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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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청량몽(靑蘭夢) / 이육사

거리에 마로니에가 활짝 피기는 아직도 한참 있어야 할 것 같다. 젖구름 사이로 기다란 한 줄 빛깔이 흘러 내려온 것은 마치 바이올린의 한 줄같이 부드럽고도 날카롭게 내 심금(心琴)의 어느 한 줄에라도 닿기만 하면 그만 곧 신묘(神妙)한 멜로디가 흘러 나올 것만 같다. 정녕 봄이 온 것이다. 이 가벼운 게으름을 어째서 꼭 이겨야만 될 턱이 있으냐. 대웅성좌(大熊星座)가 보이는 내 침대는 바다 속보다도 고요할 수 있는 것이 남모르는 자랑이었다. 나는 여기서부터 표류기(漂流記)를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날씬한 놈, 몽땅한 놈, 나는 놈, 기는 놈, 달리는 놈, 수없이 많은 어족(漁族)들의 세상을 찾았는가 하면 어느때는 불에 타는 열사(熱砂)의 나라 철수화(鐵樹花)나 선인장들이 가시성같이 무성한 위에 황금 사북..

댓글 수필 읽기 2021. 6. 22.

22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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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인생꽃 / 차하린

날마다 천변을 산책하면서 저녁노을을 마주한다. 해를 품은 노을이 오늘도 서쪽 하늘을 능소화 꽃빛으로 물들인다. 연방 숨이 넘어가는 다홍빛 해는 오늘따라 한낮 동안 하늘에 떠 있을 때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 장엄한 일몰 풍경이 인생의 노년기 같아 보여서 마음이 애잔해진다. 노년은 나이든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도 결국에는 노년에 다다르니 전세대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어떻게 해야 후회 없는 노년을 맞이하게 될까. 노년기는 6070세대와 8090세대로 나눌 수 있다. 8090세대는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서 나라 잃은 설움과 핍박을 받다가 광복 후에는 6.25 전쟁까지 겪는 격랑의 세월을 살았다. 6070세대는 6.25 전쟁 전과 후에 태어나서 과밀 교실에서 다다귀다다귀 엉겨 붙어서 공부를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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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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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영당 할머니 / 이광수

내가 절에 온지 며칠 되어서 아침에 나서 거닐다가 이상한 노인 하나를 보았다. 회색 상목으로 지은 가랑이 넓은 바지에 행전 같은 것으로 정강이를 졸라매고 역시 같은 빛으로 기장 길고 소매 넓은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헝겊으로 만든 승모를 쓴 것까지는 늙은 중으로 의례히 하는 차림차리지마는 이상한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주름이 잡히고 눈썹까지도 세었으나 무척 아름다왔다. 여잔가, 남잔가. 후에 알고 보니 그가 영당 할머니라는 이로서 연세가 칠십 팔, 이 절에 와 사는지도 사십년이 넘었으리라고 한다. 지금 이 절에 있는 중으로서는 그중에 고작 나이가 많은 조실 스님도 이 할머니보다 나중에 이 절에 들어왔으니 이 할머니가 이 절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내가 이 절에 오래 있게 되매 자연 영당 할머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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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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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이름짓기 -닿소리 / 강돈묵

구강공화국(口腔共和國)에는 다섯 고을이 있었다. 고을마다 씨족이 모여서 살았는데, 그들은 제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건실하였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현실에 잘 적응하는 삶을 꾸려나갔다. 힘을 키우기 위해 소유하는 법이 없었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가며 행복만을 추구했다. 물론 고을마다 땅의 모양이나 형질이 달라 생업에 차이가 있고, 그들의 됨됨이나 개성도 현격한 특징이 있었다. 씨족이 다르다 하여 서로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옹졸함은 없었다. 때에 따라서는 함께 하며 어려움을 풀어가기도 하고, 조화롭게 절충하는 데에도 능숙하였다. 간혹 의견이 달라 다투기는 하였으나 별달리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다른 고을 사람들과 차별화하는 일에 그리 열중이지 않았다. 모두가 다 있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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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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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생진 시인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 목차 1~81 1. 바다를 본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바다를 본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2. 설교하는 바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3. 끊을 수 없다 성산포에서는 끊어도 이어지는/ 바다 앞에서 칼을 갈 수..

댓글 시詩 느낌 2021.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