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021년 10월

28

수필 읽기 써니 / 천복자

한때는 다섯 마리의 잉꼬들이 들어있어 복잡하던 새장에, 이제 혼자 남은 써니 Sunny의 점심 식사가 한창이다. 모이통에 담긴 그냥 조 알갱이는 별로 즐기지 않는 그녀가 열심히 쪼아 먹고 있는 것은, 막대기에 조와 꿀, 비타민제를 버무려 부쳐놓은 과자 같은 모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써니는 횟대에 잠시 올라앉았다가, 거울이 달린 곳으로 가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열심히 지저귀기 시작한다. 친구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이후, 남편과 아이가 친구를 대신하라고 사다 걸어놓은, 자기와 똑같이 생긴 플라스틱 새에게 써니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제 벌써 8살이 된 써니가 얼마나 더 우리 곁에 머물지는 알 수 없지만 (수의과 의사는 잉꼬가 10년을 살면 많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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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1년 10월

28

수필 읽기 스탕기어 선생님의 정원 / 천복자

우리 집의 바로 앞에 있는 스탕기어 선생님의 정원에는 봄이면 온갖 꽃들이 피어난다. 이른 봄에 빨간 꽃망울을 맺는 매화나무로부터 왕관처럼 생긴 노란 화관을 가진 수선화, 싸리비를 연상하게 하는 초록색 대궁이에 마치 노랑나비가 날개를 접고 풀잎에 앉은 듯 샛노란 꽃잎이 위로 촘촘히 올라가며 박혀있는 긴스터 (Ginster), 살짝 스치기만 해도 상큼한 냄새가 손안에 가득 묻어나는 향료로 쓰이는 튀미안 (Thymian),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남불 해안의 보라색 꽃밭을 떠오르게 하는 라뵌델 (Lavendel)…… ‘ 여신의 머리를 빗는 빗처럼 생겼다 해서 ‚비너스의 빗‘ (Venuskamm)이라 불리는 앙증맞게 생긴 귀여운 풀은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파리지옥풀’이란 무서운 이름이 붙어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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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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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양광모 시인

한 번은 詩처럼 살아야 한다 / 양광모 나는/ 몰랐다// 인생이라는 나무에는/ 슬픔도 한 송이 꽃이라는 것을//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펄럭이는 날개가 아니라 펄떡이는 심장이라는 것을// 진정한 비상이란/ 대지가 아니라 나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인생에는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험보다/ 절벽을 뛰어내려야 하는 모험이 더 많다는 것을// 절망이란 불청객과 같지만/ 희망이란 초대를 받아야만 찾아오는 손님과 같다는 것을// 12월에는 봄을 기다리지 말고/ 힘껏 겨울을 이겨내려 애 써야 한다는 것을// 친구란 어려움에 처 했을때 나를 도와줄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내가 도와 줘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떤 사랑은 이별로 끝나지만/ 어떤 사랑은 이별 후에야 비로소 시작 된다..

댓글 시詩 느낌 2021. 10. 28.

27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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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빈대 절터, 장연사지 / 변재영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물길이 비단결같이 곱다는 청도 금천(錦川)의 장연사지를 걷는다. 온화한 부처의 미소가 그리웠을까. 개망초 무리들의 탑돌이가 한창인 절터에는 살색 감꽃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넉넉했던 절터는 감밭으로 내주고 한 뼘 땅에 몸을 부비고 있는 쌍탑의 처지가 딱했다. 금당을 지켜내지 못한 회한 때문일까. 두 탑은 멀리 흘러가는 동창천만 무심히 바라볼 뿐 말이 없다. 태고를 향해 눈물짓는 망부석 같기도 하여 탑돌이 하는 내 마음이 짠해진다. 육화산의 끝자락,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 장연사지는 모든 게 수수께끼다. 빈대가 많아 불태웠다는 구전 외에는 절의 규모도, 창건과 폐망도, 심지어 절의 이름까지 어느 문헌에도 언급이 없다. 쌀뜨물이 십 리나 흘렀다는 전설..

