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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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베풂 없는 베풂 / 은종삼

물은 맛이 없다. 가장 좋은 물이란 맛은 물론 색깔도 냄새도 없는 물이다. 그럼에도 지친 나그네가 길가 옹달샘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야! 물맛 좋다.”고 감탄사를 터뜨린다. 맛없는 맛을 본 것이다. 깊은 산 속 암자에서 수행 중인 한 노스님이 한겨울 녹차가 떨어졌는데 눈이 쌓여 구하러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맑은 청수를 끓여 녹차 잔에 따라 마시면서 “녹차 맛이 은은하다.”고 했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물맛을 녹차 맛으로 착각한 것이다. 물은 맛이 없지만, 모든 음식에 맛을 내준다. 만일 물에 맛이 있다면 음식이 제 맛을 낼 수 있을까? 결국 모든 음식은 물맛이다. 좀 지나친 발상일지 모르겠다. 베풂도 이와 같다. 진정한 베풂은 ‘베풂 없는 베풂’이다.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을 비롯하여..

댓글 수필 읽기 2021. 7. 8.

08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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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늙은 호박 / 은종삼

“연초를 부산하게 보내고 숨을 고르고 보니 70령 고개에 앉아 있구려. 휴, 어이 할꼬! 허나 기는 죽지 말세” 학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친구가 휴대폰으로 보낸 신년 메시지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사교성도 좋아 주변에 남녀 친구들이 많이 몰렸다. 나도 어쩌다 어울려 몇 차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추억이 떠오른다. 퇴직 후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마음으론 이심전심 친근한 사이다. 신년 하례 메시지를 받고 보니 그때 그 시절 다시 못 올 추억이 떠오르고 참 반가웠다. 한편 이 친구, 늙음의 허전함과 소외감으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는 느낌이 들어 안쓰럽기까지 했다. 유유상종의 위로를 해주고 싶어졌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이 자연의 이치인지라 현직에 있을 때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컸던 친구들일수록 퇴직 후..

댓글 수필 읽기 2021. 7. 8.

08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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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영주 시인

여름의 애도 / 이영주 비 오는 밤 슬레이트 지붕 밑에서 어머니는 부서진 날개를 깁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옆구리일까요. 그때 나는 어머니의 바구니에 담겨 있는 털 뭉치처럼 온몸이 가려웠었죠. 죽은 사람이 두고 간 것인데. 어머니는 중얼거리다 말고 빗물이 쏟아지는 마당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발자국이 지워졌습니다. 어두운 자리 하나만 남아서 점점 깊어지고 있었죠. 모든 게 빗길을 따라 흘러가는 것인데. 너의 할머니는 이것을 두고 갔구나. 우산을 들고 어머니는 마당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머니의 울음을 듣지 못하고 나는 털 빠진 개처럼 옆구리를 긁고 있었죠. 개다 만 빨래가 다시 축축하게 젖어드는 시간. 떠내려가지 못한 날개를 건져 올린 것은 어머니입니다. 찢기고 바스러진 이것을 어떤 자리에서 다..

댓글 시詩 느낌 2021.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