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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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솟을대문 / 김주선

어릴 적 우리 집은 솟을대문이 있는 기와집이었다. 중류층의 보통 집 구조였으나 새마을운동 이전에는 부러움을 사는 고택이었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집안일을 거드는 일꾼의 살림방이 있는 행랑채가 있었다. 대문은 두 개였다. 바깥마당에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중앙에 자리 잡은 솟을대문은 아버지의 벼슬 같은 자랑이었다. 행랑채는 살림방 외에 대문을 중심으로 외양간과 광(곳간)이 있었고, 집터를 아우르는 흙담 아래로 봉숭아가 피는 화단이 있었다. 목수인 조부에게 집 짓는 일을 배운 아버지는 전쟁통에 절반은 허물어진 어느 집 고택을 사, 기둥과 대들보를 분리해 지금의 집터로 옮겨왔다. 어찌 보면 한옥은 암수를 서로 끼워 맞추는 형식이었기에 분리가 쉽고 조립도 쉬웠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어 끼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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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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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바다를 한 상 차려놓고 / 김주선

제15회 바다문학상 수상작 경남 삼천포항 근처에 사는 친구로부터 아이스박스에 담긴 택배가 도착했다. 태양력의 절기로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흙냄새로 자란 친구였다. 조선소 근처에서 청춘을 보내더니 바닷가 사람이 다 되었나 보다. 태음력을 꿰고 물 때를 헤아리는 걸 보니 제법 갯내가 난다. 상자에는 꾸덕꾸덕 말린 가자미와 새끼 딱돔이 해조류 위에 끼리끼리 포개져 누워있다. 입덧 때 즐겨 먹던 다시마 부각처럼 기름에 노릇노릇 튀겨내면 바다가 한 상 차려지겠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바다를 본 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첩첩산중 내륙지방 감자바위 출신이라 대관령의 명태덕장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바다는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밭을 닮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싸릿가지로 엮은 지게 소쿠리가 보리밭 한가운데 둥둥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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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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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책(冊) / 이태준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은 위한 세기(世紀)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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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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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디로 갔을까? / 박미림

이사는 얼핏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짐을 실어온 아저씨들이 자장면을 먹는 동안 나는 애지중지 챙겨 온 새장을 화단 가로 옮겨 놓았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산수유꽃이 앵무새의 샛노란 깃털과 너무나 닮았다. 녀석들은 처음 맛보는 바깥공기 때문인지 시끄럽게 조잘조잘거렸다. ‘그래, 마음껏 노래하렴.’ 늘 갇혀만 지내던 불쌍한 목숨 아닌가? 이사한 집은 아파트 1층 베란다 하나만 열면 화단이 내 집 정원 같았다. . 책장은 어느 방에 놓을 것인지? 소파는 어느 쪽이 좋은지? 짬짬이 인부들에게 참견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소소한 액자들만 걸면 이사는 마무리된다.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그제야 나는 앵무새를 데리러 산수유나무가 선 화단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조용하다. 조심조심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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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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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오래된 연애의 기술 / 박미림

“학창시절 내가 쓴 연애편지는 작가 뺨쳤지.” 오랜만에 만난 초등 동창의 너스레다. “아쉽다 책으로 묶였다면 베스트셀러가 됐을 텐데…” 나는 웃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왜 아니겠는가? 사춘기 시절, 누군가로 인해 까닭 없이 가슴이 뛸 때, 상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필살기. 한 줄 한 줄 밤새워 편지를 썼을 것이다. 썼다 지우기를 수십 번. 편지쓰기 습작은 나날이 필력이 붙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글쓰기 실력의 정점도 그즈음 이었음을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가슴앓이 편지를 쓴 사람이 어디 그 친구뿐이랴. 누구나 연서를 쓰는 순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활용했을 것이며, 스스로의 검열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봉투에 봉인되었을 터. 그러니 비록 유치함과 조잡함이 유..

댓글 수필 읽기 2021. 7. 6.

06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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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류근 시인

유언 –아들, 딸에게 / 류근 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 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 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 마음이 따뜻해서 남보다 추워도 된다는 생각하지 말아라./ 앞서 나가서 매맞지 말아라./ 높은 데 우뚝 서서 조롱 당하지 말아라./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남이 때리면 같이 때려라./ 더 욕하고 더 때려라./ 남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웃어주지 말아라./ 실패하면 슬퍼하고 패배하면 분노해라./ 빼앗기지 말아라./ 빼앗기면 천배 백배로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 비겁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 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큰 교회 다녀라./ 세상에 나쁜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부끄러운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댓글 시詩 느낌 2021.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