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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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무릎을 꿇고 있는 나무 / 한경선

가슴 속에 감춰둔 나만의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보고 싶었다. 로키산맥 수목 한계선에 산다는 나무. ‘로키’라는 지명의 어감은 적당한 고독을 품은 씩씩한 사나이 같다. 그곳, 해발 삼천 미터 높이에서 산다는 나무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다고 한다. 무릎 한 번 쭉 펴지 못하고 구부린 채 살아내는 나무의 다리를, 존경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싶었다. 그 옆에서 오랫동안 앉아 깊은 기도를 엿듣고 싶었다. 구부러진 나뭇결 켜켜이 눈물과 고통 끝에 맺힌 진주를 찾고 싶었다.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을 그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나무가 그대로 살다 죽었다면 나무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픔이 절묘한 선율을 만들어 누군가의 영혼을 일깨우고 고단함을 어루만지기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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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빈들에 서있는 지게 하나 / 한경선

200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사람 하나 세상에 와서 살다가는 것이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고, 베어지는 풀꽃 같다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침 안개처럼 살다 홀연히 떠나버려도 그로 인해 아파하는 가슴들이 있고, 그리운 기억을 꺼내어보며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질녘 밭에 갔더니 시아버님의 지게가 석양을 뒤에 지고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생전에 그 분 성품을 말해 주는 듯 꼼꼼하게 싸매어 파라솔 아래 묶어두었다. 겨우 이 세상 떠난 지 보름 되었는데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지게 작대기는 아득한 옛날로부터 와서 서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와서 다시 쓰시려고…….' 지게에 눈을 두지 않으려 애써 피해도 다시 눈이 거기에 머물렀다. 혹시 발자국이 있을까 싶어 밭고랑을 살펴보았다. 자식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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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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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전조(前兆)를 잘 읽어야 / 일성록(日省錄)

번 역 문 Ⅰ. 경상우도 병마우후(兵馬虞候) 이용순(李容純)이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렸다. “이달(1월) 24일 자시[子時 밤 11시~1시]에 병마절도사(병사로 약칭)가 거처하는 동헌(東軒)에 불이 나서 병사 이인달(李仁達)이 불길 속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병사가 차는 밀부(密符)와 병부(兵符)는 옆방에 있던 통인(通引) 김쌍윤(金雙胤)이 챙겨서 갖고 나와 본영의 대솔군관(帶率軍官) 이현모(李顯謨)가 와서 전하므로 잘 받았고, 밀부는 군관 유현(柳眴)에게 주어서 올려보냈습니다. 병사가 사용하던 인신[印信 관인(官印)]과 3개 진(鎭) 영장(營將)의 병부(兵符) 왼짝[左隻]과 소속 31개 고을 병부의 왼짝은 남강(南江)에서 건졌고, 옛날에 쓰던 인신, 유서(諭書), 절월(節鉞), 각 창고의 열쇠는 모두 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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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마지막 비상금 / 김상영

겨울답지 않게 눅진눅진 꿉꿉한 나날이다. 사계절이 진퇴양난에 빠진 듯했다. 애써 깎아 말리던 곶감에 곰팡이가 슬어 내버린 지도 제법 되었다. 가을걷이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장터 고스톱 꾼들은 매일이다시피 판을 벌였다. 적막한 시골살이에 심심풀이 땅콩과도 같은 고스톱판은 티격태격 정을 쌓고 소주잔을 나누는 사랑방과 같았다. 그렇긴 해도 다슬기를 주워 판 알토란같은 돈을 몽땅 털리게 된 날 나는 어슬어슬 추웠다. 찬물에 떨며 허덕댄 보람이 밤새 도루묵이 된 것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더니, 재주가 모자라는 데다 운도 없는 날이었다. 잃을 때도 있고 딸 때도 있어 그게 뭐 그리 대수이랴 마는 생고생한 돈이라 섭섭하였다. “지갑이 썰렁 타, 돈 좀 주소.” “얼마나?” “돈 십만 원이면 안 되겠나.” “현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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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삼겹살 / 김상영

삼겹살은 좀 침침한 골방에서 먹어야 더 맛이 난다. 그 방은 좁아서 아늑해야 하고 적당히 지저분해야 한다. 기름때 낀 포마이카 상다리의 나사가 헐거워 꺼떡거려도 상관없다. 가스레인지는 군데군데 기름얼룩이 누리끼리하게 붙어있어야 좋다. 방바닥에 사려놓은 가스 줄을 궁둥이로 슬쩍 밀치고 앉은들 어떠랴. 누런 비닐 장판은 기름기가 덜 닦여져 눅진해야 정이 간다. 방석은 이 손님 저 손님 하도 깔고 앉아서 윤이 날듯하고, 손으로 잡으면 쩍 달라붙을 것 같은 것이라야 편하다. 환풍기는 내미는 바람이니 묵은 먼지가 끼어 있은들 상관없고, 스위치 줄을 당기려 발돋움한들 뭐 그리 대수랴. 파리똥 듬성한 벽에 빌붙은 고장 난 시계는 언제나 어제 그 시각이며, 이 손님 저 환자에게 헤프게 나눠줬을 한의원 달력은 온갖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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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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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신석정 시인

어머니 기억 -어느 소년의 / 신석정 비오는 언덕길에 서서 그때 어머니를 부르던 나는 소년이었다.그 언덕길에서는 멀리 바다가 바라다보였다.빗발 속에 검푸른 바다는 무서운 바다였다.// ''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는 이내 메아리로 되돌아와 내 귓전에서 파도처럼 부서졌다.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고,내 지친 목소리는 해풍속에 묻혀 갔다.// 층층나무 이파리에는 어린 청개구리가 비를 피하고 앉아서 이따금씩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청개구리처럼 갑자기 외로웠었다.// 쏴아...먼 바닷소리가 밀려오고,비는 자꾸만 내리고 있었다.언덕길을 내려오노라면 짙푸른 동백잎 사이로 바다가 흔들리고,우루루루 먼 천둥이 울었다.// 자욱하니 흐린 눈망울에 산수유꽃이 들어왔다.산우유꽃 봉오리에서 노오란 꽃가루..

댓글 시詩 느낌 2021.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