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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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합천 영암사터 –눈 감고 들었네, 바람이 전하는 말 / 박시윤

합천댐과 황매산 자락을 중심으로 들어앉은 집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굽어진 길을 따라 무작정 오르다 보면 어느새 모산재의 기암들이 장엄하게 눈길을 뺏는다. 영암사 터는 황매산(해발 1천108m) 남쪽 자락인 모산재(해발 791m) 아래 정동 쪽을 향해 있다. 모산재 주변 바위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영험한 기운을 쏟아내며 절터를 호위한다. 모산재 바로 아래 마을인 합천 가회면은 화전민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한때는 빨치산의 활동 거점이었을 만큼 깊은 골짜기였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 골짜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절터엔 아무도 없다. 새벽의 정적만 사방에 깊이 깔렸다. 공기가 무겁다. 바람에 비 냄새가 섞여 있다. 곧 비가 쏟아지겠다. 엷은 어둠 속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얼마나 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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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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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생쥐 / 강호형

날씨가 추워지면서 쥐들이 극성을 부렸다. 밤이면 다락과 천장에서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소리로 가늠하건대 쥐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요, 크기로도 같은 또래가 아닌 것 같았다. 우르르 쾅쾅 호기 있게 내달리는 놈은 체격도 당당한 수놈일 터이고 같은 중량감이라도 조금 조심스러운 놈은 암놈. 그리고 그 뒤를 쪼르르 따르는 놈들은 그들의 새끼일시 분명한 생쥐들일 것이었다. 헛간 어디에 살던 쥐 일가가 이사를 와서 집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양이다. 모처럼 그럴듯한 집을 마련한 가장의 시위에 온 가족이 맞장구라도 치는 것일까? 그리하여 천장과 다락을 이 무뢰한들에게 전세 한 푼 못 받고 고스란히 내주게 된 나는 내 가족에게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쥐들의 잔치는 집들이로만 끝나지 않았다. 해만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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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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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못갖춘마디 / 윤미애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그분이 오셨다. 섣달 열여드레 시린 달빛 받으며 오신 모양이다. 서걱대던 댓잎도 잠든 시각. 제주가 위패에 지방을 봉하자 열린 대문사이로 써늘한 기운 하나가 제상 앞에 와 앉는다.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망설이다 들어온 걸음일까. 촛불은 병풍에 두 남자의 실루엣을 그리며 천장을 향해 솟는다. 허리가 꾸부정한 제주가 한 순배 술을 올리고 용서라는 절을 하자, 고개 숙이고 있던 그의 아들은 신뢰라는 절을 한다. 망자의 아들과 그 아들의 업둥이가 지내는 내 아버지 제사 날이다. 큰 오빠는 아버지에게 못갖춘마디 같은 자식이었다. 깨진 유리온실 속의 시들어 가는 화초 같은 아들이었다. 가슴여미는 아픔으로 무섭게 스치거나 소용돌이치다가 비워진 쉼표와 마지막 마디의 음표가 만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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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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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그때가 좋았어! / 이종전

머리를 이발사에게 맡기고 앉았다. 때가 때인 만큼 설에 관한 이야기가 이발사와 종업원들 사이에 오가기 시작했다. 이발사가 “옛날이 좋았지!”했다. 그 말에 한 종업원은 동조를 했다. 그러나 다른 종업원 한 사람이 “옛날이 뭐가 좋았냐! 난 지금이 좋다.” 의견은 2대 1로 갈렸다. 세 사람이 일하고 있는 이발소 안에는 의견이 갈린 채 서로 입장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이발사는 자신의 추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떡과 엿을 해서 집집마다 나눠 먹은 일,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하던 일, 온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모이고 서로 찾아보던 일 등등 너무나 좋았다고 했다. 게다가 직업이 직업인만큼 설이 다가오면 이발소에서 머리 한 번 깎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이야기부터, 그때는 여자아이들도 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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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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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뒤란 / 우종률

“얼레리 꼴레리 소문내야지, 누구누구는 뒷단에서 뭐뭐 했대요, 뭐뭐 했대요.” 하필이면 동네에서 제일 개구쟁이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아마도 녀석의 눈엔 특종 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심심하기도 하고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는가 일부러 찾아다니던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우리 집 뒤란과 동네 정자나무와는 일직선으로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무를 타던 녀석에게 그만 발각되었던 것이었다. 소문은 봄부터 여름 내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마침 도시에 사는 친척 여동생이 와서 소꿉놀이로 음식을 만들어주던 참이었다. 음식이라야 우물가에 달린 풋-앵두를 따고 사금파리를 빻아 양념으로 만든 것이 고작이었다.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모두 주고 싶었다. 아이도 유난히 나를 따랐다. 도시아이들에겐 간섭받지 않는 그런 공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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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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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파블로 네루다 시인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가 / 파블로 네루다 하루가 지나면 우리는 만날 것이다./ 그러나 하루 만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거리에서는 포도를 팔고/ 토마토는 껍질이 변한다./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던 소녀는/ 다시는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 예고 없이 우편배달부가 바뀐다./ 이제 편지들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황금빛 잎사귀 몇 개로 나무는 다른 나무가 된다./ 이 나무는 더 풍성해졌다.// 오래된 껍질을 지닌 대지가 그토록 많이 변하리라고/ 누가 우리에게 말해 주었는가?/ 어제보다 더 많은 화산이 생겨나고/ 하늘은 새로 생겨난 구름들을 가지고 있으며/ 강물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세워지는가!/ 나는 지금까지 수백 개의 도로와 건물들,/ 그리고 배나 ..

댓글 시詩 느낌 2021.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