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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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사물을 보는 눈은 침침해지지만, 그 사물의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깊어지는 것일까. 얼마 전 동피랑 마을을 찾았다. 왜 갑자기 그곳 언덕 가파른 마을을 올라가볼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아마 봄 햇살이 따스해서였을 것이다. 동피랑은 이름 그대로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통제영(統制營)의 동쪽 바다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포가 설치되었던 언덕 꼭대기가 동포루(東砲樓)이다. 시에서는, 좁은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낙후된 이 마을을 철거한 뒤 동포루를 복원하고 언덕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즈음 한 시민단체가 발 벗고 나서서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의 미술대학생과 일반인들이 모여 담벼락과 축대에 벽화를 그렸다. 그 후 관광명소로 탈바꿈하..
27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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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결에 놀라 잠결에 놀라 시계를 본다. 벽에 걸린 직사각의 전자시계는 빨갛게 충혈된 숫자만을 보여준다. ‘2;45’ . 방안에 걸린 것이라기보다는 저자거리의 전광판 같다. 무심한 것 같으니라고. 그 숫자만으로는 일어날 시간까지 얼마가 남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비몽사몽에 공간 지각력이 무딘 나로서는 선뜻 감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돌아누워 협탁의 낡은 탁상시계를 다시 본다. 길고 짧은 두 개의 바늘이 연두색 형광빛을 조심스레 발한다. 모세혈관인 양 가는 눈금들로 나뉘어 있다. 두개의 바늘과 촘촘히 나뉘어진 금들은 몇 시간을 더 자도 되는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제서야 안도한다. 셈하기에 손가락을 동원하던 유년의 수준이다. 이제부터 더 잘 것이다. 그러나 잡다한 생각에 잠은 멀리 달아났다. 돌아오기..
27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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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천 시인 서울 출생, 2015년 《시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푸른문학상 수상. 윤동주서시문학상 제전위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조계종 12기 포교사. 적정(寂靜) / 김혜천 마방이 잠시 먼 산을 쳐다보는 사이/ 꽃 한 송이// 떨// 어// 진// 다// 천 길 협곡/ 몽롱하게 멀어지는 방울소리// 오색 술 달린 안장을 상으로 받은 날이다// 피멍으로 짊어진 모차와 소금/ 모봉을 넘을 때 마다 하나 씩 빠지는 발톱/ 각혈로 얼룩진 차마고도/ 그 길에서/ 시시때때 다짐했다/ 호시탐탐 노렸다// 등짐으로 닿을 수 없는 그곳/ 명성으로는 더 멀어지는 그곳// 벗어버리자/ 죽음만이 완성이다// 바람의 변주를 타고/ 오방색 춤사위/ 허공을 훠이훠이 젓는다// 폐허에서 오는 봄 / 김혜천 위태로운 발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