댓글 수필 읽기 2021. 10. 27.

27 2021년 10월

27

수필 읽기 센 녀석이 온다 / 이삼우

햇살이 넘실거리는 주말 오후다. 소파에 상체를 파묻고 TV를 보면서 졸고 있을 때였다. 휴대전화의 컬러링이 절간 같은 집안의 정적을 깨뜨린다. 작은 며느리 전화다. 손자 녀석이 보채는 통에 할머니 집에 오겠단다. 작은 아들네는 우리 부부가 사는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안방 침대에서 주말 드라마를 보다가 설핏 잠이 들었던 아내도 손자가 온다는 전화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더니 “집 안 청소를 안 했는데….” 혼자 말하듯 웅얼웅얼한다. 당신이 청소하겠다는 의사표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옆이 있는 남편한테 부탁하는 것도 아닌 삼인칭 유체이탈 화법이다. 아내는 잠이 덜 깬 푸석한 얼굴로 거울을 보더니 안 돼! 하며 재빠르게 샤워실로 들어가 버린다. 노부부만 사는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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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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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박제영 시인

누가, 인간에게 원숭이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주었나 / 박제영 그러니까 대학 1학년 때였는데요 일반물리학 중간고사 시간이었는데요 문제가 다음과 같았는데요// y축으로 y높이의 전봇대가 서 있고, x축으로 x거리 떨어진 곳에 포수가 서 있다. 전봇대 위에 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실수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원숭이를 맞출려면 포수는 몇 도 각도로 총을 쏘아야 하는가?// 정답이 아크탄젠트 y분의 x든, x분의 y든 중요하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이렇게 써야만 했는데요 원숭이를 숲에서 쫓아낼 권리를 누가 주었나요 원숭이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누가 주었나요 떨어진 원숭이를 치료해서 다시 숲으로 돌려 보내야 하지 않나요// 0점을 받고 F학점을 맞았는데요 결국 공학도가 되는 것을 포기했는데요 20년이 지난 ..

댓글 시詩 느낌 2021. 10. 27.

27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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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 윤영

꽃잎 빨아 쓰듯 젖은 날 많은 당신이 싫었습니다. 거름 자리마다 붉은 달리아 꽃을 심어놓고, 태풍에 쓰러진 꽃대나 묶어주던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울에 봉숭아가 흰 꽃을 피웠다고 ‘참하다, 참하다.’ 말씀하시던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햇살 들지 않는 부엌 찬장 옆에 노란 감국 꽂아놓고 ‘곱다, 곱다’ 말씀하시던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차디찬 골방에 비틀린 가시선인장 들여놓고, 천 쪼가리 칭칭 동여 매주고 ‘봄날까지 잘 견뎌야 하느니라.’라던 당신의 읊조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창고 문을 열어보면 수북하게 쌓인 거라고는 비료 포대나 나일론 끈 따위가 전부였습니다. 부뚜막에 꽝꽝 얼어붙은 행주, 뜨거운 물에 녹여보면 해진 런닝구 쪼가리였습니다. 겨울밤 윗목에 먹다 남은 거라고는 벌레..

댓글 수필 읽기 2021. 10. 27.

26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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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돌할매의 미소 / 백현숙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산지사방 가을빛이다.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좁고 긴 골짜기를 지나니 누런 들판이 낮은 산을 등에 업고 낮잠을 자는 듯 평온한 동네가 눈에 잡힌다. 간절함을 안고 돌할매를 찾아 나선 길이다. 영천시 북안면 관리에 있는 돌할매 공원. 낯선 시골길에 안내판이 반갑다. 돌할매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지극정성 기도를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적혀있다. 수백 년 전부터 주민들이 당산 신으로 모시면서 마을의 대소사나 가정의 길흉화복을 빌고 각자의 소원을 다져보는 신비의 돌 할머니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니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한 표정이다. 하여 햇살마저 골짜기 사이로 안개처럼 내려앉았고 나무들..

댓글 수필 읽기 2021.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