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2021년 03월

29

수필 읽기 해바라기 씨앗 / 현정희

해바라기 씨앗을 소쿠리에 담아 햇볕에 말리고 있다. 지난 오월이었다. 선흘꽃밭에 꽃구경을 갔더니 동문회에서 사랑의 꽃씨 나눠주기 행사를 하고 있었다. 행사를 담당하고 있던 한 친구가 엽서를 건네주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렴. 꽃씨를 보내줄게. 아담한 해바라기야.”라고 말했다. 작은 해바라기이면 정원에 심어도 예쁘겠다 싶어 남편한테 편지를 썼다. “현승 아빠, 지난한 세월 동안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오늘, 꽃밭에서 꽃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해요. 여생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며칠 후에 선흘꽃밭에서 보내온 엽서에는 해바라기 씨앗 일곱 개가 들어있었다. 무표정한 남편도 엽서를 펼쳐보며 미소를 짓는다. 해바라기는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꽃이..

댓글 수필 읽기 2021. 3. 29.

11 2021년 02월

11

수필 읽기 벌컥 남(男)과 꼴깍 여(女) / 송연희

사람의 모습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며 사람됨을 점치기도 한다. 어떤 점잖고 교양 있고 직장도 반듯한 남편이 있었다. 유머도 있고 부인과 외출할 땐 꼭 손을 잡고 다녔다. 이웃 사람들이 그 부인을 보고 말했다. “그런 남편과 사는 당신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그랬더니 그 부인이 하는 말이 “한번 살아봐라. 그런 말이 나오는지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였다고 한다. 한 남자랑 삼십 년 하고도 사 년째 함께 살고 있다. 집에 들어오는 남편의 눈썹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눈썹이 부드럽게 갈매기를 하고 있으면 양호한 상태. 거기에 입매까지 부드러우면 최상이다. 눈썹이 꼿꼿하면 기분 별로. 입까지 꾹 다물고 화장실로 들어가면 성질이 난 것. ..

댓글 수필 읽기 2021. 2. 11.

11 2021년 02월

11

수필 읽기 어머니의 텃밭 / 구활

늦잠을 즐기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애비야! 게일인지 케일인지 때문에 감자농사 망치겠구나. 그놈의 큰 키가 감자를 크지도 못하게 하고, 거기서 옮겨 붙은 진딧물이 감자 잎을 말리는구나.” 느닷없는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예, 알았어요.” 대답하고는 늦잠의 혼곤함에 취해 해가 중천에 떠있을 무렵, 게으른 하품을 앞세우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게 웬일인가? 어머니가 초봄에 심어둔 감자 몇 포기에 그늘을 드리웠던 죄로 잎이 무성한 케일들은 송두리째 뽑혀서 뿌리를 하늘로 쳐들고 벌을 서고 있었다. 녹즙식물인 케일의 진가를 모르고 감자의 순수한 맛만을 알고 계시는 어머니가 약간은 원망스러웠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뽑혀진 케일들을 빈 땅에 다시 심고 물을 듬뿍 뿌려 주었다. 지난 겨울 친구에게서 얻어온 케일 씨앗..

댓글 수필 읽기 2021. 2. 11.

11 2021년 02월

11

수필 읽기 만년 과도기萬年過渡期 / 윤재천

중국의 황하(黃河)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했다. 강물이 맑고 푸른 날이 없다는 뜻이다. 강물이 맑고 푸름은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후와 풍토가 그 강물을 푸르고 맑게 두질 않으니 아무리 맑은 강을 기다리며 백년을 보내도 푸를 수가 없는 것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크고 많은 일을 거쳐 왔다. 한일합방 이후 36년간, 일제 치하의 굴욕되고 자유가 없던 세월을 지나 아무 준비 없이 맞은 해방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자유의 기쁨을 주었고 그 기쁨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순간에 6·25의 민족적 수난을 겪어야 했다. 사변의 참해를 씻고 휴전이란 푯말 앞에서 부흥과 복구에 집념하면서 집념이 차츰 타성과 나태로 변했다. 사리사욕만을 일삼던 아집스런 집권에 대한 반발로 학생의 분노는 ..

댓글 수필 읽기 2021. 2. 11.

