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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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세월 저편의 당수나무 / 정해경

노을빛 곱게 물드는 저녁나절에 우연히 어느 낯선 농촌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이는 외딴 집 굴뚝에서 향수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인지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의 정경이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곳의 수호신인양 당당한 위풍으로 버티며 서 있는 한 그루의 거목, 바로 당수나무였다. 나는 그 앞에 이르러 가든 길을 멈춰 섰다. 동제를 지낸 지 며칠 되지 않았나 보다. 나무의 둘레를 휘감아 얼기설기 동여 놓은 금줄이며 주변 바닥에 잔뜩 부려 놓은 황토의 선명한 빛깔로 하여 언뜻 그 곁에 다가서지를 못하고서 서성거렸다. 나는 금줄에 매달린 한지조각들이 간간이 스치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득히 멀어진 세월 때문일까...

댓글 수필 읽기 2021. 7. 9.

09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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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우리 집 보물 / 고정완

우리 집에는 쉰살이 된 살아있는 보물이 있다. 그 보물은 한 달에 한번 밥만 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토록 쉬지도 않고 군소리 없이 일한다. 아침이면 나를 깨우고 밤이면 재워주는 충실한 심복이다. 몸통은 네모요 동그랗게 생긴 얼굴 양쪽 볼에 입이 있고, 하복부엔 여름철 축 늘어진 늙은 소 낭심(囊心) 같은 진자(振子)가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인다. 이것은 내가 1970년, 모교인 당북국민학교에서 6학년을 담임 했을 때 졸업 기념으로 선물 받은 벽시계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아내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식구로 정이 듬뿍 들었다. 식구들이 게으름을 부릴 때면 똑딱똑딱 채찍도 하고 땡~ 땡 경고도 울려준다. 국민학교 2학년 때만 해도 시계 공부를 하는데 집에 시계 있는 집은 23명중 2명 밖에 없었다. 농촌에..

댓글 수필 읽기 2021. 7. 9.

09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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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그 쓸쓸함에 대하여 / 고정완

하얀 소 신축년(辛丑年)이 동산위에 떠 오른지도 한 달, 유난히 춥고 눈도 자주 내리고 있다. 멈추지 않는 ‘코로나19’와 매서운 한파로 세상은 얼어붙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고 있다. 햇볕이 맑고 포근한 날 답답하고 외로움을 떨치고자 덕진공원을 찾았다. 그 많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텅 빈 공원에는 나목이 오돌 오돌 떨고, 화려했던 연꽃은 허리꺾기고 물에 잠겨 쓸쓸하고 애처롭다, 생을 다한 흑갈색 연잎에서 일평생 농사를 지으며 희생으로 주름진 촌노의 얼굴을 떠 올린다. 덕진 연못은 본래 건지산 계곡의 물이 고인 연꽃 피는 자그마한 늪지였는데,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제방을 쌓으면서 커다란 연못으로 변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주의 지세가 ..

댓글 수필 읽기 2021. 7. 9.

09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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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오은 시인

O와 o / 오은 너 O 맞지? 낯선 이의 목소리에 몸이 절로 쭈그러들었다. 당시 나는 벤치에 앉아 모든 생각은 일정 정도는 딴생각이라고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데로 쓰는 것이 생각이니까. 머릿속이 흔들려야 하니까. O 맞네, 맞아! 낯선 이가 느닷없이 손뼉을 치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랐다. 낯섦과 느닷없음이 겹쳐 공포가 되었다.// 무방비 상태일 때는 별도리 없이 위축된다. 오후 두 시에도 그렇고 새벽 두 시에도 마찬가지다. 밝아서 부끄럽고 어두워서 무섭다. 위축된다고 밝히고 나니 몸뿐 아니라 마음도 덩달아 작아졌다. 위축될 때마다 나는 확신한다. 몸과 마음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몸의 밀도가 낮아질 때마다 마음에도 숭숭 구멍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O는 대답하지 않는다. 주저하는 기색도 없..

댓글 시詩 느낌 2021.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