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021년 06월

21

21 2021년 06월

21

수필 읽기 우리 잘 늙고 있다 / 허창옥

밀면 먹으러 간다. 시원하다, 맛이 괜찮다, 로 의견일치를 본 점심메뉴다. 골목을 걷기 시작하자마자 그와 나 사이에 10m쯤의 간격이 벌어진다. 워낙 키 차이가 난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가는 마음이 편안하다. 젊었을 땐 서로 보폭을 맞추어서 걷고, 자주 손을 잡고 걸었다. 그때 오늘처럼 그가 앞서 걸었다면 아마 다투었을 것이다. 그는 대체로 자상하며 나를 잘 살피는 사람이었다. 우린 늙어가고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는 예사롭게 혼자 걸어가고 나는 또 그런 그가 전혀 고깝지가 않다. 잠깐 돌아보고 섰다가 그가 식당으로 들어간다. 자연스럽다. 우리 이렇게 편하게 늙어가고 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늙어서 그와 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둘 다 걸음걸이가 불안하거나 아주 불편해지면 다시 젊..

댓글 수필 읽기 2021. 6. 21.

21 2021년 06월

21

수필 읽기 도라지꽃 / 손광성

도라지꽃은 깔끔한 꽃이다. 도라지꽃은 달리아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칸나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다 피어도 되바라진 데가 없는, 단아하고 오긋한 꽃이다. 서양 꽃이라기보다 동양 꽃이요, 동양의 꽃 가운데서도 가장 한국적인 꽃이다. 예쁘면 향기는 그만 못한 법이지만 도라지꽃은 그렇지 아니하다. 그 보라색만큼이나 은은하다. 차분한 숨결이요 은근한 속삭임이다. 도라지꽃은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핀다. 가을꽃이라기 보다 여름꽃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패랭이꽃과 함께 가을꽃으로 친다. 그 보라색 때문일까. 아니면 길숨하게 솟은 꽃대궁이 주는 애잔한 느낌 때문일까. 도라지꽃에서는 언제나 초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도라지꽃은 언제나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들국화나 코스모스처럼 무리를 지어 피는 법이 없다. 양지..

댓글 수필 읽기 2021. 6. 21.

21 2021년 06월

21

수필 읽기 엽차와 인생과 수필 / 윤오영

애주가는 술의 정을 아는 사람, 음주가는 술의 흥을 아는 사람, 기주가嗜酒家, 탐주가耽酒家는 술에 절고 빠진 사람들이다. 이주가唎酒家는 술맛을 잘 감별하고 도수까지 알지만 역시 술의 정이나 흥을 아는 사람은 아니다. 같은 술을 마시는 데도 서로 경지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나 생활은 하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생활을 알고, 생활을 말할 수 있는 그리 많지가 않다. 누구나 책을 보고 글을 읽지만 글 속에서 글을 알고 글을 말 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드물다. 민노자閔老子의 차를 마시고 대뜸 그 향미와 기품이 다른 것을 알아 낸 것은 오직 장대張岱뿐이다. 그는 낭차閬茶가 아니고 개차岕茶인 것을 알았고, 봄에 말린 것과 가을에 따 말린 것을 감별했고 끓인 물이 혜천惠泉의 물인 것까지 알아내어 주인을 놀라게..

댓글 수필 읽기 2021. 6. 21.

21 2021년 06월

21

수필 읽기 관조(觀照) / 윤상기

수필을 쓰는 사람에게 좋은 수필을 쓰는 일은 가장 즐거운 일일 것이다. 잘 씌어진 수필을 대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평화롭다.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과 사물을 분석하여 혼을 실은 글을 대할 때마다 머리가 숙여진다. 수필공부를 하면서 선배작가들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이러한 욕심은 부질없는 나의 생각이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움이 앞을 가로 막았다. 처음에 붓 가는대로 쓰는 게 수필인 줄 알았다. 무조건 지나온 나의 삶을 신변잡기로 글을 썼으니 내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문학적 사고가 없는 글에 얼마나 식상했을까? 어느 날 책을 읽는 도중 관조란 낱말이 내 뒤통수를 호되게 때렸다. 관조란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라 했다. 나의 부족한 사고로 생활 ..

댓글 수필 읽기 2021. 6. 21.

21 2021년 06월

21

시詩 느낌 신석초 시인

바라춤 -서장 / 신석초 환락은 모두 아침 이슬과도 같이 덧없어라. ―싯타르타//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없는 꽃잎으로 살아 여러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소리는 하마 이슷하여이다./ 경경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추이고/ 뒤안 이슷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레노라.// 몸은 설워라./ 허물 많은 사바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장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

댓글 시詩 느낌 2021.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