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공 상희 2007. 5. 23. 13:56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함을(행 1: 4-8 )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며 거룩한 영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 이끄시며 주님을 잘 섬기도록 인도하시는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은 영적인 삶이지만 영적인 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육도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길은 영육이 잘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육적인 삶은 육의 기쁨을 좇아가고 육의 행복과 만족을 좇아가지만 결국 육의 기쁨도 없고 만족도 없고 성공도 없는 삶입니다.


우리 사회가 겉으로 보면 문제가 없고 병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중병에 걸려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교실이 무너지고, 윤리가 무너지고, 도덕이 무너지면서 모든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작년 한 해만 해도 33만 4천 쌍이 결혼했는데 이 중에서 12만 쌍이 이혼했다고 합니다. 요사이 동성연애자들도 많습니다. 이것을 유전자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면 음란해지고 동성연애에도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박을 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고 육의 소욕을 좇아가면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이고 결국 인생을 망치게 되고 불행하게 되고 실패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길에서 헤매는 것은 바로 배후에 악한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이며 절대권력을 자랑했던 군주입니다. 만대에 그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육적인 기쁨은 잠깐입니다. 진시황은 세상에 좋다는 인삼과 산삼을 먹고 천하의 명의들을 수천 명 두었으나 49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라는 오래갈 줄 알았지만 4년 만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식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물질주의와 지식만능주의와 세속화는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차갑게 하는지 모릅니다. 세속문화가 우리에게 수많은 프로그램으로 다가오고, TV마다 많은 것을 보여 주어도 우리에게 참 만족은 없습니다.


어느 시대보다도 이 시대는 성령의 충만함이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이 나라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단비와 같이, 소나기와 같이, 장마비와 같이 임할 때에 우리를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늘에서 단비 내리고 햇빛 찬란함 같이 우리 맘에 성령 임하니 주님 보내심이라♬ 또한 성령의 바람은 우리 마음을 불길처럼 우리를 뜨겁게 하고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성령은 인격이며 우리에게 좋은 남편이고 좋은 친구이며 또 스승입니다. 내 영혼의 병을 치료하여 강건하게 하고 영·육이 늘 건강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은 성령인 줄로 믿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날마다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영광스러운 소원이 있습니까?(겔 47: 1-5)


오늘 본문의 환상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가장 놀라운 환상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새벽이 그 환상을 접하는 특권적인 날이라 생각하고 감사하십시오. 다... 환상에서 제단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전해주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제단(교회)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의 물줄기!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샘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의 물줄기가 내 안의 생수 샘을 자극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섬기는 제단에서 말씀과 성령의 물줄기가 흘러나올 때 그 말씀과 성령을 통해 자신의 생수 샘을 터뜨리는 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단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단계적으로 차 오릅니다.

그래서 발목, 무릎, 허리, 그리고 머리 위로 차 오르는데 그렇게 차 오른 각 단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각 단계를 알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강물이라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상 처음에 그 강물은 강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조그마한 물줄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의 '나와서'라는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조금씩 떨어져서'라는 말입니다. 즉 성전 동문 문지방 밑에서 몇 방울의 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처럼 성령의 역사가 처음에는 희미한 것 같아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그것을 느낄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이 희미하게 느껴져도 그 뒷 편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폭포수와 같은 어떤 느낌을 원하십니까?


항상 강물과 같은 모습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원하십니까? 그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든지 한꺼번에 다 이루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느낌을 충족시키려고 하면 하나님의 실체는 더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하나님의 역사가 희미한 것 같아도 그 희미해 보이는 것을 통해서도 희망을 가지고 그것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축복을 예비하는 믿음이 될 것이고,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은 더욱 주님의 실체를 분명하게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1. 발목까지 차 오는 물

제단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은 곧 발목까지 차 오르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과 함께 걷는 것'을 상징합니다. 성령과 함께 걷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말하고,

2)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아직 성령에 대한 만족스러운 경험이 없습니까?

그러면 이 첫 번째 단계를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앞에서 말하는 '순종과 포기' 두 가지가 항상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시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에 대한 소원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하는 몸부림을 보십니다. 그러한 자세에 한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성령에 대한 경험을 정말 순수하게 추구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성령님 옆에 기다리고 서 있다면 성령님은 그분의 감추어놓고 있던 놀라운 축복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 무릎까지 차 오는 물

발목까지 차 오른 물줄기는 곧 무릎까지 차 오르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고, 무엇을 묘사하는 것일까요? 먼저 '무릎!' 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기도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성령님과 동행하면 기도의 거룩한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기도는 보통 기도와 다릅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을 가지고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에 동참하시는 중보기도입니다. 우리가 가진 부담감을 놓고 씨름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반응하시는 느낌과 확신이 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3. 허리까지 차 오른 물

무릎까지 차 오른 물은 곧 허리까지 차 오릅니다. 이 허리까지 차 오른 물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허리는 졸라매는 부분입니다. 졸라매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허리는 능력, 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권능을 가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왜 권능이 필요합니까? 증인이 되고 일꾼이 되기 위한 무장을 위해서입니다.


4. 키를 넘은 물

허리까지 차오는 물은 곧 키를 넘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나 느끼듯이 성령의 충만함을 묘사한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 잠기게 됩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그분 안에서 자신을 망각하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가 벌어지게 될까요? 먼저, 영광스러운 삶을 향한 자발적 소원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소원부터 바뀝니다.


그 소원을 보면 자신도 깜짝 놀랄만한 소원입니다. 항상 스스로 질문하십시오. "내가 영광스러운 소원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들은 소원은 어떻습니까? 거룩한 소원으로 바뀌었습니까? 이제 옛날의 이기적인 소원을 버리고 하나님의 소원으로 영혼을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면 자신의 느낌과 경험을 덜 신뢰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 예수님의 거룩한 삶에 몰입되고 자기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은 자신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고후 12:2)


이 성경 구절에서 그는 옛날의 자신의 되기를 포기하고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한 삶과 자세가 그를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자로 만든 초석이었습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넘쳐흐르는 강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본문 다음에 나오는 6-12절 말씀을 보면 강 좌우편의 많은 나무가 있게 되고, 각종 먹을 실과가 생겼습니다. 또한 물이 바다로 흘러서 바다가 소성함을 입는 은총도 있었습니다.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놀라운 생명력의 역사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은 우리 영혼의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진정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만족을 주는 초석입니다.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성령의 강물이 내 안의 생수 샘을 자극하는 삶! 그러한 삶이 우리들의 영혼과 삶에 큰 기쁨과 만족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그러한 기쁨과 만족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한규목사