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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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우산 / 김애자

희멀건 눈으로 멍하니 쳐다본다. 햇살이 환하면 우산은 현관 귀퉁이에서 무료한 삶을 이어간다. 형형색색이 행렬을 이룬다. 비 오는 날은 누군가에게 들림을 받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의기양양하다. 주인의 요구에 따라 반원이 되는가 하면 중세의 사원처럼 뾰족하고 둥근 지붕이 된다. 투명한 속살을 드러내 지나는 눈길을 잡아채거나, 화려한 색으로 자태를 뽐내며 빗속을 누빈다. 날이 들면 찾아오는 실직의 소식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우산의 걸음이 활기차다. 우산은 임시직이다. 언제라도 불러주기만 하면 머리를 조아리며 고마워한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쓰임 받는 날은 높은 꼭대기에 오른 것 같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변을 살필 여유도 잠시 뿐, 언제 관심 밖으로 밀려날까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며 가슴을 졸인다. 이십여 년 ..

댓글 수필 읽기 2021. 10. 22.

22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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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적자嫡子 / 박금아

아버지가 배 문서를 들고 집으로 오던 날의 기억이 선하다. 집안의 여인네들이 방 안 가득 어머니 곁에 둘러앉아 머릿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던 모습도 떠오른다. 문서가 담긴 싯누런 봉투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어흥 11호’는 아버지가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이었다. 할아버지가 소유한 십여 척의 배 가운데 제일 낡고 작은 배였다. 아버지는 서자(庶子)였다. 아들을 얻지 못한 할아버지가 씨받이로 맞아들인 여인의 몸에서 얻은 첫아들이었다. 아버지를 낳은 후, 생모는 강보에 싸인 아들을 행랑채에 남겨 두고 새벽달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친할머니는 딸 하나를 더 낳았고, 이어 아들 형제를 내리 낳았다. 아버지는 중학교 졸업이 배움의 전부였다. 두 분 작은아버지가 서울 어느 대학에서, 당시로서는 이름도..

댓글 수필 읽기 2021. 10. 22.

22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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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박팔양 시인

목숨 / 박팔양 친구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길가의 한 포기 조그만 풀을/ 보신 일이 있으실 것이외다/ 짓밟히며, 짓밟히면서도/ 푸른 하늘로 작은 손을 내저으며/ 기어이 기어이 살아보겠다는/ 길가의 한 포기 조그만 풀을/ 목숨은 하늘이 주신 것이외다/ 누가 감히 이를 어찌하리까?/ 푸른 하늘에는 새떼가 날으고/ 고요한 바다에 고기떼 뛰놀 때/ 그대와 나는 목숨을 위하여/ 땅 위에 딩굴고 또 딩굴 것이외다// 침묵 / 박팔양 나는 그대의 종달새 같은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보다고 더 그대의 말없음을 사랑한다/ 말은 마침내 한계의 조그만 아름다운 장난감/ 나는 장난감에 싫증난 커가는 아이다/ 말보다도 그대의 노래를 나는 더 사랑한다/ 진실로 그윽하고도 황홀한 그대의 노래여!/ 붉은 노을 서편 하늘에 비끼..

댓글 시詩 느낌 2021.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