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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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매실의 초례청 / 류창희

연 분홍빛 소녀의 얼굴로 은은한 향을 풍기던 매화. 어느덧 매실이 되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매실을 준비하는데, 오래 전 초례청에 들어서던 동갑내기 우리부부를 보는 듯 마음이 설렌다. 배가 불룩한 오지항아리는 매실의 초례청이다. 나는 주례를 맡았다. 신랑신부 맞절을 시키듯, 청실홍실을 다루듯, 매실 한 켜 설탕 한 켜 비율로 차곡차곡 항아리에 넣었다. 축하세례로 남은 설탕을 초록매실 위에 하얗게 뿌리고, 마지막 절차는 초야를 치를 합방만 남았다. 혹, 불길한 기운이라도 스밀 새라, 한지로 항아리 아가리를 딱 붙였다. 신방인 셈이다. 목화솜처럼 뽀얀 새 이부자리 위에 축사로 매화송이를 그릴까하다가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적었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창에 기대니 밤빛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 가지에..

댓글 수필 읽기 2021. 9. 7.

07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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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운명은 동사다 / 류창희

운명, 운명을 거부한다. 아니 거부하고 싶다. 하나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속설이 겁났다. 어미는 밥 먹고 숭늉 마시듯, 습관적인 ‘박복’ 타령을 했다. “부모 복 없는 X은 서방 복도 없고…”, 그다음은 자식 복이 나올 차례다. 대물림을 피하느라 어미 앞에서 절절매며 어미의 엄마가 되었다.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 자축 인묘 진사 오미 신유 술해. 사람은 천간天干 지지地支의 육십갑자 순환으로 연월일시, 사주四柱가 정해진다. 제아무리 지혜롭고 총명해도 가난할 수가 있고, 어리석고 고질병을 지녔어도 부자일 수 있으니, 숙명처럼 운명도 받아들이라는 유교적 운명론이다. 아이들이 춥다고 하면 이불을 쌓아놓고 널뛰기를 시켰다. 나는 뜨거운 옥수수 차로 몸을 데웠다. 그 꼴을 보신 시어머니께서, 아끼고 아끼..

댓글 수필 읽기 2021.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