와 같이 ‘젖’과 ‘젓’은 맞춤법과 뜻과 정서가 각각 다른데도 우리는 일상의 글에서 우리말을 조심성 없이 붓 가는 대로 마구 써버리니 글의 문의파악에 잠깐이나마 혼동이 일어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젖’이나 ‘젓’이나 둘 다 눈을 지그시 감고 먹는 얼굴표정은 비슷하지만, 각각 맛의 깊이와 색깔이 다르니 하는 말이다. 속담사전에 보면 ‘젓갈가게에 중이라’,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절이 망하려니까 새우젓 장수가 들어온다’는 등 젓갈에 관계되는 속담이 더러 올라 있는 것을 보면 절에 사는..

댓글 수필 읽기 2021. 6. 3.

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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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김이하 시인

그냥, 그래 / 김이하 요금 내가 사는 건, 그냥 그래/ 가슴에 박힌 큰 말뚝보다 자잘한 가시에 아파하며/ 막 화를 내고 그래, 입으로 욕도 뱉고 살아/ 어머님 가시고, 아우도 스러지고/ 그들의 궤적이 뒤꼭지에 퀭하게 박혀도/ 아직 견딜 만은 한 거지// 그러다 같이 바라보던 저 꽃 한 송이 때문에/ 겨울밤 함께 나누던 라면 한 가닥 때문에/ 온 창자를 토해 버릴 지경이 되는 거지/ 어쩌다 같이 숟갈 담그던 뜨끈한 고깃국을/ 한 숟갈 입에 넣다, 울컥하고 말다니/ 그런 게 환장하는 거지// 엊그제는 이를 닦다 말고 아우 얼굴이/ 거울에 스치는가 싶더니 앞이 감감하더라고/ 그새 내 아린 마음 살아 있는 아우에게 갔던지/ 어제는 내가 저희들 꿈에 두 번이나 다녀갔다고/ 전화가 오더라고, 그냥 그래// 흐린 ..

댓글 시詩 느낌 2021. 6. 3.

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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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막에서 버티기 / 허창옥

그 여자는 키가 작다. 150cm나 될까한 작은 키에 오동통하다.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이지만 맑고 큰 눈이 빛나고 있어 예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시사철 입고 있는 짙은 녹색 앞치마에는 노란 몸과 까만 눈, 갈색 귀를 가진 헝겊 곰이 아플리케로 붙어있다. 곰도 예쁘다 여자와 곰은 닮았다. 그 여자는 동구시장 한 모퉁이에서 야채노점을 하고 있다. 이불가게, 양품점, 그릇가게 등 불빛 환한 점포들 앞에서 길게 좌판을 늘어놓고 야채를 다듬고 있는 그 여자의 이름은 그냥 ‘훈’이네이다. 얼핏 거칠어 보이지만 함빡 웃으며 물건을 팔 때 보면 귀여운 구석이 많다. 그의 꿈은 버젓한 점포하나 마련해서 이불가게 주인처럼 수북이 쌓인 불건들 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앉는 것이다. 그 여자는 열아홉 ..

댓글 수필 읽기 2021.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