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2021년 12월

07

수필 읽기 가을소리 / 신창선

가을은 소리로부터 오는가 보다. 낙엽 구르는 소리, 벼 익는 소리, 편지 쓰는 소리, 기러기 날아가는 소리가 소리를 물고 소리가 되어 끝없이 번져 나간다. 가을 음악회, 나도 가을이 되어 음악회를 따라나선다. 잎 떨어진 나뭇가지에 음표가 된 참새가 겨울을 부르며 배경 음악처럼 조용히 깔린다. 허수아비 옷깃에서 뛰쳐나온 귀뚜라미가 비올라를 들고 무대 뒤편에서 별들을 재우느라 귀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흥얼거린다. 가랑잎이 하프 소리를 머금고 시나브로 떨어지고, 콘트라베이스를 활로 긁으며 갈대가 웅웅거린다. 개울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에서 오카리나를 불고 있는 벌레소리도 멀리서 들린다. 첼로를 켜는 억새의 춤사위가 나긋나긋하다. 작은북을 두드리는 대숲 소리가 고즈넉한 오솔길을 불러 모은다. 백파이프를 불며 군..

댓글 수필 읽기 2021. 12. 7.

07 2021년 12월

07

수필 읽기 마주 도는 팽이 / 장석창

집에 오니 아들이 팽이를 돌리고 있었다. 요즈음 팽이는 내가 어릴 적 돌리던 줄팽이와는 많이 달랐다. 실내에서도 층간소음 없이 돌릴 수 있도록 바닥에 놓는 팽이 판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발사 장치에 팽이를 물린 후 부착된 끈을 잡아당기면 거기에서 분리된 팽이가 회전력을 얻어 판 위에서 돌아간다. 아들은 흔들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돌아가는 팽이가 신기한 듯 연신 환호성을 질러댔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슬그머니 아들에게 다가갔다. 판 위에는 한 쌍의 팽이가 사이좋게 마주 돌고 있었다. 혹시 상대방이 먼저 쓰러지지나 않을까 서로를 격려하고 있는 듯했다. 평생을 의지하며 살아온 부부처럼. 판 위에서 돌아가는 팽이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 여정과 흡사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목청을 돋우며 우는 아이처..

댓글 수필 읽기 2021. 12. 7.

07 2021년 12월

07

수필 읽기 시간의 빛깔 / 박월수

산골의 가을은 목덜미에서부터 온다. 스산한 기운이 뒷목을 파고들어 등뼈로 스미면 보랏빛 바람 닮은 가을 들꽃은 핀다. 시린 등을 핑계 삼아 화덕 앞에 앉았다. 화르르 타는 장작위에 지난여름 말려둔 인진쑥 몇 가닥을 올린다. 온기 사이로 그윽함이 밀려든다. 너울거리는 불길 속에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보인다. 손바닥만 한 라디오를 옆에 끼고 쇠죽솥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어린이 연속극은 끝난 지 오래다. 골목에선 꼬맹이들 노는 소리가 뒷덜미를 끌어당긴다. 계집아이의 골난 입술이 십 리 밖까지 튀어 나간다. 땔감을 한꺼번에 밀어 넣고 솥뚜껑을 뚫어져라 노려봐도 김이 날 생각을 않는다. 굵은 장작이라도 있다면 넣어두고 달아날 텐데 불쏘시게 같은 짚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버릴까 애가 타..

댓글 수필 읽기 2021.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