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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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꽃등 / 박금아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건너에는 작은 사찰이 있다. 일주문과 불탑은 물론, 대문도 담도 없다. 조악하게 올린 기와 아래에 대웅전(大雄殿)이라고 쓴 나무 현판만 없다면 일반 가옥과 다름없는 밋밋한 콘크리트 건물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부처님을 아파트 앞까지 내려오시게 했을까. 하긴 교회도 성당도 사람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데 절만 깊은 산 속에 있으란 법 있을까. 애초에 사람 곁에 있던 절을 깊은 산중으로 내쫓은 것이 간사한 인간들 아니던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가도 이웃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거지에는 불쑥불쑥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떨어진 거리라고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정도여서 절집의 일상은 아파트에 고스란히 담겼다. 새벽 네 시면 목탁 소리가 들려오고, 아침 열 시면 스님의 설법 소리가 마이크를 ..

댓글 수필 읽기 2021. 7. 7.

07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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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주선의 품격/ 김주선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을 보면 이름이 참 독특하고 시적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대다수 인디언은 삶의 경험이나 품성, 자연이나 상황을 묘사한 이름을 지으며 성도 없이 자연에 결속되었다. 주먹 쥐고 일어서서, 머릿속의 바람, 발로 차는 새, 그리고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늑대와 함께 춤을’도 사람 이름이었다. 길지만 멋진 의미가 있었다. 한때 네티즌 사이에서 인디언식 이름짓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의 생년월일을 앱에 넣으니 다음과 같은 이름이 만들어졌다. ‘조용한 황소와 함께 춤을’.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도 한 문장으로 된 이름을 가진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전국노래자랑에 나왔던 ‘손 고장난벽시(계)’ 씨는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이름이었다. 이십여 년 전 가을, 강남에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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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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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우리 선비들에게 가장 절실한 공부는 오직 하학下學입니다 / 안정복

번역문과 원문 우리 선비들에게 가장 절실한 공부는 오직 하학下學입니다. … 이는 입으로 말해줄 수 없고 모두 실제로 힘써 공부하여 그 진위를 체험해야 합니다. 吾儒着緊用工, 專在下學. … 此不可以口傳, 都在着實用力, 以驗其眞僞. 오유착긴용공, 전재하학. … 차불가이구전, 도재착실용력, 이험기진위. -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순암집(順菴集)』권8 「황이수에게 답하다[答黃耳叟書]」 해 설 순암(順菴) 안정복이 72세 되던 해(1783년), 자신에게 간절히 공부의 방법을 묻는 제자 황이수(黃耳叟)에게 보낸 답장에서 한 말이다. 황이수는 황덕길(黃德吉, 1750~1827)이다. 그는 형인 황덕일(黃德壹)과 같이 안정복에게 배웠고, 형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순암의 정갈한 순암연보를 작성하기도..

댓글 습득 코너 2021. 7. 7.

07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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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새들에게 묻는다 / 김주선

논둑에 세워진 허수아비가 어깨춤을 추었다. 광대 분장의 얼굴은 새들도 겁내지 않을 표정이었다. 바람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구경하던 참새 가족이 날아와 허수아비 어깨 위에 앉았다. 핫바지 광대 따위는 겁나지 않는 모양이다. 고향 가는 길, 들녘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농부와 새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새들은 저들끼리 무어라 지껄이는 걸까. 어린 날, “훠~이, 훠~이” 새를 쫓던 아버지의 쉰 목소리가 동구 밖까지 들리는 듯하다. 학교 다닐 때 우둔하거나 산수가 더딘 학생을 가리켜 ‘새대가리’라고 꾸짖던 담임이 있었다. ‘오늘 아침 너희 어머니가 까마귀 고기를 주셨냐’며 머리를 콩콩 쥐어박던 선생님이었다. 고향의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보니 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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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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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겨울서정 / 김주선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돈다. 재채기가 나는 걸 보니 고뿔까지 들려나보다. 때가 때인지라 서둘러 피로 회복제 한 알과 쌍화탕을 데워 마셨다. 온몸에 약발이 도는지 낮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이재무 시인은 십일월을 가리켜 의붓자식 같은 달이라 했던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드레 행사나 치르게 되는 달이라고. 하지만 긴 겨울나기를 준비하느라 아버지는 가장 분주했다. 부엌을 고치고 굴뚝을 소제하고 측간을 비워야 했다. 모든 채비가 허드렛일이 아니었다. 상달은 일꾼의 새경을 치르고 도지를 정산하는 달이기도 했다. 농부의 빈손에 열매가 쥐어지는 달이므로 곳간이 채워질수록 집안에도 자잘한 행복이 차고 넘쳤다. 아무리 무딘 조선낫일지라도 추수가 끝나면 숫돌에 가는 일이 없었다. 고된 농사일로 자루가 부러진 연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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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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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황인찬 시인

아카이브 / 황인찬 이 계단을 오르면 집에 이른다​/ 제비들이 창턱에 앉아 뭐라 떠들고 있다/ 그것이 여름이다​// 장미가 피는 것을 보며 여름을 알고/ 무궁화가 피는 것을 보며 여름인 줄을 알고​// 벌써 여름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지난여름에도 똑같은 말과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이 알아차림을 평생 반복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마다 여름은 창턱을 떠나 날아갈 준비를 한다​// 이 계단은 집을 벗어난다​// 여름에 무리 지어 날아다니고 여름이 이리저리 피어 있는 풍경이다/ 낮은 풀들이 한쪽으로 밟혀 누워 있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이 누적 없는 반복을 삶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이 시의 서정적 일면이다// 구관조 씻기기 / 황..

댓글 시詩 느낌 2021.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