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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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모란이 만개하던 날 / 곽진순

해마다 고향집 화단에는 갖가지 꽃이 피고 졌다. 수국, 연산홍, 쩔쭉, 상사화, 노란나리, 원추리, 사루비아. 고향집에 갈 때마다 그것들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어찌 그리 곱더냐. 꽃이라서 예쁘더냐. 조물주한테 나에게 올 사랑과 관심까지 독차지하였더냐? 나는 꽃들을 보며 그렇게 속삭이곤 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그 생명력이 너무 짧아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덧없음과 유한성을 자각하도록 하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각각의 꽃은 특유의 매력이 있으되, 특별한 사연과 인연으로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수수밭에서 자라는 수수들처럼 '꽃'이라는 하나의 개념 아래 몰개성의 개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4월이었다. 고향집을 방문 했을 때 영산홍과 모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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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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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왜 마시는가 / 곽진순

영화 에서 주인공 미키 루크는 무시로 술을 마신다. 길거리에서, 공원 벤치에서, 침대 위에서 쉼 없이 병나발을 불어대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다. 그는 취해서 걸핏하면 사람들과 시비를 붙고 싸움질을 한다. 그는 별다른 직업도 없고 안락한 가정도 없다. 삼류 건달이 보낼 법한 일상을 날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술 마시는 것 못지않게 그가 즐겨하는 것이 하나 있다. 라디오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일이다. 술과 음악,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옛날 희랍인들은 바커스 축제 때 왕창 술을 마시고 북장단에 맞추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엑스터시한 상태에서 신과 합일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술과 음악이란 접신하는 데 필요 불가결한 요소였다. 미키 루크에게 있어서 술이란, 특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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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닭개장 / 안도현

여름이 되면 슬며시 당기는 음식이 닭개장이다. 음식점에선 좀체 맛볼 수 없다. 이건 우리 어머니의 주특기 음식 중 하나다. 닭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릴 때부터 어머니 옆에서 유심히 지켜봤다. 지금은 나도 마음먹으면 거뜬히 끓여낼 자신이 있다. 닭은 집에서 키운 놈이 좋다. 푹 삶아서 식힌 뒤에 뼈에서 발라낸 살을 잘게 찢어 준비해둔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이걸 한 솥 끓이면 우리 집 여섯 식구가 두 끼는 먹을 수 있었다. 그건 닭개장에 넣는 채소와 국물 덕분이다. 닭고기와 채소의 절묘한 결합이 닭개장의 맛을 결정한다. 무시래기나 배추시래기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데 나는 부드러운 배추시래기가 더 좋다. 마른 토란대와 고사리를 미리 삶아두는 것도 필수다. 숙주나물을 씻어놓고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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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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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말없는 길은 없다 / 김영인

공연히 마음이 허둥거리고 생각이 많아질 때가 있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나는 그동안 무얼 하였나 싶기도 하고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그간 나에게 고마움으로 다가온 사람과 안타까움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런 날이면 간단히 배낭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선다. 주로 마을 뒷산이나 내가 사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날 무작정 걸으며 나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기회로 삼는다. 그러면 나름대로 삶의 방향과 색깔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작은 깨달음 하나 막연히 기대하며 길을 나서본다. 날씨는 완연한 여름이 아니건만 쏟아지는 햇살은 뜨겁고 눈부셨다. 창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과 팔에 햇볕 차단제를 연신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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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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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찔레꽃의 노래 / 김영인

5월은 신록의 계절,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지만 사실 5월만큼 힘겨운 달도 없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지나면 곧이어 스승의 날 , 부부의 날이다. 여기에 집안의 대소사까지 겹치게 되면 그야말로 허리가 휘어지도록 한 달이 내내 버겁다. 더군다나 올해는 작년부터 불어 닥친 불황으로 경제가 더욱 어려우니 그저 내 가족 하루 무탈하게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보통 서민들이 바라는 오늘의 현주소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5월로 접어들면서 몇 번이나 지갑을 여닫으며 주판알을 튕겼는지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조그만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은행대출이 용이하지 않아 몇 번이나 일감을 놓쳤으며 그나마 약간의 여유 돈을 예치해 둔 통장도 그 이자가 대폭 삭감되는 바람에 나는 근근이 살림을 꾸려나가는 셈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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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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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샅바 / 류영택

레슬링 종목 중 그레코로만형이 있다. 자유형과 달리 상체만 공격하는 종목이다. 쓸 수 있는 기술도 단순하고 같은 체급에 덩치도 비슷하다보니 좀처럼 공격할 틈이 생기지 않는다. 시합을 벌이는 선수보다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더 용이 쓰인다. 공격할 기회를 찾으려고 서로 손을 부딪는 모습을 보다보면, 답답해하는 시청자의 마음을 대신해 경기 장면을 해설하는 사람의 입에서 ‘빠떼르 줘야 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경기방식도 낯설고, 잡았다하면 곧바로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씨름을 봐왔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을 보면 짚신과 갖신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채 상투 튼 두 사람이 씨름을 하고 있다. 누가 이기든 관심 밖인 듯 등을 돌린 채 우두커니 서있는 엿장수에 시선을 빼앗기..

댓글 수필 읽기 2021. 6. 11.

1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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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박인환 시인

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남기고/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 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

댓글 시詩 느낌 2021.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