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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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한승원 시인

손거울 하나 / 한승원 중학교 학생들의 호주머니 검사를 실시했는데,/ 키 작달막한 아이의 호주머니 속에서 손거울 한 개가 나왔다./ 생활지도 선생님은 그 손거울을 압수해 가지고 가면서/ “이 손거울을 반드시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교무실로 와서 말하고 찾아가도록 해라.”하고 말했다.// 그 아이가 생활지도 선생님에게 찾아가 말했다./ “예쁘게 피어 있는 꽃을 만나면 그 꽃한테 제 얼굴을 비쳐 보여주려고요.”/ 옆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국어 담당 시인 여선생님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생활지도 선생님이 빈정거렸다./ “야, 손거울로 꽃한테 제 얼굴을 비쳐주면 꽃이 제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이냐?”/ “모든 꽃들은 손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비틀어져 있는 꽃잎을 바..

댓글 시詩 느낌 2021. 10. 2.

02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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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밤마다 호랑지빠귀처럼 울며 헤매고 있을 그 사람을 위하여 / 한승원

새터말이라는 고향 마을의 이름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반드시 내가 나고 자란 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 태어남과 자람과 방황과 깨달음의 시간이 있는 보금자리고 내가 돌아갈 마지막 안식처다. 그 고향 안의 모든 것들한테 나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친구 이상수에 대하여 쓰고 싶었지만 그게 그렇듯 쉽게 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에게도 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와 나는 열정병과 실존주의병을 함께 앓고 함께 방황을 했었다. 「승원아!」 한밤중이나 새벽녘쯤에, 친구 이상수는 문득 우리집으로 달려와서 잠들어 있는 나를 불러 깨우곤 했다. 봄이든지 여름이든지 가을이든지 겨울이든지를 가리지 않았다. 이십대 초반의 일이었다. 나는 그 무렵 전라남도 남단의 섬 덕도 내 고향마..

댓글 수필 읽기 2021. 10. 2.

02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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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다시 ‘시인과 농부’ / 한승원

대나무는 뿌리를 수직으로 뻗지 않고, 옆으로, 옆으로 뻗어가서 죽순들을 밀어올림으로써 자기 영역을 한없이 넓히는 식물이다. 농민은 이웃의 솜대 밭에서 자기네 밭으로 뻗어온 뿌리들을 파서 내던져 버린 다음, 다시는 그 뿌리가 뻗어 건너오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네 밭과 대밭의 경계에 무릎이 잠길 만큼의 기다란 참호를 팠다. 인근에 사는 시인은 그 대나무 뿌리 여남은 개를 가져다가 자기 서재의 서편 창문 앞 울타리에 줄줄이 심었다. 밤이면, 서쪽으로 기우는 달빛으로 말미암아 서창에 드리워질 수묵화 같은 대나무 그림자를 완상할 생각으로, 또 속이 텅 비고 올곧게 살아가는 대나무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내 속으로 대나무가 들어오게 할 생각으로. 그리고 사철 내내, 바람에 사각거리는 그들의 싱싱하고 풋풋한 속삭임과 꾸..

댓글 수필 읽기 2021.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