10 2021년 02월

10

수필 읽기 3월이 오고 뱀이 눈 뜨면 / 이혜숙

“휘익, 휘익.” 뱀이 보내는 신호다. 한밤의 검은 휘장을 찢는 소리, 무겁게 내리누르던 적막을 걷어 올리는 소리, 잠잠한 대기를 휘저어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 나에게는 그것이 봄이 왔다는 신호다. 3월 26일 새벽 3시. 작년보다 이틀이나 늦었다. 날짜를 확인하면서 먼저 든 생각. 작년엔 3월 24일에, 그 전해엔 3월 25일에 그 소리를 들었다.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해의 3월은 그날이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자투리 날들은 4월에 이어 붙인다. 내 달력엔 4월 35일인 해도 있고 4월 37일인 해도 있다. 봄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다른 사람은 남녘의 꽃소식으로,아니면 달라진 기온으로 봄을 느끼겠지만, 나는 다르다. 뱀이 신호를 보내야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휘이익” 밤에 듣는 짧고 높..

댓글 수필 읽기 2021. 2. 10.

10 2021년 02월

10

수필 읽기 존재는 외로움을 탄다 / 최민자

이른 새벽, 이슬이 맺힌 풀숲 사이로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가 간밤 불면으로 멍해진 머리 속을 차고 맑게 헹구며 지나간다. 밤새 열변을 토하던 벗들은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다. 세상과도, 자기 안의 고독과도 화친하지 못한 채, 짧은 삶을 마감해야했던 한 작가에 대하여 사람들은 제각기 할 말이 많았다. 숲으로 향해 가는 내 발걸음을 마른 풀줄기가 잡아당긴다. 아직 이르니 동 틀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 괜찮다고, 머지않아 해가 떠오를 거라고, 달래듯 어르듯 헤치며 걷는다. 늦도록 두런대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설친 숲의 정령들에게는 돋쳐 오르는 이른 햇살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골짜기 사이에 가로놓인 나무다리를 건너간다. 나무가 삐거덕, 아픈 소리를 낸다. 한 걸..

댓글 수필 읽기 2021. 2. 10.

09 2021년 02월

09

수필 읽기 에세이 모노드라마 / 조재은

백지는 텅 빈 무대다. 작가는 종이 위에서 연출자이고 모노드라마의 배우이다. 백지 위의 공연은 몇 백 회를 넘어도 막이 올라가면 심장이 멎는 듯하다. 배우는 관객의 마음을 피땀 흘리는 연기 하나로 사로잡아야 한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에 밝은 조명이 켜지면 순간, 배우는 앞이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응시하는 무서우리 만치 냉정한 관객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낀다. 절대 고독의 순간이다. 백지 위의 첫 줄, 호흡을 맞출 상대역도 연출도 없는 무대에서 첫 동작을 시작한다. 비어있는 백지는 거대한 강이고 하나의 문자는 작고 작은 돛도 없는 조각배다. 상처 난 손으로 힘없는 노를 저어 거센 강의 물살을 헤쳐 가야 한다. 물살에 잡혀 강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힌다. 모노드라마의 배우가..

댓글 수필 읽기 2021. 2. 9.

09 2021년 02월

09

수필 읽기 영화 같은 수필 / 조재은

수필가, 그는 수필가의 자세는 노련한 배우의 숙련된 연기 같아야 한다. 배우가 고정된 스타일의 연기만을 오래 지속할 경우 생명이 짧다. 맡은 역할에 따라 변신하는 배우들이 있다. 로버트 드니로는 ‘분노의 주먹’에서 이십 대에서 오십 대까지의 권투 선수역을 맡아 수십 킬로의 몸무게를 늘리고, ‘퐁네프의 연인들’의 데니 라방은 다리 위의 거지 역할을 위해 몇달씩 목욕을 하지 않았다. 성격 배우들의 깊은 내면 연기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이 갖다 준 결과이다. 영화에서 환자의 역을 맡고 촬영이 끝나면 배역에 몰입한 배우는 얼마동안 심하게 앓는다. 이런 철저한 프로 정신에서 한편의 수필이 태어나야 한다. 수필을 쓸 때 고뇌와 함께 흘리는 땀과 피는 값지다. 수필가의 눈 영화를 촬영하듯 수필을 쓴다면, 수필가의 눈..

댓글 수필 읽기 2021.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