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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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대가야에 순장(殉葬)되다 / 이상유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이른 새벽, 홀로 주산(主山)을 오른다. 주산은 고령 대가야읍에 있는, 대가야 왕국의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보듬어 안고 온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왕릉전시관 뒤편의 남쪽으로 난 고분들 사이를 걸으며 대가야 역사의 숨결 속으로 빠져든다. 1천500여 년 동안이나 꼼짝없이 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수많은 고분의 우뚝우뚝한 봉분 위로 새벽 별빛이 총총하다. 철의 왕국으로 불리며 520년 동안 대가야를 지배했던 왕과 왕족들의 700기가 넘는 무덤이 주산의 능선과 비탈에 따개비처럼 붙어있다. 그 무덤 속에는 순장(殉葬)이라는 비정한 이름으로 생목숨을 빼앗겨야 했던 이름 없는 백성들의 영혼도 숨 쉬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서 저세상에 가더라도 이승에서와..

댓글 수필 읽기 2021. 11. 1.

01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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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상 문경새재 단풍

가을님 만나려고 이르게 출발해 10시에 도착했다. 1, 2주차장은 이미 만차, 3주차장에서 만차 직전에 ㅡ주차 칸이 좁아ㅡ 겨우 주차했다. 4주차장도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산도 사람도 울긋불긋, 수북히 쌓인 낙엽 밟으며 노랑 가을님, 빨강 가을님, 누런 가을님, 푸른 가을님들을 만났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이 따스해 천천히 걸어도 춥지 않았다. 휴게소 사장님은 현금만 받았는데 그 많은 돈 어디 감추시는지 한푼도 보이지 않았다. 근근이 들어간 식당에서는 음식 투정은 엄두도 낼 입장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그런데도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어서 베리굿, 줄거웠다.

댓글 그냥 일상 2021. 11. 1.

01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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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옛 담, 그리다 / 윤승원

옛 담은 풍경을 안고 풍경은 옛 담을 안는다. 운곡서원 담장 위에 팔랑팔랑 내려앉는 은행잎은 노랑나비 군무 같다. 저렇게 많은 나비들의 춤사위라니. 기왓장 위의 이끼는 세월을 덧입었다. 은행나무가 담장을 넘보듯 나도 안쪽을 바라본다. 넓은 마당에 연이은 강당에선 앳된 도령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가을은 운곡서원에서 더 깊어진다. 담장이라면 대릉원 담장을 빼놓을 수 없다. 봉긋이 솟은 여인의 가슴을 닮은 곡선의 우아함은 보면 볼수록 푸근하다. 덕수궁 돌담이 살아있는 궁궐을 안고 있다면 대릉원 돌담은 사후 세계를 껴안고 있어 서로 대비된다. 대릉원 돌담길은 벚꽃 흐드러지게 핀 봄에 가장 아름답고 덕수궁 돌담길은 은행나무 단풍이 고운 가을을 최고로 친다. 이렇듯 담은 주변풍경과 어울려 계절에 따..

댓글 수필 읽기 2021. 11. 1.

01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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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정일근 시인

나의 고래를 위하여 / 정일근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 있다면/ 당신의 前生은 분명 고래다// 나에게 고래는 사랑의 이음동의어/ 고래와 사랑은 바다에 살아 떠도는 같은 포유류여서/ 젖이 퉁퉁 붓는 그리움으로 막막해질 때마다/ 불쑥불쑥, 수평선 위로 제 머리 내미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고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당신이 본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 누구도 사랑의 모두를 꺼내 보여주지 않듯/ 고래도 결코 전부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한순간 환호처럼 고래는 바다 위로 솟구치고/ 시속 35노트의 쾌속선으로 고래를 따라 달려가지만/ 이내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거대한 사랑을/ 바다에서 살다 육지로 진화해온/ 시인의 푸른 휘파람으로는 다시 불러낼 수 없어// 저기, 고래!라고 외치는 그 순간부..

댓글 시詩 느낌 2021. 11. 1.

01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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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실수 / 나희덕

옛날 중국의 곽휘원(廓暉遠)이란 사람이 떨어져 살고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를 받은 아내의 답시는 이러했다. 벽사창에 기대어 당신의 글월을 받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흰 종이뿐이옵니다. 아마도 당신께서 이 몸을 그리워하심이 차라리 말 아니하려는 뜻임을 전하고자 하신 듯 하여이다. 그 답시를 받고 어리둥절해진 곽휘원이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에게 쓴 의례적인 문안 편지는 책상 위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 옆에 있던 흰 종이를 편지인 줄 알고 잘못 넣어 보낸 것인 듯했다. 백지로 된 편지를 전해 받은 아내는 처음엔 무슨 영문인가 싶었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 말로 다할 수 없음에 대한 고백으로 그 여백을 읽어내었다. 남편의 실수가 오히려 아내에게 깊고 그..

댓글 수필 읽기 2021.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