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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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조영석 시인

조영석 시인 1976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집으로 『선명한 유령』, 『토이 크레인』이 있다. 초식(草食) / 조영석 바람이 불고 부스럭거리며 책장이 넘어간다./ 몇 시간째 같은 페이지만을 노려보던 눈동자가/ 터진다. 검은 눈물이 속눈썹을 적신다./ 그는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의 독서를 막는다./ 손가락 끝으로 겨우 책장 하나는 잡아 누르며/ 보이지 않는 종이의 피부를 더듬는다./ 그곳은 활자들의 숲, 썩은 나무의 뼈가 만져진다./ 짐승들의 배설물이 냄새를 피워 올린다./ 책장을 찢어 그는 입 안에 구겨넣고 종이의 맛을 본다./ 송곳니에 찍힌 씨앗들이 툭툭 터져나간다./ 흐물흐물한 종이를 목젖 너머로 남기고 나서/ 그는 이빨 틈 속에 갇힌 활..

댓글 시詩 느낌 2022. 5. 25.

25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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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달, 세상에 물들다 / 정재순

무슨 일일까, 며칠째 딸아이가 시들하다. 평소와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표정까지 굳어 있다. 아이 방에 들어가 눈치를 보며 서성이는데 대뜸 혼자 있고 싶다고 한다. 큰딸은 동실한 보름달을 닮았다. 크고 까만 눈에 뽀얀 얼굴은 달처럼 예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아이는 눈웃음을 짓지만 돌아서면 콧잔등을 찡그리곤 하였다. 둥그런 달을 닮았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인 적이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갸름하고 작은 얼굴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어릴 적엔 연년생으로 동생을 보아 그런지 깨알만한 딱지를 내밀며 호 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렸었다. 매사에 적극적인 딸은 말재간이 있어 주변에 사람이 몰린다. 한 해가 지는 마지막 날에도 가족끼리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 한 살씩 예쁘게 꼭꼭 씹어 먹자' 고 해 모두들 ..

댓글 수필 읽기 2022. 5. 25.

25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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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두루미를 날려 보내며 / 양희용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정보 시스템의 '잠시 후 도착' 칸에 내가 탈 버스의 번호가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먼저 도착한 버스를 타기 위해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람처럼 달려온다. 급하게 앞문에 오르면서 그녀의 지갑에서 흘러나온 동전 하나가 바닥으로 떼구루루 굴러간다. 문이 닫히면서 버스는 곧바로 출발한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동전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기다리던 버스를 탄다. 빈자리가 없어도 서서 갈 공간이 충분해서 좋다. 예순이 넘은 중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사람도 없지만 그걸 기대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에 넋이 빠져있는 학생 옆에 자리를 잡으면 서로 눈치 볼일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넣는다. 조금 전에 주운 동전이 만져진다..

댓글 수필 읽기 2022.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