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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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언플러그드(unplugged) 풍경 / 정성화

창고에서 가장 큰 가방을 꺼냈다. 앞뒤로 볼록한 가방의 모양새가 내 마음을 부풀게 했다. 사실 나를 더 설레게 하는 것은 남편을 떼어놓고 간다는 거였다. 내 옷, 내 신, 내 모자, 내 화장품 등, 내 소지품만으로 여행 가방을 꾸리는 것으로도 스트레스가 반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가 오랜 승선생활을 끝내고 내 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모든 게 감격스러웠다. 칫솔 통에 그의 칫솔이 꽂혀 있는 것, 그의 속옷이 빨랫줄에 널려 있는 것,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당신이야?”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까지. 인생의 참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마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우리는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배에서는 선장의 말 한 마디에 모두가 “Yes, Sir"을..

댓글 수필 읽기 2021. 7. 2.

02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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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덕산 가는 길 / 박광안

인생의 길에는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코로나19의 불청객이 나타나 갈 길을 막아버렸다. 날씨는 화창한 봄날 꽃들은 만발하였다. 답답하여 홀로 고덕산을 향하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십여 년 전에 등산모임에서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 동물원에서 출발하는 1000번의 버스를 집 앞에서 타고 시내를 돌아 좁은 목 약수터 앞에서 내렸다. 시계를 보니 10시를 가리키며 초침은 째깍 째깍 가고 있었다. 나도 뚜벅뚜벅 한걸음씩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옛 추억을 생각하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표지판에 대승사와 남고사 길이 나타났다. 첫 번째 선택의 순간이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대승사 길로 향했다. 한참을 가니 백구 네 마리가 달려 나와 멍멍 짖어댄다. 겁이 났지만 조용히 걸어가니 달려들지는 않았다..

댓글 수필 읽기 2021. 7. 2.

02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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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금쪽같은 사과 / 박광안

언제부터인가 하루가 시작되면서 반갑게 맞아준다. 금쪽같은 사과 반쪽인데, 한 개는 양이 많아 반쪽씩 아침 식사 전 먹고 있는 것이다. 공복에 사과를 먹으면 영양섭취가 좋아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이다. 입안에서 청량감은 상쾌한 기분이다. 날마다 먹는 사과도 품종에 따라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하였다. 궁금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9월~10월에 수확하는 홍로는 신맛이 거의 없고 당도가 매우 높으며 추석 제수용품과 선물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부사는 10월~11월부터 수확하며 비바람 서리를 맞고 추위를 견디며 자랐기에 저장성이 좋으며 맛도 좋아 꿀 사과라고 하였다. 7월~8월에 볼 수 있는 아오리는 여름풋사과인데 가피가 얕고 푸르지만 과즙이 많고 새콤한 맛이라고..

댓글 수필 읽기 2021. 7. 2.

02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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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내 마음속의 반쪽 / 류영택

층층이 겹쳐있는 깃털이 예사롭지가 않다. 앞에서 보면 전장에 나가는 로마 장수의 머리에 쓴 투구모양을 하고 있고, 옆에서 보면 깃을 잔득 세운 채 날카로운 부리로 상대를 위협하는 독수리의 모습을 닮아 있다. 경주박물관, 내 눈길을 붙든 것은 안압지 용마루를 장식했던 치미다. 하지만 치미는 지난 날 위엄을 부리고 앉아 있던 그 모습이 아니다. 한껏 멋을 부렸지만 겉모습과 달리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발을 굴리며 인기척을 내보지만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아직도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걸까. 넋을 놓고 있는 치미의 모습이 지난 날 우리 집 용마루에 올라앉은 망새의 슬픈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향 집은 헐리고 없었다. 기둥을 떠받치고 있던 주축 돌도 장독대 옆에 서 있던 감나..

댓글 수필 읽기 2021. 7. 2.

02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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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심보선 시인

풍경 / 심보선 1// 비가 갠 거리, XX 공업사의 간판 귀퉁이로 빗방울들이 모였다가 떨어져 고이고 있다. 오후의 정적은 작업복 주머니 모양 깊고 허름하다. 이윽고 고인 물은 세상의 끝자락들을 용케 잡아당겨서 담가 놓는다. 그러다가 지나는 양복신사의 가죽구두 위로 옮겨간다. 머쉰유만 남기고 재빠르게 빌붙는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엉긴 기름을 보고 무지개라며 손가락으로 휘젓는다. 일주일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무지개다...... 것도 일종의 특허인지 모른다.// 2// 길 건너 약국에서 습진과 무좀이 통성명을 한다. 그들은 다 쓴 연고를 쥐어짜내듯이 겨우 팔을 뻗어 악수를 만든다. 전 얼마 전 요 앞으로 이사왔습죠. 예, 전 이 동네 20년 토박이입죠. 약국 밖으로 둘은 동시에 털처럼 삐져나온다. ..

댓글 시詩 느낌 2021.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