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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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2022 신춘문예 당선작(시)(2-2)

[현대경제신문]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 / 유휘량 우린 목이긴 걸// 기린이라 불러// 하필 넌 목이 길구나.// 누가 널 그리고 있는 걸 아니?// 그림자를 졸여 만든 잉크로// 괜찮아./ 너는// 그리는 동시에/ 사라지는 감각이 좋았다.// 따듯한 색은 대체로 몸에 좋지 않았던 그때// 핏줄엔 면역이 없어서, 핏줄에 묶인 몸이 싫다고/ 목에 핏줄 세우며// 새가 새를 잡아먹는 건 이상하다. 완벽한 새장을 만들기 위하여 가시밭에 두 손을 넣어두고 돌아왔다. 그 두 손은 그림자놀이를 통해 새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린이 새를 입에 물고 불타는 머리를 흔드는 걸 보면 이상하다. 나무에 열리는 아가미는 싫어하면서 하루에 새 하나씩 꼬박꼬박 먹는 건 이상하다.// 몸을 벗고 남겨진 자신을 봐.// 복도..

댓글 시詩 느낌 2022. 1. 3.

03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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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2022 신춘문예 당선작(시) (2-1)

[국제신문]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 박재숙 침대에게 몸으로 물을 주는 건, 그에게서 달콤한 봄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 내 주변엔 봄이 너무 많아 침대도 나에겐 봄이야, 그건 아마도 침대를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애일지도 모르겠어// 침대는 해마다 겨울이 알려주는 장례관습 따위엔 관심 없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철없이 스프링을 쿨렁거려도 푸른 봄은 여전히 아지랑이처럼 오고 있을테니까// 침대 위에서 휴대폰 속 이미지나 사건들을 클릭하고 닫는 동작은 무의미해 그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내일이 침대 커버처럼 단순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침대의 생각은 참으로 명료해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쓰다듬으며, 지난밤 겹의 무게 뒤에 펼쳐진 피로를 걷어내고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얻지, 그건 내일이 던져줄 공..

댓글 시詩 느낌 2022. 1. 3.

03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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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웃는 남자 / 정의양

2022 제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작) 입이 딱 벌어졌다. 사람의 뒷모습을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다. 조선 후기 천재 화가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를 바라본다. 운해 속에 피어난 연꽃 위에 결가부좌 한 선승의 참선하는 뒷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삭발한 머리는 달빛에 파르라니 빛나고, 가녀린 목선을 따라 등판으로 흘러내린 장삼이 구름과 어우러져 바람을 타고 하늘은 난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스님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문득, 내 얼굴을 생각한다. “얼굴 좀 펴라”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남들처럼 눈 코 입 하나 빠진 거 없는 외모이기는 하나 표정이 없어 그게 문제다. 아마도 삼신할미가 생명을 점지하고, 마지막 미소 한 줌 훅 뿌려주는 의식을 깜박하..

댓글 수필 읽기 2022. 1. 3.

03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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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돌챙이 / 오미향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섶섬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로 들어서자, 암벽 위에 작은 돌집이 보였다. 벼랑 위 깔깔한 소금기를 벗 삼아 삶의 모퉁이를 돌아선 그곳에는 삭정이 같은 무릎을 보듬고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바람 한 점만 불어도 거친 말 한마디만 내 던져도, 금세 기울 것 같은 수평을 아버지는 꼭 붙들고 있었다. 숭숭 구멍 뚫린 관절에 햇볕을 끌어모으고 먼바다를 내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잊었다는 것인지 다 지나간 일이라 모른다는 것인지 그 고갯짓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단물 쓴물 다 빠진 아버지의 빈 가슴에 찾아 든 것은 무엇일까? 보는 이의 마음도 마른 웅덩이처럼 젖어들었다. 말랑하게 가라앉은 가슴이 울컥했다. 아버지가 평생 쌓아 놓은 돌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

댓글 수필 읽기 2022. 1. 3.

03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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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막사발의 철학 / 복진세

2022 매일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한국의 그릇에는 도자기와 막사발이 있다. 가만히 보면 생김새도 다르고 쓰임도 달라서 재미있다. 사람도 도자기 같은 사람이 있고 막사발 같은 사람이 있다. 도자기는 관요에서 이름난 도공에 의하여 질흙으로 빚어서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다. 도자기는 관상용 또는 화병이나 찻잔, 식기 등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대부분은 만들어질 때부터 용도가 정하여진다. 격식 있는 상을 차릴 때는 밥그릇 국그릇 탕기 찜기 접시며 주병 등과 같이 용도대로 사용해야 한다. 국그릇에 밥을 담을 수는 없다. 그릇 하나에 하나의 용도만이 정하여졌다. 도자기는 활용 면에서 보면 매우 편협한 그릇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깨끗이 닦아서 장식장 등에 전시되어 관상용으로 사용된다. 행여 다칠세라 다루기에도 여간..

댓글 수필 읽기 2022.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